[뚫어드]:보이지 않는 자들의 집합소

by 블링

분명 손가락 사이로 미끄러지듯 스치는 무언가가 있었다. 머리카락을 휘젓고 다니는 차갑고 끈적이는 불쾌한 것들이 내 두피를 훑으며 모공 안으로 파고들려한다.


"으악!"


정체불명의 물체가 두개골을 뚫고 뇌 속으로 밀고 들어오는 감각이 생생했다. '모공을 통해 뇌로 들어갈 수 있나? 이게 무슨 소설 같은 일이야!' 말도 안된다는 생각과 함께 엄청난 통증이 덮쳤다. 하지만 그 고통은 오래가지 않았다. 통증이 정점을 찍는 순간, 조금 전 내게 머리는 감았냐며, 핀잔을 주던 슈퍼 아줌마의 얼굴이 떠올랐다. 삭히지 못한 분노가 두개골 안에서 폭발하더니, 이내 기묘한 쾌락으로 변질되기 시작했다. 고통을 넘어서는 순간, 참을 수 없는 웃음이 터져 나왔다.


"깔깔깔, 깔깔깔깔!"


하늘이 녹색으로 일렁이는 것을 본 것은 나뿐만이 아니었다. 사람들은 "우리나라에도 오로라가?" 하며, 신기한 듯 스마트폰을 들어 SNS에 올리기 바빴다. 하지만 곧 여기저기서 "투투투투툭" 소리와 함께 지렁이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이 기괴한 광경조차 누군가에게는 '조회수'일 뿐이었다. 사람들은 세상에 이 소식을 누구보다 빨리 전해야 한다며 아수라장이 된 거리에서 동영상을 찍어댔다.


늘어진 메리야스와 낡은 슬리퍼를 신었던 나는 더 이상 힘없고 주눅 든 백수가 아니었다. 내가 일자리가 없었던 건 다 세상 탓이고, 나를 쓰레기처럼 바라본 저 사람들 탓이다. 머리속에서 축축한 목소리가 달콤하게 속삭였다.


"너의 비루함을 힘으로 바꿔줄게. 우리 함께하자. 너를 무시하던 저 사람들의 눈을 파버리고 싶지 않아?"


환청이 현실의 소음보다 더 크게 일렁였다. 나는 바닥에 떨어진 아이스크림 막대기를 집어 들었다. 아니, 그것은 이미 내 손안에서 단단하고 날카로운 '창'이 되어 있었다. 나는 가장 먼저 나를 비웃었던 아줌마가 있는 슈퍼마켓으로 향했다. 고개를 푹 숙인 채 헝클어진 머리를 기괴하게 흔들며 그녀를 찾아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마침내 그녀를 포착하고 몸을 날리려던 찰나였다.


"그만, 당신이 하고자 하는 일이 아닙니다."


갑자기 얼음물을 뒤집어쓴 듯 머리속의 열기가 차갑게 식었다. 어디에서 들리는 목소리인지 모르겠다. 들끓던 뇌 속이 순식간에 꽝 언 얼음으로 변한 듯 몸이 굳어 움직이지 않았다. 동시에 코끝을 찌르는 진하고 구수한 향기가 사방으로 퍼져 나갔다. 장씨 가문 대대로 내려온 마음의 마귀를 쫓는다는 '진액 간장'의 법제된 향이었다. 내 머리속으로 온화하지만 단호한 목소리가 뇌에 파고들었다.


"이게 무슨 소리야. 난 나를 버러지처럼 보는 인간들에게 복수할 거야!"


내면의 광기가 비명을 질렀다. 흐릿해진 시야 사이로 하얀 셔츠를 입은 남자, 장씨가 보였다. 그는 아비규환이 된 거리에서 유일하게 정지된 화면처럼 고요하게 서 있었다. 장씨가 내 이마에 손을 얹자, 그의 손끝에서 시작된 정화의 기운이 뇌세포 구석구석을 훑었다. 머릿속을 헤집던 지렁이들이 비명을 지르며 똬리를 트는 게 느껴졌다.


"지금 느끼는 분노는 당신의 것이 아닙니다. 저들이 당신의 뇌를 조종하고 있는 겁니다. 당신의 진짜 마음을 보세요. 당신은 그저... 조금 지쳐 있었을 뿐이잖아요."


장씨는 내 마음의 밑바닥을 읽어내며 읊조렸다. 그의 목소리가 닿는 곳마다 들끓던 발작이 가라앉았다.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복수심 때문이 아니었다. 누군가 내 이름을 불러준 것만 같은, 아주 오래전 잊고 지냈던 다정함때문이었다.


하지만 내 머릿속의 지렁이는 쉽게 물러나지 않았다. 놈은 숙주의 슬픔마저 먹어치우려는 듯 다시 파괴를 갈망하며 내 몸을 뒤틀게 했다. 장씨는 미간을 찌푸리며 짙게 타오르는 간장 향 속에서 외쳤다.


"생각보다 잠식이 깊군. 권씨! 지금이야!"




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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