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씨의 외침과 함께 내 등 뒤로 거대한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굵은 소금 주머니를 움켜쥔 권씨의 손이 내 뒷덜미를 향해 무겁게 떨어졌다.
“비켜, 장씨! 이놈 속이 아주 곤죽이 됐어!”
권씨는 주머니 속에서 소금을 한 움큼 꺼내 허공에 뿌렸다. 하얀 소금 알갱이들이 폭포처럼 내 머리 위로 쏟아졌다. 장씨가 내 이마에서 손을 떼며 뒤로 물러나자, 나는 비명과 함께 바닥을 굴렀다.
“아아아아악! 뜨거워! 몸이 타들어 간다고! 그만둬!”
그것은 단순한 소금이 아니었다. 권씨 가문에서 대대로 정제해 온 소금이었다. 소금 결정이 피부에 닿는 순간, 마치 달궈진 인두로 지지는 듯한 고통이 전신을 훑었다. 하지만 그 고통은 살점이 타는 아픔이 아니었다. 내 머릿속에 숨어 뇌를 갉아먹던 지렁이들이 소금의 삼투압을 견디지 못하고 질러대는 비명이었다.
“나와, 이 징그러운 놈아!”
권씨가 내 등을 거칠게 짓누르며 굵은 소금 한 움큼을 내 뒷덜미에 대고 비벼버렸다.
“치이이익—!”
고기를 굽는 듯한 불쾌한 소음과 함께 뒷목에서 검푸른 연기가 피어올랐다. 지렁이는 마지막 발악을 하듯 뇌벽을 긁어댔고, 시야가 붉게 변하며 숨이 턱 끝까지 차올랐다. 내 입에서는 인간의 것이라고는 믿기지 않는, 수천 마리의 벌레가 뒤엉켜 우는 듯한 기괴한 금속음이 터져 나왔다.
그때였다. 척추를 타고 무언가 역류하는 감각이 느껴졌다.
“커헉!”
입과 콧구멍, 그리고 뒷목에서 진득한 녹색 점액질이 뿜어져 나왔다. 그 점액질 뭉치 사이로 성인 팔뚝만 한 거대한 지렁이가 모습을 드러냈다. 놈은 소금 더미 위에서 온몸을 뒤틀며 끔찍하게 꿈틀거렸다.
“이게… 내 머릿속에 있었다고?”
내가 넋이 나간 눈으로 바라보는 사이, 권씨는 주머니에서 작은 병을 꺼내 지렁이의 몸 위에 쏟아부었다. 장씨의 가문의 비법 간장이었다. 간장이 닿자마자 지렁이의 표피가 부글부글 끓어오르며 녹아내렸고, 그 위에 권씨가 마지막 소금 세례를 퍼부었다. 지렁이는 순식간에 검게 타버린 나뭇가지처럼 말라비틀어졌다.
“후우, 제때 뽑아냈구먼. 조금만 늦었어도 뇌가 다 녹아버릴 뻔했어.”
권씨가 이마의 땀을 닦으며 거칠게 숨을 내뱉었다. 내 몸을 지배하던 광기와 분노가 썰물처럼 빠져나갔다. 나는 낡은 슬리퍼 한 짝이 벗겨진 것도 모른 채 차가운 아스팔트 바닥에 쓰러졌다. 머릿속은 텅 빈 것처럼 고요했지만, 입안에는 여전히 소금의 짠맛과 지렁이의 비릿한 체액 냄새가 진동했다. 저 멀리서 이 과정을 지켜보며 스마트폰을 조작하던 김씨가 천천히 다가왔다.
“장씨, 권씨. 고생했어. [뚫어드] 번개 장소에 딱 맞춰 이런 일이 터지다니. 우연일까, 아니면 알고 여기로 정한 거야? 그나저나 이 친구… 보통 놈이 아닌데. 지렁이가 이만큼 자랄 정도면 본래 품은 분노가 엄청났다는 뜻이거든.”
세 남자가 쓰러진 나를 내려다보았다. 나는 떨리는 손으로 옆에 떨어진 아이스크림 막대기를 꽉 쥐었다. 이제 그것은 날카로운 창이 아니라, 그저 작고 초라한 나무 막대기에 불과했다. 내 위로 세 개의 그림자가 길게 드리워졌다. 압도적인 분노는 온데간데없고, 오직 멍한 허탈감만이 전신을 지배했다. 가장 먼저 손을 내민 건 하얀 셔츠 소매를 걷어붙인 장씨였다. 그의 손에서는 여전히 은은한 간장 달인 내음이 났다.
“정신이 좀 듭니까? 죽다 살아난 기분일 텐데, 일어날 수 있겠어요?”
그의 손을 잡고 몸을 일으키자, 주머니를 털어 남은 소금을 비워내던 권씨가 퉁명스럽게 한마디 던졌다.
“어이, 조심해. 지렁이는 빠져나갔어도 놈이 휘저어놓은 상처는 꽤 오래갈 테니까. 괜히 울컥해서 또 사고 치지 말고.”
무심한 듯 보였지만, 권씨는 바닥에 떨어진 내 낡은 슬리퍼 한 짝을 발끝으로 툭 밀어 내 발 앞에 가져다주었다. 그때 핸드폰을 연신 두드리던 김씨가 우리 사이로 들어왔다.
“자, 통성명은 나중에 하고 상황 정리부터 하죠. 난 김씨, 기운을 읽고 위치를 찾는 모양이고, 이쪽은 장씨, 간장으로 마음의 정화를 하는 것 같죠? 저 덩치 큰 양반은 권씨. 소금으로 지렁이를 박멸 시킬 수 있는 거 같고요.”
김씨가 핸드폰 화면을 내 눈앞에 들이밀었다.
“그나저나 [뚫어드] 번개 글을 보고 만난 첫날에 이런 일이 생기다니, 놀랍지 않아요? 그쪽 머릿속에서 나온 놈은 시작에 불과해요. 지금 서울 전역에 저 녹색 연기가 퍼지고 있거든요. 세상에 억울하고 분한 사람이 한둘입니까? 그 사람들의 머릿속이 지금 저놈들의 ‘놀이터’가 되고 있단 말이죠.”
조금 전 느꼈던 광기가 도시 전체로 퍼지고 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다. 장씨가 내 어깨를 짚으며 다정하게 제안했다.
“우리에게 대대로 내려온 힘이 있다는 걸 알게 됐으니, 힘을 합쳐 이 사태를 막아보려 합니다.”
“이 지렁이들, 싹 다 소금에 절여 녹여버려야지.”
권씨가 덧붙였다. 나는 손에 쥐인 부러진 아이스크림 막대기를 바라보았다.
가슴 안에서 분노가 아닌, 다시 한번 제대로 살아보고 싶다는 미미한 의지가 꿈틀거렸다.
우리는 그곳에서 짧은 인사를 나누고 헤어졌다.
“운전할 줄 알아요?”
조수석에 앉아 벨트를 매며 장씨가 물었다.
“허허, 이 사람 참. 운전할 줄 아니까 차가 있는 게 아니겠소? 이걸 어떻게 들고 왔겠어?”
골목 어귀에 세워진 차는 최신형 SUV였다. 권씨는 운전대를 잡았지만 이내 자율주행 모드를 활성화하고는 김씨에게 목적지를 물었다. 조수석의 장씨는 마음을 가라앉히겠다며 갑자기 향을 피우기 시작했다.
“아니, 차 안에서 웬 향입니까? 당장 꺼요!”
타박을 들은 장씨가 머쓱해하며 향을 껐다. 대신 명상 유튜브를 듣겠다며 이어폰을 귀에 꽂았다. 그 모습이 흡사 조선시대 금귀걸이를 연상시켰다. 뒷좌석의 김씨는 노트북과 핸드폰을 동시에 조작하며 실시간 SNS 스토리와 뉴스를 분석했다.
“떴다! 대치동 대형 학원이에요. 수험생들에게 지렁이 녹조 기운이 느껴져요. 입시 스트레스에 절어 있는 애들이라 잠식 속도가 상상을 초월할 겁니다.”
권씨가 엑셀을 밟으며 거칠게 차를 돌렸다.
“수험생들이라고? 그거 골치 아프겠군. 애들 몸에 흉터 안 남게 소금 뿌리려면 공력이 꽤나 들겠어.”
“제가 최대한 간장 향으로 진정시켜보겠습니다. 권씨 님은 저를 서포트 해주세요.”
창밖 서울의 밤은 고요했으나, 하늘의 녹색 빛은 점점 짙어지고 있었다. 사람들은 여전히 그것을 기이한 기상 현상으로 여기며 카메라를 들이댔지만, 차 안의 세 남자는 알고 있었다. 저 녹색 커튼 뒤에서 수만 마리의 지렁이가 인간의 어두운 감정을 비웃으며 똬리를 틀고 있다는 것을.
“인간들이 자초한 일이라더니… 녹조가 생길 만큼 강을 괴롭히고 서로를 증오하며 살았으니, 지렁이들 입장에선 여기가 뷔페 식당이겠지.”
김씨가 씁쓸하게 내뱉었다. 차는 요란한 엔진 소리를 내며 녹색 안개가 자욱한 대치동을 향해 질주했다. 시시한 전설로만 치부되던 비법들이, 무너져가는 세상을 지탱할 유일한 창과 방패가 된 순간이었다. 대치동 학원가에 도착하자 유리창 너머로 눈이 게슴츠레하게 변한 학생들이 기괴하게 깔깔거리며 창문을 깨고 뛰어내리려 하고 있었다. 권씨가 뒷자리에 있는 소금 포대를 확인하며 중얼거렸다.
“소금 주머니 몇 개로는 택도 없겠는데!”
“자, 영업 시작합시다. 장씨, 간장 준비됐어?”
장씨가 맑은 눈을 번뜩이며 간장병을 쥐었다.
“언제든지요.”
김씨가 가장 먼저 내려 건물의 기운을 훑었다.
“꼭대기 층에 기운이 가장 커요. 이 건물 대장 놈이야. 나만 따라와요!”
세 명의 그림자가 녹색 안개 속으로 거침없이 뛰어들었다. [뚫어드]에 올린 ‘나 지렁이가 보여’라는 장난 같은 번개 글이, 인류의 마지막 희망이 된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