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식된 거리, 밤 10시

by 블링

암녹색 연기가 교실을 휘몰아 감았다. 순식간에 아이들 사이에 탁하게 풀리더니, 아이들이 억눌러왔던 열등감이 연기와 함께 똬리를 틀었다. 교실은 순식간에 비명과 욕설로 가득 찼고, 바닥은 암녹색 안개로 짙게 깔려 아수라장이 되었다. 서준은 그 혼돈을 음미하며 유유히 교실을 빠져나갔다.


밤 10시, 대한민국에서 가장 치열한 욕망이 들끓는 학원가. 도로를 점령한 노란 셔틀버스 사이로 서준이 걸음을 옮길 때마다, 지친 학생들의 어깨 위로 끈적한 암녹색 아지랑이가 옮겨 붙었다.


'지렁이들이 인간의 머리를, 이 세상을 지배하게 될 거야.'


그때, 묵직한 배기음과 함께 검은 SUV 한 대가 서준의 앞을 가로막았다. 차문이 열리고, 차례대로 두 명이 차에서 내렸다.


"생각보다 어리네. 그런데 짧은 시간 사이에 많은 사람들을 물들여놨네."

"참 꼬맹이가 속 썩이네."


남자가 품에서 소금 항아리를 꺼냈다. 서준은, 아니 서준의 껍데기를 쓰고 있는 지렁이는 학원가의 네온사인을 배경으로 찢어질 듯 기괴한 미소를 지었다.


"우리를 잡으려면 세 명으론 힘들 텐데...?"


서준의 입술을 비집고 나온 음성은 더 이상 소년의 것이 아니었다. 수십 개의 쇳조각이 바닥을 긁는 듯한 기괴하고 탁한 파열음이 학원가의 소음마저 뚫고 묵직하게 울려 퍼졌다.


소금 항아리를 든 남자는 서준의 도발에도 표정 하나 바뀌지 않았다. 오히려 짙은 눈썹을 까닥이며 가볍게 콧방위를 뀔 뿐이었다.


"숫자가 중요한 게 아니지. 네놈들 특유의 그 구역질 나는 하수구 냄새를 지우는데는 이 정도면 충분하거든."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남자가 손목을 강하게 튕겨 항아리 안의 소금을 허공에 흩뿌렸다. 가로등의 탁한 불빛을 반사하며 쏟아지는 굵은 결정들은 결코 평범한 소금이 아니었다. 은은하게 푸른빛이 감도는 결정들이 아스팔트 바닥에 닿자마자, 서준의 발 밑에서 스멀거리던 끈적한 암녹색 아지랑이가 마치 염산에 닿은 살갗처럼 '치지직' 기분 나쁜 소시를 내며 맹렬하게 타들어 가기 시작했다.


"크아아아악!"


서준의 입에서 고막을 찢는 듯한 비명이 터져 나왔다. 그러나 고통에 몸부림치는 것은 서준의 육체가 아니었다. 그의 창백한 피부 밑에서 꿈틀거리던 수백 마리의 암녹색 지렁이들이 안면 근육을 기괴하게 일그러뜨리며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 그 순간, 묵묵히 닫혀 있던 SUV의 운전석 문이 열리며 차 안에 남아있던 장씨가 어둠 속에서 걸어 나왔다. 검은 가죽 재캣을 입은 장씨의 손에는 길고 단단한 향이 쥐여 있었다. 향에 불을 붙이자마자 그곳에서 피어 오르는 연기는 마치 살아있는 뱀처럼 그의 팔을 타고 스스륵 감아 올라가며 서늘한 쇳소리를 냈다.


"벌써 저기까지 옮겨가고 있잖아."


장씨의 시선이 암녹색 연기가 흘러가는 곳을 향했다. 그가 가리킨 곳에는 노란 셔틀버스에 지친 몸을 싣던 초등학생들의 옷 사이로 이미 탁한 연기들이 실뱀처럼 파고들고 있었다. 학생들의 눈동자가 서서히 초점을 잃고 기괴한 암녹색으로 물들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보고 있던 남자가 항아리를 고쳐 쥐며 입꼬리를 비틀어 올렸다.


" 그럼, 본격적으로 소금 소독을 시작해 볼까."


남자의 말이 신호탄이라도 된 듯, 장씨가 손에 쥔 향을 허공으로 거칠게 그었다. 매캐하면서도 묵직한 향의 향기가 스치는 순간, 향 끝에서 뿜어져 나온 잿빛 연기가 거대한 구렁이처럼 똬리를 틀며 학원가 도로를 덮쳤다. 연기는 마치 각자의 자아가 있는 포식자처럼 노란 셔틀버스 주변으로 흩어졌고, 아이들의 옷깃을 파고들려던 암녹색 아지랑이들을 정확히 낚아채듯 휘감았다.


"키이이익!"


은빛을 띠는 향 연기와 맞닿은 암녹색 지렁이들은 역겨운 하수구 악취를 뿜어내며 허공으로 튕겨 나갔다. 장씨의 팔을 감았던 연기가 뱀의 형상으로 허공을 가를 때마다, 아이들에게 들러붙어 초점을 앗아가던 지렁이들이 강제로 뜯겨 아스팔트 위로 내동댕이쳐졌다.


소금에 타 들어가고 연기에 찢겨 나가는 지렁이들은 살기 위해 발악하듯 서로의 몸을 엮고 엉겨 붙기 시작했다. 점액질로 뒤덮인 그것들은 순식간에 사람 두세 명은 거뜬히 집어삼킬 듯한 흉측한 고깃덩어리처럼 뭉쳐졌다. 거대해진 지렁이는 셔틀버스를 뒤에 둔 채 기괴한 포효를 했다. 장씨의 향은 뱀의 형상을 하고 거대한 지렁이를 향해 혀를 낼림거리고 정면으로 격돌했다. 도로의 아스팔트가 파이고 셔틀버스의 유리창에 금이 가는 굉음이 밤의 학원가를 뒤흔들었다.


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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