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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달눈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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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lingmoon Dec 04. 2019

빗속에 가려둔 하늘의 진심

네가 부풀어 갔던 그 순간


네가 부풀어 갔던 순간은


사랑을 지나온 시간은 터널과 같다. 그 터널을 모두 빠져나가면 지나온 길이 까마득해진다. 언제 우리가 여기까지 왔을까. 그동안 우리가 얼마나 많은 터널을 지나왔는지는 모르겠지만 분명히 알 수 있는 것이 있다. 그 때로 다시 되돌아 갈 수 없을 만큼 멀리 와있음을, 이 곳에서 우리는 아직 더 가야 할 길이 남아있음을. 우리는 어쩌면 서로 다른 길로 가야 할지도 모른다는 예감과 함께.


하지만 사랑에는 완전한 끝이 없다. 사랑이 다시 찾아올까 의심하는 순간 어느새 사랑은 내 앞에 성큼 와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 예감은 언제나 내 마음보다 한 발 앞선다. 그렇기에 사랑은 예측할 수 없다. 어느 순간 내 앞에 성큼 와있다. 언젠가 어떤 날에 괜스레 생각이 났던 그에 대한 마음이 흔들리고 있는 나의 망설임이라는 걸 알게 된 순간은 비가 보슬보슬 내렸던 아침이었다.




지금 이 마음은, 아마도,

지나가는 인파 속에 유난히 시선을 사로잡았던 사람이라거나,

드라마에서 주연보다 설레게 하는 조연 배우라던가

혹은 소설을 읽으며 '세상에 이런 남자가 있긴 한 걸까'라는

여타 그런 일들처럼 마음이 말랑말랑해질 수밖에 없는 필요조건을 갖춰서라고,

이건 그저 그 사람에 대한 호감이 아닌 단순한 호기심에 가까운 거라고,

내가 생각하는 상상 속의 네가 실제로도 상상밖의 너이기를 바라는 뜬구름 같은 마음,

네가 나에게 그런 행동을 한 이유는 그저 단순한 배려에 지나지 않다고,

네가 나에게 그런 말들을 하는 이유는 우리의 대화 속 내용에 그저 어울리는 말을 한 것이라고.


상대방의 언어를 해석하는 일이 어디 쉽던가.

상대방의 언어를 재해석하는 일은 어찌나 쉽던가.


보슬보슬 내리는 비는 마음을 한껏 센치하게 만들고, 강제로 누군가를 생각하게 한다. 그래서 난 하는 수없이 그를 생각했었다. 이렇게 비가 촉촉하게 내리는데 생각나는 사람이 없다면 너무 쓸쓸할 거 같아서였다. 돌아오는 길에 비가 그치고 하늘이 색을 드러내는 순간, 멍하니 그 하늘을 바라봤다. 날이 점점 개이며 보랏빛 예쁜 하늘이 눈에 들어온다. 이런 풍경은 마음을 한껏 들뜨게 만들고, 누군가를 또 생각하게 만든다. 이렇게 경이로운 자연 앞에서 아무도 생각나는 사람이 없다면 너무 외로울 것 같아서였다. 그래서 난 어쩔 수 없이 그를 또 생각했다.



아니다.



난 결국 그를 생각하고 싶었던 것이다.

 



비 온 뒤 하늘이 뜻하지 않은 변화처럼 느껴졌다. 스포이트 단 한 방울에 쉽게 물들어가는 물병의 색처럼, 한 방울 떨어뜨리면 물풍선을 그리며 순간 부풀어 오르는 작은 구름처럼, 금세 다른 풍경으로 물든다.


마음이 움직이는 건 그렇게 단 한순간이었음을.

마음이 너에게로 부풀어가는 건 그렇게 빠른 속도였음을.


사랑의 시작이 그렇다.

늘 그렇게 찾아온다.

예측 불가능한 결과물,

가늠할 수 없이 부풀어가는 마음의 요동침.


사랑은 늘 내 마음보다 한 발 앞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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