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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은정 Nov 26. 2021

한라산을 등반하여 백록담을 보다



회사를 사직한 지 벌써 4개월 차에 접어드네요.

쉬는 동안 하고 싶었던 일들을 하나하나 도전하고 있어요.


모든 일들이 나의 의지나 뜻대로 되는 것이 아니라 나름의 적절한 때가 있다는 것을 깨닫고 난 후에는 미래에 대한 불안함이나 계획을 잠시 접어두고 현재, 내가 할 수 있는 일에 충실하며 살기로 했어요.


회사를 다시 다니게 될 수도 있고, 플랫폼 운영이 잘 될 수도 있고.. 다양한 가능성을 열어두고 현재에 충실하며 살기로 마음먹으니 어쩌면 지금 맞이하는 공백이 훗날 나에게 좋은 경험이 될 수 있겠구나 싶어요.


그래서 도전하게 된, 날 좋은 가을 10월 생애 첫 한라산 완등기입니다!


결과부터 말하면 과정은 쉽지 않았지만, 뿌듯하고 광활하며 아름다웠습니다.

인생 열심히 살다 보면 뭐든 되지 않겠어? 작아졌던 나 자신이 회복되는 느낌이었답니다.

다시 갈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요!


5시에 기상해서 7시 30분에 산행 시작, 하산한 시간이 저녁 6시 30분.

오롯이 산에서 보낸 시간만 11시간이네요.

진달래 대피소 이후 1시간 30분의 여정은 정말 힘들었어요.

좁고 높은 경사로의 울퉁불퉁한 이끼 낀 돌길을 계속... 올라야 하거든요.

멋진 장관은 노력 없이 그냥 볼 수 있는 게 아니니.. 어쩌면 당연한 걸까요?


저는 성판악 코스로 왕복했는데 (상행 5시간, 하행 4시간) 백록담을 볼 수 있는 2개의 등산 코스 중 하나로 관음사 코스에 비해 완만하지만 길게 오르고 내려야 하는 단점이 있어요.


완만하다고 해서 정말 완만하다고 생각하면 오산! 관음사 코스보다는 완만하다는 뜻으로 이해하시면 될 것 같아요. 이번에 성판악 코스로 하산하면서 무릎이 아프다고 느끼는 순간, 관음사 코스로는 죽었겠구나 싶었답니다.


등산이 일상이 아니신 분들은 성판악 코스도 충분히 힘들다는 점!

그리고 등산화 고민하시는 분들 계신데, 등산화는 필수인 것 같아요. 제멋대로인 현무암 돌밭이 코스의 절반을 차지하므로 등산화는 꼭 신으시는 걸 추천드립니다.





여정의 처음은 데크로 정돈된 등산로부터 완만한 돌밭이 잔잔히 나오며 시작해요.

이때는 주변 돌무덤도 눈에 보이고, 간간이 지나치는 계곡이며 각양각색의 식물들이 잘 보이고, 숲으로 햇살이 스며들어 아름다운 산의 모습을 감상할 수 있어요.

단언컨대 가장 평화로운 시간이랍니다.


그렇게 돌길과 데크길을 1시간 30여분 걸으면 속밭 대피소가 나오는데 성판악 코스 중 화장실은 속밭 대피소와 진달래 대피소 2곳이니 나올 때마다 들려주시는 게 좋겠죠.


또다시 2시간여를 걸으면 그 유명한 진달래 대피소가 나옵니다.

겨울철 뉴스에 간간이 나오던 진달래 대피소에 도착하니 감회가 새롭고 여기가지 온 것만으로도 굉장한 성취감이 느껴졌어요. 게다가 날씨는 얼마나 좋은지! 구름 한 점 없는 멋진 가을이었답니다.





진달래 대피소에선 외국인들을 많이 만났어요.

20살 안팎의 젊은 친구들이었는데 5,6명이 그룹을 지어 두 팀 정도 등반하고 있었어요.


역시나 K컬처의 위력이 대단하구나 느꼈고, 더 놀라웠던 건 등산복 대신 청바지와 워킹화였다는 사실...

청바지는 한라산의 습기를 다 머금고 들어붙어 발걸음을 무겁게 하거든요.


우리가 그들을 신기하게 보듯, 알록달록 등산복과 마스크로 무장하고 눈만 내어놓은 우리를 그들은 또 쳐다보고 ㅎㅎㅎ 한국인은 응달에 옹기종기, 외국인들은 양달에 드러눕기 어쩜 그리 다른지요^^


진달래 대피소 이후, 백록담을 눈앞에 두고 또다시 마주쳤을 땐 너도 나도 상기된 얼굴에 말을 잃는답니다.

쳐다보고 웃고 할 것도 없어요. 너무 힘들거든요!!

숨이 턱까지 차서 광활한 자연의 절경 앞에 멍하니 앉아만 있게 되지요.



 


해발 1900M 지점

평지의 1900M와 수직의 1900M는 차원이 다르죠!

여길 오기 위해 그렇게 먼길을 묵묵히 왔다고 생각하니 감동의 물결.. 정말 몇 걸음 내디디면 백록담이니까요!





청명하고 구름 한 점 없는 하늘과 웅장한 백록담.

백록담을 둘러싼 뽀얀 구름과 찰랑거리게 많은 양은 아니었지만, 짙녹의 오묘한 물 빛깔... 처음 마주 하고의 느낌은 경이로움 그 자체였어요. 너무 아름답고 형용할 수 없는 감동이 밀려옵니다.

고생해서 올라왔던 그 시간들이 다 보상되는 순간이에요.


바람이 말도 못 해서 눈을 제대로 뜰 수 없었지만 이렇게 맑은 날 백록담을 볼 수 있다는 건 행운인 것 같아요. 힘들여 온 여정에 백록담을 보지 못하고 하산하시는 분들도 많다고 들었거든요.

생각해 보면 삶에서 감사한 일들은 참 많은 것 같습니다.


이렇게 한참을 보고, 김밥과 과일로 요기를 했어요. 한란산 등반 예정이신 분들은, 물과 간식이 필수입니다. 저희는 인당 500ml 물 2병, 김밥 1줄 반, 양갱과 초코바, 방울토마토 조금 싸왔고 적당했던 것 같아요.





언제 다시 올지 모르니 명패가 선명하게 찍힌 돌 사진을 찍어야 하겠는데.. 줄이 엄청났어요.

점심 먹고 시간 지나면 좀 나아지나 했는데 그대로... ㅜㅜ 결국 40여분 줄을 서서 인증샷을 남겼답니다.


하산하는데 4-5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백록담 정상에서 늦어도 2시엔 모두 하산하도록 계속 안내방송이 나왔어요. 돌사진 한 장씩만 찍으라고 협조 방송도 많이 하셔서 정말 말 그대로 찰칵. 인증만 남기고 하산을 시작했습니다. 2시에 하산 시작해서 4시간 30분 걸려 6시 30분에 산 밖으로 발을 내디뎠답니다.


6시 반경이 넘으니 어둑어둑.

한라산 입구의 성판악 주차장은 주차 대수가 많지 않답니다. 아침에 등산을 위해 7시 즈음 도착했을 때 이미 만차로, 제주시 쪽으로 내려가서 제주대학교 주차장에 차를 대라는 안내를 받았기에.. 다시 내려가야 합니다.


성판악 주차장에서 제주대학교까지는 자그마치 10킬로! 택시들이 왔다 갔다 하기 때문에 수월하긴 했지만 이해가 안 되는 게, 아니 10 킬로면 거의 제주시 초입인데 불합리해 보였어요. 택시비도 10,000 가까이 나오고요.


사실 제주대학교까지 가지 않으셔도 되고 5킬로 정도만 가면 말들을 풀어놓은 언덕이 나오고 그 옆으로 주차장이 있는데 그 마방 주차장에 차를 대셔도 됩니다. 거기서도 카카오 택시 부르면 오고요.


저희는 초행길이어서 숙소인 중문까지도 먼데 거기다 10킬로를 더해서 죽도록 운전하게 되었죠.ㅜㅜ

어두운 516도로는 정말 블랙홀이고, 굽이굽이 운전하기 어렵기 때문에 하산을 조금이라도 빨리 하시는 게 좋을 것 같아요.


하산 내내 미끄러질까 발밑을 살피며 긴장했기도 했고, 정말 암흑인 도로를 한 시간여 운전하다 보니 목에 디스크가 올 정도였어요. 빨리 저녁을 먹고 쉬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답니다.





드디어 고기 영접!^^

제주 돼지는 특별한 거 먹여서 키우는지 어쩜 기름기도 맛있나요!

쫀득거리는 고기와, 나트륨이 잔뜩 들어간 따뜻한 김치찌개, 갓 지은 하얀 쌀밥은 정말... 거기에 한라산 한잔이라니..ㅜㅜ 지금 생각해도 너무 행복한 순간이네요!


하고 싶었던 일을 하고, 좋은 사람과 맛있는 음식을 나누며, 마음 편한 상태로 있는 게 행복인 것 같습니다.


물론 그 찰나의 행복을 위해 많은 시간을 노동의 수고스러움에 할애해야 하지만 나만 그런 건 아니니... 공평한 인생이라고 할 수 있겠네요.

앞으로의 내 인생이 어떤 방향으로 흘러갈지 모르지만, 그땐 또 열심히 하고 지금의 공백기엔 할 수 있는 일을 하며 마음 편하게 즐겁게 지내야겠습니다.

인생은 버라이어티 하니까요!


PS. 한라산 계획 중이시면 꼭! 등반 예약하셔야 합니다. 입구에서 예약 시 받은 큐알코드 찍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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