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하려고 하는 일은 대부분 슬픔이 되어 다가와
'적당히 하자' 하면서도 가끔 잘하고 싶은 것들이 있다. 예를 들면, 처음 해보는 것들이다. 결혼을 한다거나, 강아지를 키운다거나, 회사에 입사를 한다거나 하는 내 생애 처음인 일들을 맞닥뜨리면 왜인지 모르게 좀 잘 해내고 싶은 욕심이 끌어 오른다.
잘하려는 마음은 늘 뜨겁다. 한 발 뒤로 물러난 자세에서 고민하고 노력하고 그러다 보면 어느 날부턴가 조금씩 지쳐가는 자신을 발견하곤 한다. 더 큰 문제는 이렇게까지 노력을 했는데도 불구하고 돌아오는 건 별로 없다는 것을 느낄 때다. 세상 모든 이치가 주는 게 있으면 받아야 하는 법, 기브 앤 테이크가 되어야 관계는 지속이 된다.
어느 날 내가 염세주의자처럼 행동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 나는 세상에 혼자 남은 기분이었다. 아무도 내 마음을 이해해 주는 사람이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누군가를 만나 밥을 먹고 수다를 떨어도 체온이 따뜻해지지 않았다. 그 시절에는 티브이쇼에서 연예인들이 나와서 웃고 떠들면 왜 이렇게 꼴 보기가 싫었는지, 티브이를 멀리하고 책만 봤다. 책을 읽다 보면 가끔은 내 마음과 잘 통하는 작가를 만나기도 했다. '나만 이런 마음은 아니구나'가 적잖게 위로가 되었다.
그렇게 하루하루를 보내는 건, 슬픔을 켜켜이 가슴속에 쌓는 일이었다. 한 번은 삼촌에게 전화가 왔다. 평소 안부도 잘 묻지 않았지만, 늘 마음만은 따뜻했던 분이었다. 조카라고 있는 게 살갑게 대하지도 못하고 연락도 잘 드리지 못했는데, 삼촌은 언제나 내 마음을 꿰뚫고 있는 것 같았다. 힘없어 보이는 내 목소리를 듣고 삼촌은 이런 말을 꺼냈다.
애쓰지 마, 너 편한 대로 살아. 하고 싶은 거 다 하면서.
삼촌의 한 마디에 왈칵 눈물이 쏟아질 것 같았다. 어떻게 내 마음을 알았을까? 어떤 책에서 읽은 어떤 좋은 글귀보다 더 깊게 나를 흔들어 댔다. 나는 이 말을 찾아 그렇게 헤매었구나. 지금껏 이 말이 듣고 싶어 그렇게 누군가를 만나서 얼굴을 마주하고 이야기를 나눴구나... 하지만 한 번도 해답을 찾지 못한 채 맴돌기만 했구나.
잘하려고 하는 일은 대부분 슬픔이 되어 다가오고, 대충 관심 없었던 일은 오히려 우리에게 기쁨을 줄 때가 있다. 그러니 너무 마음 쓸 필요도, 애쓸 필요도 없다는 것이다. 대부분의 세상일이 마음먹은 것처럼 되지 않는다.
언제쯤이면 진짜 어른이 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타인과 관계를 맺는다는 건 분명 어른이 되는 과정이다. 결혼을 하고 보니, '결혼을 해야 어른이 된다'라는 말에 조금은 동의하게 되었다. 진짜 어른이 된다는 것은, 참고 참고 또 참아내며 속이 문드러져서 더 이상 멀쩡한 마음이 없을 때 그제야 가능한 일이 아닐까.
대충대충 하루를 보내는 것 같지만, 우리는 살아가면서 잘하고 싶은 일들을 마주하게 된다. 하지만 잘하고 싶은 일이 생기면 그것에 관해 100%의 에너지를 쏟지 않았으면 좋겠다. 물론 우주 만물이 내 편이 되어 내가 노력한 것에 대한 피드백이 그 이상이 될 수도 있지만, 아닐 가능성이 훨씬 더 많기 때문이다.
더 많이 정을 준 것에 실망하는 마음이 더 크다. 살다 보니, 그냥 흘러가는 대로 두는 마음을 가지는 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를 느끼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