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알아주는 한 사람이면 충분하다

누구나 아픔을 가진 채로 산다

by 김효정

행복은 아주 사소한 것에서 시작된다는 이야기처럼, 그렇게 단순하게 살아보기로 마음먹는다.

내 삶에 집중하기, 남하고 비교하지 말기, 누군가를 미워하지 않기, 욕심부리지 않기, 조금 손해 본다고 억울해하지 않기... 단순한 줄 알았더니 행복을 위한 조건이 꽤나 많다. 사소하고 소박한 것에서 행복을 찾는다는 것은 실상 쉽지 않은 일이다. 살면서 느끼게 되는 수많은 감정들은 오히려 단순하게 생각할수록 그 체감이 커지기 때문이다. 사실 감정을 조절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며칠 전 아침, 출근을 하면서 남편이 내게 말했다.

"오늘 나 반차야, 아버지 요양원 옮기시거든 가서 기사 해줘야 할 것 같아."

"왜 이제 말했어. 나도 가봐야 하는 거 아니야?"

갑작스럽게 이야기를 꺼낸 건, 내가 부담될까 했던 그의 배려였던 것 같다.


시아버지의 얼굴을 못 뵌 지 반년이 다 되어갔기 때문에, 나는 무리를 해서라도 가는 게 맞았다. 시아버지는 치매에 허리까지 다치셔서 이제 거동조차 할 수 없게 되었다. 시어머니 혼자 시아버지를 돌보는 건 힘겨운 일이었다. 그간 몇 년 동안을 시아버지 수발에 외출조차 쉽지 않았던 시어머니는 거의 대부분의 일상을 포기하며 지내셨다. 그러다 보니 몸도 마음도 지쳐갔다. 정정하셨던 시어머니의 건강에도 문제가 생겼다. 위염이 심해지면서 안 그래도 마른 몸이 더 야위었다. 병원 치료를 다니면서 어머니가 아버지를 돌보는 것은 더 이상 무리였다. 가족은 별다른 선택지가 없었다. 아버지를 요양원에 보내는 것 외에는. 시어머니가 우리를 불러 시아버지가 요양원에 입소하게 되었다고 통보를 하셨다. 남편의 표정이 슬퍼 보였지만, 그는 어머니가 더 힘드실까 내색하지 않는 것 같았다. 시어머니는 시누이가 펑펑 울었다고 말했다.


시아버지가 요양원에 입소하면서 우리는 그를 볼 수가 없었다. 심지어 우리의 결혼식에도 참석하지 못했다. 결혼식이 끝난 후에도 마찬가지였는데, 코로나19 바이러스 원천 차단을 위해 요양원은 봉쇄에 가까웠다.


급하게 시간을 내서 새로운 요양원으로 향했다. 요양원 근처의 카페에는 이미 남편의 큰아버지 부부와 시누이, 그리고 남편이 도착해 있었다. 나는 남편을 보자마자 물었다.


"어머니는 어쩌고."

"아버지 데리러 가셨어. 곧 오실 거야."


우리는 시어머니와 시아버지를 태운 구급차를 기다렸다. 얼마 지나지 않아 구급차가 도착했고, 이동 침대에 누워계신 시아버지를 뵐 수 있었다. 시아버지는 처음 만나 뵈었을 때 보다 더 야위어 보였다. 처음 뵈었던 날, 그때도 치매로 사람을 잘 알아보지 못하셨지만, 시어머니가 며느리 될 사람이라고 말하자, 희미한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곤 손을 꼭 잡으셨다.


"고맙소."


이 한마디가 왜 이렇게 가슴에 와닿았을까. 먹먹하게 잊히지 않는 말. 내심 아들의 결혼을 기다리고 계셨을까. 혼자인 아들에게 짝이 생겼다니 기쁘셨을까.




시어머니는 그간 참았던 눈물을 터트리셨다. 한 번도 어머니의 마음에 대해 깊이 생각하지 못했다. 시아버지를 돌보느라 힘들었던 부분만 떠올렸는데, 40년을 넘게 함께 지낸 부부의 마음이라는 것은 내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것이었고, 한 마디로 표현할 수 있는 단어도 아니었다. 지금 가장 괴로운 건 시어머니가 아닐까.


병실로 올라가는 엘리베이터를 기다리고 있는데, 간호사가 말했다. “두 분 밖에 못 올라가세요."

병실에는 시어머니와 시누이가 들어가기로 했다. 이렇게 시아버지의 얼굴을 뵈는 건 이 짧은 5분이 전부였다. 또 언제 뵐 수 있을지. 나는 남편의 표정을 살폈다. 아무런 표정이 없이 무덤덤한 얼굴. 생각해보니 그는 늘 그랬던 것 같다. 정말 즐거울 때 빼고는 얼굴에 표정이 잘 드러나지 않았다. 그래서인지 더 안쓰러워 보였다. 힘들어도 잘 내색하지 않는 스타일.


'부모님 두 분과 함께 외식하는 것' 최근 내가 가장 해보고 싶은 일이다. 그냥 누군가에게는 가장 평범한 일이, 누군가에게는 할 수 없는 일이 된다. 나와 남편이 그랬다. 남편은 아직 아버지가 계시지만, 그래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우리는 서로의 아픔을 보지 않아도 느낄 수 있었다. 그래서 더 서로를 가여워 여기면서 껴안아줬을까. 이런 마음이 있어 참 다행이었다. 그렇게 어쩌면 너를 만난 건 참 고마운 일이라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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