쇼잉 같은 건 체질상 안 맞는데

by 김효정

필요 없는 야근은 하지 않는다.

설령 필요하더라도, 업무시간에 최선을 다해 빠른 길을 찾는다. 아닌 사람도 존재하겠지만, 자주 야근을 한다는 것은 무능력한 사람들의 특징이다. 그리고 업무시간에 내내 놀다가 다들 퇴근한 후에야 일을 시작하는 올빼미족의 습관이기도 하다.


하루 종일 미친 듯이 일을 처리하다 보면 금방 퇴근시간이 다가온다. 그래도 업무량이 많을 땐 야근을 해야 한다. 우리 회사는 야근 수당이 지급된다. 연봉에 야근수당을 포함시키는 곳이 더 많지만 우리 회사의 경우는 다르다. 연봉이 적은 대신, 야근수당이 있다.


야근수당이 있다는 건 회사 입장에서 리스크를 감수해야 하는 일이다. 상대적으로 회사 인원이 적은 곳이라면 그런 일은 잘 발생하지 않겠지만, 인원이 많아지면 야근 시간에 대한 관리가 어려워진다. 취지는 좋다. 일을 한 만큼, 초과 근무시간에 대한 돈을 지불하는 것이라 어찌 보면 정당하다. 그런데 문제는 야근에 수당이 붙으면 일의 능률이 떨어진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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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속한 조직은 중소기업이지만 인원이 300명이다. 하지만 팀별 운영 성과를 측정하기 애매한, 아니 측정할 수 없는 업무를 한다. 게다가 개인 성과 측정이나 프로젝트 기여도와 같은 테이블도 존재하지 않는다. 그래서 매년 연봉 책정은 서류가 내려오고 일할 의사가 있는지 없는지를 사인해서 제출하는 방식이다. 그래서 이곳에 들어오는 순간, 제아무리 의욕이 넘친다고 했던 사람도 의욕이 없어지고 금방 이 체계에 순응하게 된다.


최대한 일을 받지 않는 것, 대충 슬렁슬렁 업무를 진행하는 것, 알아도 모른 척해야 하는 것. 이런 이야기를 적고 있는 나도 좀 슬퍼지려 하지만, 어느 순간 이 조직의 일부로 지내기 위해서는 이 방법이 가장 효과적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내년이면 이 회사도 입사하지 6년 차가 된다. 그동안 다양한 업무를 맡았다.


어느 조직이든 마찬가지겠지만, 이곳도 정치판이 아주 깊숙하게 자리하고 있었다. 정치라면 치를 떠는 나에게, 왜 회사는 일을 열심히 해도 알아주지 않는가에 대한 고민은 참 바보 같은 생각이었다. 회사는 개개인의 노력이나 그 많은 프로젝트의 성과에 대해 알 수 없다. 누구는 더 열심히 안 했을 것인가. 모두 다 자기 기준에서는 최고로 열심히, 최선을 다해 업무를 수행했을 것이다. 게다가 전문직이 아닌 이상, 아무리 연차가 쌓인다고 한들, 그 무엇으로 그 사람의 업무를 평가할 수 있다는 말인가.


다시 야근으로 이야기를 돌려본다. 업무 평가 기준이 없으니, 누가 회사에 근퇴를 잘 지키는가. 누가 가장 오랫동안 일하는가가 우리의 성과를 판단하는 기준이 되었을 것이다. 문제는 업무시간 내내 자리를 비우거나, 자거나, 딴짓을 하거나 하다가 어둑어둑해질 무렵 업무를 시작해도 가장 오랫동안 회사에 남아 있으니 그 사람은 이 회사에서 가장 오래 일을 하는 인재가 되는 것이다. 게다가 매 시간당 수당이 주어지니, 이렇게도 좋을 수가.


그러면서 매일 피곤하다는 말을 입에 달고 어제도 새벽에 퇴근했다는 그를 보면서 공감을 해주기란 쉽지 않다. 처음에는 이런 시스템에 화도 많이 내고 불합리하다는 생각도 했지만, 이게 회사의 방침이라면 그대로 따라주는 것이 맞다. 그냥 우리는 일개의 직원이고 하라는 데로, 시키는 데로 하면 되는 로봇인 것이다.


회사 오너는 마음이 착한 사람이다. 하지만, 회사 업무에 대한 프로세스나 어떤 방식으로 비용절감을 이뤄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한다. 우리 실의 장이 무마해버리면 알 길이 없다. 가끔 목소리를 낸다고 해도 그도 잘 듣지 않는 게 오너의 자리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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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에서 하라는 데로 해요. 저녁까지 늦게 남아 있길 원하니 그냥 있죠 뭐. 시간 때우다가 가도, 돈도 벌고 좋아요."


동료의 이야기다. 나하고는 맞지 않는 가치관이다. 하지만 오래전부터 들어왔던 이야기. 쇼잉을 해야 한다는 것. 회사생활을 잘하는 것은, 쇼잉을 잘하는 것이라고 수도 없이 들어왔다. 회사생활뿐만 아니라, 모든 게 다 그렇다. 보여주기를 잘해야 좋은 사람이 되고 배려가 깊은 사람이 된다. 그리고 그걸 어른이라고 말하는 사람들.


몇 년이 될지는 모르겠지만, 앞으로도 난 조직생활을 해야 한다. 그러려면 '쇼잉을... 해야 한다'라고 생각하겠지만 난 또 그저 나답게 내 마음대로 살 거다. 내 방식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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