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해관계가 맞지 않더라도

꼭 그렇게 재고 따질 필요는 없다

by 김효정

나는 평화주의자다.

싸우는 걸 극도로 싫어한다. 그래서 웬만하면 타인의 기분을 건드리지 않는...다.


그래 지금껏 내가 그런 줄 알았다. 그런데 무심코 던진 단어 하나를 가지고 이렇게까지 거슬려하는 사람이 있을 줄이야.


그리고 그 사람이 앞으로 평생 나와 살아가야 하는 남자라는 것에 또 한 번 좌절하고 만다.


싸움이라면 이골이 날만큼 싸웠다. 평생 할 싸움을 지금 이 시기에 다 겪은 것처럼 더는 어느 누구와도 싸우고 싶은 생각이 들지 않는다. 처음 알았다. 싸우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아도, 이기고 싶은 전투력이 없어도, 상대가 싸움을 걸어오면 피할 수 없는 상황도 있다는 것을.


그는 세상 최고의 파이터다.

뭔가 기분이 상하거나 자기 뜻대로 되지 않으면 세상에서 가장 실력 있는 뮤지컬 배우가 된다. 지구를 뚫고 올라갈 쩌렁쩌렁한 목소리로 한 편의 뮤지컬을 시작한다. 그 실력으로 왜 배우나 성악가는 안 했는지 모르겠다.


그가 처음 파이터의 기질을 보여준 날 나는 충격에 빠졌다. 만나면서 한 번도 그런 모습을 볼 수 없었는데, 처음 그가 지르는 소리에 너무 놀라, 무언가 잘못되었음을 직감했다. 한 번이 어렵지 그 후로 그는 자주 내 앞에서 뮤지컬을 했다. 잘잘못을 따지고 싶지도 않았다. 이런 코 묻은 싸움에, 그래 봐야 무슨 의미가 있나 싶었다. 그냥 나는 빨리 고요해지길 바랐다.


어쩌면 미리 겪어 다행이라는 생각과 앞으로 내가 안고 가야 할 것들을 떠올리며 얼굴이 살짝 화끈거렸다. '지는 게 이기는 거야'라는 말을 많이 들어왔다. 달리 해석하자면 '화나도 참아라'는 이야기다. 그런데 무작정 한쪽이 고요해진다고 이 싸움은 끝이 나지 않는다. 고요해지는 상대를 보면 더 화가 나는 사람도 있는 법이다.

세상 모든 일이 그러하듯 익숙해진다. 어차피 싸움이 나는 건 매우 사소한 일 때문이다. 그러니 그냥 이기고 지는 건 애당초 아무 쓸모없다는 이야기다. 그냥 아무 일 없다는 듯 그렇게 태연하게 각자의 일을 하면 된다. 그런데 사과까지 하라는 건 참혹한 교수형이다.


각자의 입장에 서자면 둘 다 잘못한 일은 있다. 서로 사과를 해야 마땅하다. 하지만 그럴 마음이 없으므로 어느 누구도 먼저 사과하라고 말할 권리는 없다.


옛날 같으면 중년의 나이에 접어들었다고 늙은이 취급을 받을지도 모르겠지만, 요즘 시대에 이제 마흔 살은 어린애나 다름없다. 그러므로 우리 둘은 앞으로도 더 많이 유치해질 것이며, 더 많이 싸울 것이다.


살다 보면, 이해로만 되는 게 세상 일이 아니라는 것쯤은 알아야 한다. 완벽할 수 없는 서로의 삶에 불완전한 인간의 한 사람으로 나를 보듯, 상대도 관대하게 바라봐줘야 한다. 결혼이라는 것은 이해받으려고 하는 게 아니라, 더 많이 이해해주기 위해 하는 것이다.


그래도 미래에 남편님에게 감히 한 마디 한다면…


“내가 사랑하는 건 뮤지컬 배우는 아니니까 가끔의 변신도 조금은 자제해 주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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