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은 분명 도피처는 아니다, 그러나 가끔은 쉼터가 될 수 있다
어떻게 생각하면 행운이다.
결혼을 할 수 있다는 게. 내 인생이 몇 년 전과 달라진 점이 있다면 함께 미래를 꿈꿀 사람이 곁에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이 모든 게 희극일 순 없다. 희극은 비극과 함께 존재한다.
나는 부족한 사람이다. 그래서 늙어서까지 혼자서 세상을 살아낼 자신이 없다. 만약 그를 만나지 않았더라면 나는 아직도 일에 미친 듯이 내 열정을 쏟아내고 있을까. 어떤 책에서 이런 글을 읽은 적이 있다.
"일은 사람을 배신하지 않는다."
그런데 다른 식으로 생각하면 일도 사람이 하는 일이다. 사람 위에 일이 있지 않듯이, 일도 사람이 좌지우지하는 것이다. 일은 나를 배신했다.
누구보다도 잘하고 싶었다. 그래서 나의 역량을 모조리 쏟아부으려고 노력했다. 물론 이런 열정 때문인지 어디 가서 일 못한다는 소리는 들어본 적 없다. 한때는 그걸 행복으로 알고 살았다. 한 선배는 내게 말했다.
"기획자가 기획만 하면 되지, 글은 왜 써요? 기획하는 것만으로도 힘들어요."
그래도 나는 발로 뛰었다. 기획도 하고 직접 취재도 하고 촬영 콘셉트도 짜고, 에디팅도 하고, 때로는 스타일리스트도 되었다. 그만큼 콘텐츠에 대한 열정도, 애정도 많았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윗사람 말을 잘 듣는 착한 바보가 승진을 했다(바보인 척하는 여우가 더 맞겠지만). 이런 일들이 반복되다 보니 내가 회사생활을 정말 못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장 중요한 것은 회사의 방향성이었다. 내가 원하는 방향이 아닌, 회사가 원하는 방향. 그리고 돈이 되는 일을 하는 것. 돈이 되는 일을 가져오는 것. 결국 모든 것은 수익이냐 아니냐로 갈렸다.
그렇게 힘쓰지 않아도, 애쓰지 않아도 괜찮았다. 어차피 우리 모두는 각자의 위치에서 싸워야 하는 용병이었다. 내 나이 서른아홉, 내 마지막 30대를 일이 아닌 다른 것으로 채울 수 있어서 얼마나 다행인가.
고개를 살짝 돌리면 다듬어지지 않은 수많은 보석들이 나를 향해 손짓하고 있는 것을. 굳이 이 일에 목숨 걸지 않더라도 나는 하고 싶은 일도, 해야 할 일도 많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충분히 이기적으로 살아왔다고 생각했는데, 허당이었다. 실속 없는 속 빈 강정이 꼭 나 같았다. 물론 결혼이 모든 것을 해결해 주진 않는다. 모든 선택은 양날의 검과 같아서 어떤 선택을 하든, 상황에 맞는 옷을 입고 최선을 다하면 그만이다.
그리고 언제나처럼 코너에 몰리면 버릇처럼 하던 '자기 합리화'를 시작했다. 나는 언제나 이런 식으로 나를 감싸 안았다. 이상하게도 자기 합리화를 하기 시작하면 특별한 존재가 된 것 같아 어깨가 으쓱해졌다.
출판업계가 많이 흔들린다. 며칠 새 여기저기서 안 좋은 소식이 들려온다. 불안한 감정에 휩싸이고 힘이 빠지기도 하지만, 그래도 참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처음으로 감사했다. 혼자가 아니라는 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