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중한 것들이 나를 무겁게 한다
내 마음껏, 최대한 덜어내고 가볍게 사는 걸 지향하던 내가 가끔은 무거워질 때가 있다. 고향이 광주인 나는 9년째 서울에서 혼자 산다. 한 달에 한번씩은 집에 내려가는데, 편히 쉴 수 있는 주말을 포기하고 집에 가는 이유는 바로 가족 때문이다.
목 빠지게 나만 기다렸다는 듯 달려와 내 품에 안기는 강아지의 눈빛과 더 맛있는 걸 주지 못해 안타까워하는 엄마의 따뜻한 마음에서 나는 무거워진다. 오로지 내게만 집중하고 살던 시간이 참 못났다 싶을 정도로 가족은 나를 부끄럽고 무겁게 만든다. 혼자 잘 살아보겠다는 마음이었던 것인지, 나는 나 스스로를 외롭게 만들고 혼자이게 할때가 많았다. 정원사에게 잔가지 하나없이 잘 관리된 나무처럼, 보기에는 좋을지 모르나 자연미는 찾아볼 수도 없는 그런 깊이 없는 인생 말이다.
명절을 지내고 다시 서울로 올라오는길, 홀로 나를 배웅하며 손을 흔드는 엄마를 보면서 가슴에 벽돌을 몇 십개는 올린 것처럼 무거웠다. 지금의 내가 자유롭고, 좋을 수 있는 건 그저 내가 젊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대로가 좋다, 난 괜찮다고 수십번 되뇌였지만 조금더 나이들어도 이 마음이 계속될 수 있을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은 좋아서 하는 일이지만, 내가 언제까지 이 일을 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마흔이 되어서도 난 계속 누군가의 기대와 격려속에 일을 할 수 있을까. 삶에 균형과 안정감이 없다는 것은 참으로 슬픈일이지만, 오늘을 사는 평범한 현대인이라면 죽을 때까지 짊어지고 가야할 운명이기도 하다. 사실 가장 슬픈 것은 이대로 나이드는 것이다. 몸은 날이 갈 수록 약해진다. 조금만 무리해도 기운이 없고, 어릴 땐 없었던 생리통이 절로 생길만큼 나이 먹는 다는 것은 서글픈일이다. 친구들은 "능력만 있으면 혼자 살아"라고 하지만, 대한민국에서, 아니 이 세상에서 일하는 여자로 살기란 쉬운 일만은 아니다. 일하는 여자가 제대로 살려면 일이 전부가 되어야한다.
나는 슬며시 내 삶에서 일을 빼기로 마음먹었다. 일에 집착했던 날들에서 나는 스트레스로 고통받고 시도 때도 없이 우울했으며, 온몸이 부서질만큼 아팠던 적도 있었다. 어릴적 오래달리기에서 일등을 하겠다고 미친 사람처럼 전 속력으로 달리다 숨이 넘어갈만큼 힘들었던 적이 있었다. 뛰는 나를 향해 담임 선생님의 말 한마디는 아직도 잊혀지지 않는다. "너 바보냐?" 그 일등이 뭐라고 나는 죽을 듯이 달렸던 걸까. 내려놓자. 나를보자.
한 남자의 여자로 살고 싶다가도 똑같은 놈들에게 실망하고, 작은 일도 견디지 못하는 내게 실망하다가 행복의 정의를 찾기위해 지새웠던 밤을 생각한다. 행복이란 정의를 내릴 수 없는 것. 상황에 따라 달라질 수 있지만 지금의 내가 생각하는 행복은 조금 이기적이다.
하루는 너무나도 생뚱맞게 엄마에게 행복을 이야기했다. "행복이란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것이야." 엄마는 아무런 대꾸없이 나를 바라보기만 했다. 철부지 어린아이를 보듯이 미소를 지었지만, 내심 이런 말을 서슴없이 할 수 있는 나를 부러워하는 듯 했다.
모든 사람들이 그렇겠지만, 걱정없이 사는 게 꿈이다. 좋아하는 꽃과 나무를 가꾸고, 건강식을 지어먹고, 글이나 쓰면서. 빠른 시간과는 등돌리며 사는 그런 가볍고도 무거운 꿈. 오늘도 누군가 내게 이런 말을 해주었다.
너 행복해 보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