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 네가 뭘 할 줄 안다고 그러냐'
아버지가 내게 자주 하던 말이었다. 돌이켜 보면 그 말은 어린 내가 귀여워서 한 말이었다. 나도 조그만 아들이 세상을 향해 도전을 꿈꿀 때, 그 모습을 어여삐 바라보았다. 너무 귀여우면 놀리며 장난치고 싶기 마련이기에 아버지도 어린 나를 볼 때 그런 마음이 아니었을까 한다.
안타깝게도 그 시절의 나는 아버지의 말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였다. 생각해 보면 나는 아버지의 말대로 정말 잘하는 것이 하나 없는 평범하다 못해 소극적인 아이였다. 운동 하나를 특출하게 잘하는 것도 아니고, 공부는 잘했는데 초3 이후로 매우 평범해졌으며, 고등학교 시절에는 중하위권이었다. 내가 누구인지 스스로 무지했던 시절, 공부와 운동을 잘하지 못하면 대체 나는 무엇을 잘하는 것인지 알 수 없었기에, 나는 아버지의 말을 적극 수용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아버지가 규정해 준 모습 안에 나는 딱 맞게 잘 들어갔다.
실제 무언가 하나를 해도 남들보다 행동이 어설퍼서 주변 친구들이 나의 언행을 미리 짐작하고 도와주었다. 나는 그런 나의 어리바리한 이미지를 이용해서 무난히 해낼 수 있는 일도 괜히 더 어리숙한 척을 했다. 어리숙한 척하며 어쩔 줄 몰라하면 주변에서 그런 모습을 견디지 못하는 일부 친구들이 나를 대신해 행동으로 옮겨주었기 때문이다. 이십 대 중반까지도 그랬다.
그러던 나는 우연한 기회로 상담교사 준비를 하게 되었고, 정권의 교체와 함께 비교과 교사들을 많이 채용하겠다는 공약을 등에 업고 상담교사에 덜컥 합격하게 되었다. 그렇게 아무것도 모르지만, 상담 관련 지식은 교과 교사보다 약간 많이 아는 채로 교직생활을 시작했다. 한 학교에 상담교사는 무조건 1인일 수밖에 없다는 사실과 직업인으로서 계속 어리숙한 척할 수는 없기에 낯선 곳에서 나는 오히려 상담교사로서의 정체성이 어색하지만, 매우 자연스러운 척 연기를 했다.
상담교사는 대게 일반 교사들에게 자문하는 역할을 많이 한다. 학급 지도에 어려움이 있는 학생이나 위기 청소년들을 어떻게 대해야 할지 선생님들이 자주 물어보기 때문이다. 그럴 때 불안해하는 교사를 안심시키고 적절한 개입방안을 제시하는 것은 상담교사의 중요한 역할 중 하나이다. 이러한 직업적 숙명을 헤쳐나가다 보니 주변에 늘 도움을 받던 내가 항상 도움을 제공해야 하는 위치에 서게 된 것이었다. 이는 매우 어색한 역할이었으나, 이를 어색하게 생각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이상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나 혼자 뿐이었다.
맡은 바 자리에서 열심히 하다 보니, 어느새 지역 내에서 꽤 인정받는 상담교사가 되었다. 관리자들이 말해주기로 관리자들 사이에서 내 이름이 자주 거론된다고 했고, 동료 교사들은 내 말을 믿고 신뢰한다고 했으며, 학생에게 무슨 일이 생기면 일단 교교 샘에게 물어보라고 서로 조언한다고 했다. 어린 내가 지금의 나를 본다면 놀라 나자빠질만한 일이다.
나는 이런 역할을 해내면서도 스스로에 대해 끊임없이 의심했다. 그러던 중 작년 '교사 치유모임'을 일 년간 진행하며 스스로에 대한 의구심은 나를 집어삼켰다. 매주 진행되는 집단상담에서 나는 '잘하고 있다'와 '모임을 이끌어갈 만한 자격이 없는 사람' 사이를 오가며 조금씩 자신을 갉아먹었다. 옛날처럼 어리숙한 척을 하면 누군가 대신 모임을 이끌어가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내가 물을 때마다 모임 구성원들은 모임이 만족스럽다고 말했지만, 나는 그 말을 의심하고 또 의심했으며 의심의 발원지는 스스로에 대한 확신에 가까운 의심이었다.
그렇게 슬럼프를 겪었다. 검은 연기가 나를 거의 집어삼킬 때쯤, 나는 정신을 차려 주변을 둘러보기로 했다. 이제 내가 아닌 나를 기억해 주는 사람들의 말을 믿기로 한 것이다. 인생의 많은 문제들을 해결하고 안정을 찾은 선생님은 좋은 상담교사가 될 것이라는 교수님의 말을, 첫 근무지에서 내게 많은 것을 배웠다며 고개를 숙인 선배 교사의 말을, 나를 학교의 보물이라고 말해주는 교무부장님의 말을, 그리고 나를 믿어주고 함께해 준 동료 교사들의 말을 말이다.
내가 보지 못하는 나의 모습을 봐주는 사람들이 있다. 남들이 보는 나와 내가 생각하는 나는 때로 전혀 다른 사람이다. 내가 제일 잘 안다고 생각하는 나는 때로 틀릴 수 있으며, 남들이 지켜봐 주는 내가 있기에 타자와의 관계에서 나라는 존재는 더욱 의미 있다. 내가 애정하는 이들이 봐주는 나의 좋은 면들을 나는 그저 믿고 받아들이면 될 일이다. 그렇게 나를 마지막까지 인정해주지 않는 사람이 나 자신임을 알게 될 때, 나는 나 자신에게 가장 용서를 구하고 미안해야 할 사람이 되어있었다.
내가 생각하기에 인생은 나를 어여삐 봐주는 사람들과 손을 잡고 연대하며, 나와 주변과 세상에 도움이 되는 행동을 해나가는 것이 중요하다. 사람들과 세상에 손을 내밀기 위해 우선은 먼저 자신을 관대하게 봐주고 어여삐 봐주는 마음이 필요할 것이다.
이제 나는 안다. 혼자의 힘으로 여기까지 온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그리고 누군가의 믿음이 나를 일으켜 주었다는 것을 말이다. 결국 삶이란 서로가 서로를 지켜봐 주는 일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 시선으로 인해 우리는 조금씩 더 단단해진다. 그렇게 흔들릴 때 나를 붙잡아준 어느 이의 손처럼 나도 누군가의 손을 놓지 않는 사람이 되었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