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1학년, 낯선 세상에 던져지다
상담교사 아빠로 살아남기
올해 아들이 초1이 되었다. 소도시에 사는 우리 가족은 아들이 초1에 입학하는 시기에 맞추어 옆동네 신도시로 이사왔다. 아들은 유치원 절친과도 헤어졌고 낯선 집, 낯선 학교, 낯선 동네에서 새로운 시작을 하게 되었다.
아이는 이러한 낯섦을 좋아하지 않았다. 낯선 집에서 적응하느라 입주 초 화재경보기가 몇 번 울렸고 아이는 그때마다 울음을 터트렸다. 새로운 집이 싫다 했고 화장실로 가는 긴 복도도 무섭다고 했다. 아이에게 낯섬은 무서움이었다.
입학 이틀째 밤 아이가 학교 가기 싫다고 말했다. 걱정하고 기다리던 순간이다. 입학 전 주변 지인들에게 물어보니 초1에 입학하면 아이들이 짧게는 한 달, 길게는 한 학기까지 적응에 어려움을 겪는다고 했다. 그렇기에 아이가 학교생활이 힘들다고 말하는 것은 예견된 일이었다. 하지만 이틀 만에 아들이 이야기를 하게 된 것은 나의 예상보다 더 일렀다.
일주일이 지났다. 아들은 아침에 문을 나설 때마다 학교에 가기 싫다고 한다. 쉬는 시간에는 자기 자리에서 책을 본다고 했다. 친구들과는 이야기를 나누지 않는다 했고, 화장실에 가면 친구들이 불을 켰다끄는 장난을 치고 있으며 변기 소리도 엄청 커서 학교생활은 정말 최악이라고 했다.
하지만 최악의 상황 속에서도 아빠에게 이런저런 이야기를 털어놓는다는 것은 좋은 일이라 생각했다. 아빠로서 안전기지 역할을 해주고 있다는 뜻이다.
적응이 힘든 기간 동안 아이는 평소와 다른 행동을 하기 시작했다. 학교에 다녀오면 두 시간이고 세 시간이고 책을 읽었다. 현실의 어려움으로부터 잠시 자신을 도피시키는 중이었다. 책을 많이 읽는 아이를 위해 매일 도서관에서 책을 싣어날랐다. 한 날은 자신이 마음에 들지 않는 책을 빌려왔다며 절대 안 읽겠노라고 성질을 부렸다. 나도 함께 화를 냈지만 학교에서 적응하느라 힘든 아들이 괜한 투정을 부렸던 것이라고 나중에 문득 생각이 들었다.
또 한동안은 집에 오자마자 바로 밖으로 나가자 했다. 낯선 동네를 정처 없이 떠돌아다니며 동네의 놀이터와 카페 등을 다니고 늦은 시간까지 밖에서 시간을 보냈다. 학교에서 어색해서 친구들과 어울리지 못해 마음껏 뛰어놀지 못하는 아들을 위해 힘들어도 함께 동네를 뛰어다녔다. 깔깔거리는 아들을 보며 같이 힘을 냈다.
두 달이 지나자 아들은 학교에 점차 적응해 갔다. 더 이상 책을 몇 시간씩 보지도 밖으로 나가자고 하지도 않는다. 태권도가 끝나면 친구들과 놀이터에서 잠시 놀다 오기도 하고, 책 속으로 숨지 않아도 현실이 그럭저럭 살만하기 때문일 것이다.
아빠가 있었던 자리에는 새로운 친구들이 들어왔다. 하나씩 제자리를 찾아가는 느낌이다. 아이들이 힘들어할 때 먼저 불안해하지 않고 부모로서 자신의 위치를 지키고 있으면 아이들 스스로 문제를 해결할 때가 있다.
아이들은 상상과 놀이를 통해 자신을 치유하는 능력이 있다. 함께 동네를 뛰어다니고 책을 읽으며 아들은 끊임없이 자신을 위로하고 치유했을 것이다. 부모는 자녀가 필요로 할 때 결핍의 자리에서 함께 버텨주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