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들과 다른 모습으로 살아간다는 것

by 교교

초등학교 3학년 때, 머리를 심하게 다쳐 뇌수술을 받았습니다. 수술을 받고 나니 머리에 귀부터 반대쪽 귀까지 수술 자국이 남았고, 회복 기간 동안 저는 거의 잠만 잤습니다. 어느 정도 회복을 하자 걸을 수 있게 되었고, 엘리베이터에 탔을 때 거울에 비친 제 모습을 스스로 확인하는 것보다 더 빨랐던 것은 어른들의 "쯧쯧"하는 안타까움의 소리였습니다. 그 소리에 저는 제 모습이 남들과 다르다는 사실을 금세 알 수 있었습니다.


퇴원 후 머리를 기르며 수술을 받았다는 사실조차 잊고 살아가다가, 중학생이 되자 80년대 생인 저는 머리를 짧게 깎아야 했습니다. 수술을 했다고 편의를 봐주는 것은 상상할 수 없던 시절이었기에, 저는 여느 중학생들과 같이 머리를 바짝 자르고 입학했습니다. 그때부터 중·고등학교 시절을 지나 군 시절까지, 저는 제 머리에 깊이 패인 상처를 남들에게 드러내며 살아가는 삶을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머리를 다쳐 지도에 유의를 부탁한다는 부모님의 부탁에 담임교사는 책상 배치도의 제 이름 옆에 (뇌수술)이라고 친절히 적어놓았습니다. 그런 배려 아닌 배려에 '남들과 나는 뭔가 다른 사람이구나'라는 인식은 마음속에서 계속 자라났습니다. 머리를 다친 일로 심하게 나를 괴롭히는 친구는 없었지만 친구들은 종종 나를 '머리띠'라고 불렀고 그 말은 어린 저에게 상처였습니다. 그럴 때마다 나는 애써 아무렇지 않은 척하며 넘겼습니다. 괜찮은 척하는 것이 내가 남들과 다른 사람이 아니라는 증거가 되어줄 것처럼 행동했습니다. 그렇게 나의 어린 시절은 누구나 볼 수 있게 상처를 훤히 드러내 놓으면서도 상처를 감추고자 했습니다.


"너는 머리를 다쳤기 때문에 군대에 안 간다"라는 말은 귀가 닳도록 들었지만 시력이 나쁘다는 이유로 2급을 받았고 머리를 다친 것은 입대하는 것에 어떠한 지장도 주지 않았습니다. 군대에서도 사람들은 나를 좀 신기하게 생각했고, 어떤 이유로 그리도 큰 상처가 머리에 생긴 것인지 각자 상상의 나래를 펼치기도 했습니다. 계급이 올라가면서 신병이 들어오면 그런 내 외형을 보고 괜히 어려워하기도 하고, 무서워할 때도 있었습니다. 물론 동기들이 나의 상처에 대한 히스토리를 무섭게 지어낸 탓도 있지만 말입니다.


전역을 하고 머리를 다시 기르면서 사회의 구성원으로 평범히 살다 보니, 저도 주변 사람들도 내가 큰 수술을 했다는 사실을 다시 잊게 되었습니다. 제 머리에 남은 큰 상처는 보자기로 잠시 덮어놓은 것처럼 머리카락이 가려주게 되었지만, 제 상처가 없어진 것은 아닙니다. 내 머리카락과 기억 속에 남아 있으니 말입니다.

그렇게 조금 다른 외형으로 살아보니, 남들과 다른 모습을 하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안 해야 할 설명을 해야 하거나 나를 이해시키는 과정이 한 번 더 필요했습니다. 남들과 다른 모습은 겉으로 보일 수도, 보이지 않을 수도 있지만, 단지 외형만으로 타인을 판단하는 것은 섣부른 일입니다. 조금 다른 모습이 편견이 아닌 이해의 시작이 되기를, 그래서 누구나 있는 그대로 존중받을 수 있기를 소망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