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으로 가족여행을 다녀왔다. 여느 때처럼 여행을 시작하기 위해 호텔을 나서려던 순간, 로비에서 한 할머니가 우리를 보고 크게 소리쳤다.
"사요나라!!"
우리를 일본인으로 착각한 걸까. 이유는 알 수 없었지만, 한국인으로 보이는 그녀에게 나는 짧게 '안녕하세요'하고 답했다. 그러자 그녀는 우리가 반가웠는지 한달음에 우리 가족에게로 다가왔고, 급기야 호텔 밖까지 우리를 따라 나왔다.
그녀는 예순이 훌쩍 넘어 보였지만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할머니'의 모습은 아니었다. 머리는 흐트러져 있었고 스포티한 차림에 허리에는 가방을 둘러메고 있었다. 여행자의 힙색 같은 것. 나는 지나치게 성큼 다가오는 그녀의 행동에 본능적으로 부담을 느꼈다.
그녀는 영등포에 사는 한국인이라 자신을 소개하며 "영등포 잘 알죠?"하고 말을 건넸다. 나는 지방에 살아 이름은 들어는 봤지만 자세히는 모른다고 답했다. 그녀는 영등포의 어느 길 골목을 꺾으면 자신이 사는 동네가 나온다고 했다. 솔직히 말해 길어지는 그녀의 이야기가 나는 궁금하지 않았다. 호텔 밖에는 바람이 많이 불었고, 나는 어서 가족들과 하루의 여행을 시작하고 싶었으며 이곳을 빨리 떠나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한참 자신의 이야기를 하던 그녀는, 이제 열 살이 된 우리 아들에게 용돈을 주고 싶다고 했다. 자신은 한국에서도 길에서 아이들을 만나면 꼭 용돈을 준다는 것이다. 그러더니 가방에서 돈뭉치를 꺼냈다. 일본이었지만 엔화는 없었고, 원화 다발이 지퍼백에 매우 엉성하게 그러나 제법 많이 들어있었다.
대체 이 할머니는 누구와 함께 여행을 온 것이며, 한국 돈을 이리도 많이 가방에 왜 넣고 다니는 것인지, 그리고 안전하게 여행을 하고 있는 것은 맞는지 순간 많은 생각이 머리를 스쳐갔다. 하지만 그보다 급한 것은 그녀의 친절을 가능한 한 빨리 거절하고 싶다는 생각이었다.
우리는 한사코 돈을 받지 않겠다고 했지만, 할머니는 아이의 의견이 가장 중요하다고 말했다. 그러더니 우리 아들에게 "용돈 받고 싶으니?"하고 물었다. 아들은 잠시 머뭇거렸다. 내가 미간을 살짝 찌푸리자 그녀는 곧바로 "이것 봐 아빠가 추운데 계속 기다리시잖니 받을 거야?" 하고 재차 물었다. 그녀는 눈치도 빨랐다. 내 생각과 달리 타인의 표정이나 기류를 정확히 읽어낼 수 있는 사람이었던 것이다. 아들이 이내 고개를 끄덕이자 지퍼백에서 천 원짜리 한 장을 꺼내 아들에게 건네주었다. "공부 잘해야 된다, 그리고 부모님 말씀 잘 듣고 알겠지? 그리고 대한민국 만세다 만세!!" 하며 일본의 한 호텔 로비에서 그녀는 '대한민국 만세'를 외쳤다. "즐거운 여행되세요." 짧은 인사를 나눈 우리는 헤어졌다.
그날 일본의 곳곳을 다니며 여행하면서도 나는 자꾸만 그 만남이 떠올랐다. 그녀의 친절과 나의 불친절에 대해 말이다. 그녀는 그저 아이에게 용돈을 주고 싶었을 뿐인데, 나는 몇 가지 그의 행색과 말투만을 보고 불친절하기로 결심한 사람처럼 행동했다. 부끄러웠다. 추워서 빨리 가고 싶었다는 말은 자신에게 대는 핑계처럼 느껴졌다.
사람들과 안전한 연결과 다정한 태도를 늘 얘기해 왔지만, 어떤 순간 앞에서는 손바닥 뒤집듯 태도를 바꾸는 나의 이중성이 미웠다. 누군가 이 글을 읽고 나와 그녀 중 누가 더 다정한 사람이냐고 묻는다면, 많은 사람들이 그녀라고 답할 것이다. 내내 다정한 사람이 되어 주변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고 싶다고 말하고 다니던 나이다. 머나먼 외국, 낯선 장소에서 만난 한국인에게 회초리를 맞은 기분이 들었다.
우연히 만난 짧은 만남에서 오분도 되지 않는 친절도 기다려주지 못하는 내가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는 사람이 되고자 한다는 것이 참으로 위선적이었다. 앞으로는 누가 알아주지 않더라도, 보고 있지 않더라도 조금 더 나은 사람이 되기를, 내내 다정하지는 못하더라도 누군가 건넨 친절에 적어도 친절로 응답할 수 있는 내가 되기를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