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다고 달라지는 일은 아무것도 없겠지만
운다고 달라지는 일은 아무것도 없겠지만 펑펑 울고 싶다. 마음의 모든 응어리와 찌꺼기를 토해내듯
엉엉 울고 싶다. 울고 싶다는 건 울지 못함의 방증이겠지. 나처럼 눈물 많은 사람이 없는데
누가 TV에서 울면 같이 따라 울고 핸드폰으로 슬픈 얘기를 보며 지하철에서 울었던 적도 얼마나 많은 가.
그런데 눈물이 나지 않는다. 마음의 돌덩이를 얹어 놓은 것처럼 꽈악 막혔는데 엉엉 우는 법을 잊어버린 사람처럼 눈물이 나지 않는다. 대신 수도꼭지의 고무를 손으로 꽈악 틀어막고 있는데 수압이 세서 물이 비집고
뿜어져 나오는 것처럼 눈물이 찔끔찔끔 흐른다. 상담을 받는데 선생님께서 찔끔찔끔 운다고 하셨다.
그 말이 마음에 콕 박혔다. 그래 나는 왜 우는 것도 편하게 울지 못할까? 상담을 받고 있는 건데도 그 안에서 안전하게 펑펑 울지 못하나. 내가 울면 불편할까 봐. 상대가 어쩔 줄 모를까 봐 눈물을 꾸욱 눌러 삼킨다.
예전에는 슬픈 영화를 일부러 보면서 펑펑 울기도 했는데 이제는 '내일 일 해야 되는데 눈 부으면 안 돼, 지금 2시간이나 영화 볼 시간이 없어. 할 일이 많아' 하며 우는 것조차 미뤄버린다. 그러다 보니 우는 법을 잊은 건 아닐까?
슬픔이 온몸에 넘실거리고 있다. 슬퍼지고 우울해지고 공허해진다. 내가 나와 화해할 시간이 필요한가 보다.
"고독과 외로움은 다른 감정 같아. 외로움은 타인과의 관계에서 생기는 것일 텐데, 예를 들면 타인이 나를 알아주지 않을 때 드는 그 감정이 외로움일 거야. 반면에 고독은 자신과의 관계에서 생겨나는 것 같아. 내가 나 자신을 알아주지 않을 때 우리는 고독해지지. 누구를 만나게 되면 외롭지 않지만 그렇다고 해서 고독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야. 고독은 내가 나를 만나야 겨우 사라지는 것이겠지. 그러다 다시 금세 고독해지기도 하면서.” 51p
내가 나를 만나는 게 왜 이리 어려울까? 어른이 될수록 내 감정, 내가 하고 싶은 건 꾹꾹 누르고 다른 사람의 눈치, 타인을 먼저 생각하게 된다. '배려'라는 이름으로 먹고 싶은 것도 맘껏 말하지 못하고 감정 표현도 숨기면서 겉으로는 활짝 웃는다. 그게 우리는 병들게 하는 거 아닌가? 그래서 내가 슬픈가? 내가 나를 알아주지
않아서?
내가 좋아지는 시간
스스로를 마음에 들이지 않은 채 삶의 많은 시간을 보낸다. 나는 왜 나밖에 되지 못할까 하는 자조 섞인 물음도 자주 갖게 된다. 물론 아주 가끔, 내가 좋아지는 시간도 있다. 안타까운 것은 이 시간이 그리 오래 지속되지 않는다는 것이고 또 어떤 방법으로 이 시간을 불러들여야 할지 내가 잘 모르고 있다는 것이다. 56p
어릴 때부터 내가 좋았던 날보다 그렇지 않은 날이 많았다. 늘 부족해 보이고 내가 추구하는 이상과 현실의
갭이 너무 컸다. 내가 나를 작게 봐서 내가 나를 알아주지 않아서 슬픈 무수한 밤이 지나가고 있다.
어느 순간 타인의 말이, 시선이 나를 옭아매는 거 같을 때가 있다. 나의 중심에서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남들이 나를 어떻게 볼까의 필터가 자동으로 씌워진 채 나를 바라본다.
말은 사람의 입에서 태어났다가 사람의 귀에서 죽는다. 하지만 어떤 말들은 죽지 않고 사람의 마음속으로 들어가 살아남는다. 19p
나도 모르는 무수한 말이 나에게 들어와 살아 숨 쉰다. 누구에게 들었는지도 모르는 말.
"다른 사람이랑 싸우면 똑같은 사람 되는 거야. 네가 참는 게 이기는 거야."
이 말 때문에 화병 걸릴 뻔했다. 화내는 걸 모르는 사람이 됐다. 이런 무수한 말이 얼마나 나의 행동을
규정짓고 있을까?
나는 그냥 난대. 기쁠 때 기쁘고 슬플 때 슬프고 화날 때 화내고 인간도 동물인데 본능을 억누르려다
오히려 탈이 난 것 같다. 평생 참을 수 있다면 모르지만 언젠가는 폭발하니까 순간순간 내 감정을
받아들이고 표출하는 법도 익혀야 한다. 인생이 뭐 별 건가 잘 먹고 잘 자고 잘 싸고 가장 기본적인 것을
충족시키는 게 중요하지.
배가 고플 때 먹고, 고단할 때 몸을 뉘이고, 졸음이 오면 애써 쫓아내지 않고 잠이 드는 것. 어쩌면 이것이 인간으로서 성취할 수 있는 해탈과 가장 가까이 자리하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적어도 그렇게 참지 않는다면 조금 덜 욕망할 수 있을 테니까.
모처럼의 휴일, 오늘은 충분히 아침잠을 잤고 배고픔을 느끼자마자 냉장고의 찬을 데워 밥을 먹었다. 그리고 보고 싶은 사람에게 오랜만에 연락을 해보려 한다. 이제 아침저녁으로 바람이 차가워졌으니 그곳 산사에도 고운 빛의 꽃무릇이 잘도 피었을 것이다. 120p~121p
가장 기본적인 걸 늘 뒷전으로 하니 힘들지. 내가 나를 돌보지 않잖아. 문상훈 씨가 이런 말을 했다.
태교 하듯이 자신을 대해준다고. 맞아 좋은 거 먹여주고 내가 기분 좋은 걸 해주는 삶. 이 단순하고 간단한
진리를 지키고 사는 게 참 어렵다. 일을 위해 잠을 줄이고 끼니를 때우고 피곤한 몸을 억지로 일으켜
생활한다. 너무 참아서 자꾸 내 안의 욕망이 쌓이나 보다. 그게 슬픔으로 화로 내 안에서 넘실거린다.
그리고 가장 가까운 사람에게 화살처럼 쏘아져 간다. 엄마에게 그리고 미래의 배우자에게.
짜증 섞인 말투로 이야기하고 내 마음에 들지 않는 부분을 짚어서 구박하게 된다.
왜 열심히 살지 않아? 책 좀 읽었으면 좋겠는데 운동도 더 하고 식단 관리도 하고 자기 계발 열심히 해!
이런 부분은 너무 답답한데? 왜 좀 더 야무지지 않을까?
불만의 소리가 올라온다. 어떤 것은 애써 삼키고 어떤 것은 재채기처럼 나도 모르게 쏘아져 상대에게 팍 튀어버린다. 나는 있는 그대로의 나로 존중받고 싶으면서 상대에게는 왜 그게 안 될까?
오늘 상담 시간에 선생님이 그렇게 말씀하셨다. 우리가 다르니까 결혼까지 갈 수 있는 거라고 그렇지 않았다면 진작 헤어졌을 거라고 한다. 나랑 똑같은 사람은 만날 수 없다고 서로 다르니까 보완되는 거라고
그 사람의 답답한 면이 있지만 성실함, 따뜻함으로 나는 위로받고 기댈 수 있다고 말이다.
우울과 불안이 높은 사람의 열심히를 그 사람은 절대 따라올 수 없다고 하셨다.
그래 다르니까 답답하고 다르니까 사랑한다. 그 사람의 좋은 점과 안 좋은 점까지 사랑할 수 있어야지.
그 사람이 나를 바꾸려고 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의 나를 품어주듯이 나 역시 그래야 한다.
하지만 나와 당신이 다르지 않다면 사랑은 애초에 존재하지도 않는다. 당신의 외모와 성격과 목소리와 자라온 환경과 어떤 것에 대해 품고 있는 마음이 나와 다르다는 점에서 사랑이 탄생한다. 자신과 비슷한 수준, 환경, 생각을 가진 사람만을 찾아 사랑이나 결혼을 해야 한다고 믿는 사람을 나는 긍정하지 않는다.
사람이 사람을 진실로 사랑한다는 건, 자아의 무게에 맞서는 것인 동시에, 외부 사회의 무게에 정면으로 맞서는 것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이렇게 말하는 것은 참 가슴 아픈 일이지만 누구나 그 싸움에서 살아남게 되는 것은 아닙니다. 『상실의 시대』, '작가의 말' 중에서
사랑에 대해 내리는 정의들은 너무나 다양하며 그래서 모두 틀리기도 모두 맞기도 하다. 다만 세상에 수많은 사람이 수많은 사랑을 하고 있다는 사실만큼은 언제나 참일 것이다. 나에게 그리고 당신에게 여전히 이 세상에 대한 애정이 남아 있다면 그 이유도 바로 이것일 것이다. 95p
내가 나를 사랑하고 너그러워야 상대에게도 그럴 수 있는 것 같다. 내가 나에게 하는 가혹한 잣대를 나와
동일시되는 상대에게 똑같이 하니까. 쉬어도 돼. 멈춰서 가도 돼. 애쓰지 않아도 돼.
머리로는 이해하려고 해도 잘 받아들여지지 않는 이 이야기를 나에게 끊임없이 끊임없이 들려줘야지.
요즘 모닝페이지도 쓰고 다이어리, 감사일기도 쓰면서 나를 칭찬해 주는 한 마디를 넣으려고 한다.
그 한마디가 쌓이고 쌓이면 나도 모르게 나에게 그런 말을 들려줄 수 있다는 따뜻한 경험담 덕분이다.
내가 나를 사랑하는 마음을 담아 나에게 매일밤 편지를 건넨다.
편지를 받는 일은 사랑받는 일이고 편지를 쓰는 일은 사랑하는 일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26p
이 마음을 잊지 말고 잘 간직해 주었으면 좋겠다. 수많은 사람과 내가 나 스스로에게 했던
부정적인 생각의 씨앗을 뿌리 뽑고 긍정의 씨앗을 마구마구 뿌리면 어느 하나는 새싹이 돋아나겠지?
모든 것이 내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고 생각할 때, 나조차도 내 마음대로 되지 않아 힘들 때
내 마음대로 되는 것은 없다는 걸 아는 것. 진정한 지혜는 내가 할 수 있는 것과 없는 것을 구분할 줄 아는 것.
내가 할 수 없는 건 받아들이고 그 안에서 만족을 찾을 수 있다면 나는 나를 좀 더 사랑해 줄 수 있지 않을까?
어느 모임의 저녁 자리에서 연세가 지긋한 한 분을 만났을 때의 일이다. 시작은 역시 같은 질문이었다. 하지만 돌아오는 그분의 말은 달랐다. "제가 잘은 모르지만 한창 힘들 때겠어요. 적어도 저는 그랬거든요.
사랑이든 진로든 경제적 문제든 어느 한 가지쯤은 마음처럼 되지 않았지요.
아니면 모든 것이 마음처럼 되지 않거나.
그런데 나이를 한참 먹다가 생각한 것인데 원래 삶은 마음처럼 되는 것이 아니겠더라고요.
다만 점점 내 마음에 들어가는 것이겠지요. 나이 먹는 일 생각보다 괜찮아요. 준이씨도 걱정하지 말고 어서 나이 드세요."
충격이었다. 자신의 과거를 후회로 채워둔 사람과 무엇을 이루었든 이루지 못했든 간에 어느 한 시절
후회 없이 살아 냈던 사람의 말은 이렇게 달랐다. 될 수 있다면 나는 후자에 가까운 사람이 되고 싶다.
하지만이 역시도 쉬운 일은 아니겠다. 사실 내가 가장 자주 하는 일 중에 하나가 바로 과거의 일을
후회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앞으로도 여전히 나는 후회와 자책으로 삶의 많은 시간을 보낼 것이다. 148p
내가 나 미워하는 거 이제 그만하자. 내가 나의 단점만 보는 것도 그만하자. 내가 얼마나 사랑스럽고
귀한 존재인지. 모두가 모르더라도 나는 알아줘야지. 7살 나의 모습을 떠올리며 우쭈쭈 귀여워해야지.
30년 뒤 60대의 내가 30대의 지금 나를 바라보면 그런 마음이지 않을까? 그래 그래 존재만으로
귀여운 귀한 아이야. 그렇게 웃으며 살아. 나이가 들 수록 몸에 힘을 빼고 있는 그대로의 나를 받아들일 수 있는 마음의 부표가 둥둥 떴으면 좋겠다.
"사는 게 낯설지? 또 힘들지? 다행스러운 것이 있다면 나이가 든다는 사실이야. 나이가 든다고 해서 삶이 나를 가만 두는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스스로를 못살게 굴거나 심하게 다그치는 일은 잘하지 않게 돼." 63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