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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왜 정년이가 꼴 보기 싫었을까?

정년이로 마주하는 나의 모습

by 하람

우리는 어쩔 수 없이 경쟁사회에 내던져진다. 특히 프리랜서인 나는 늘 선택당해야 하고 평가당해야 한다.

나의 강의를 보기 전 프로필로 선택되어야 하고 평가로 나를 증명해야 한다. 어떤 강사님은 그 부담감에 수명이 주는 것 같다고 얘기한다. 늘 기업마다 도장 깨러 다니는 느낌. 그러다 보니 하루하루 긴장의 연속이다.


귀한 시간과 에너지를 내주는 교육생들에게 제대로 된 인사이트를 주고 있는 건지 도움이 되는 건지

판단이 잘 안 될 때가 있다. 그러다 보니 불안해지고 애가 탄다. 더 잘해야 되는데 더 잘해야 되는데

그 더더더의 늪에 빠져 애는 쓰지만 마음의 여유를 잃어가는 게 느껴진다.


영서처럼 엄마에게 인정받아야 하고 잘해야 한다는 압박감에 기계처럼 연기하고 무대를 즐기지 못한다.

열심히도 중요하지만 내 일을 잘 즐기는 것도 중요한데 함께 시간을 보내는 순간을 즐기면 참 좋을 텐데 그게 어렵다.


나는 어렵고 잘 안 되는데 누군가가 잘 해내는 걸 볼 때도 가슴이 턱 막힌다. 나는 사람과 쉽게 친해지는 것이 어려운데 그걸 잘 해내는 사람을 보면 대단하다 싶다. 타고난 재능을 바라보는 것 같아서 아예 빠르게 단념된다고 할까? 대신 내가 잘하는 걸 찾아야지 하며 또 애쓰게 된다.


정년이를 바라보는 영서의 마음은 어땠을까? 천재를 바라보는 범재의 마음. 누구보다 노력해 봤기에 노력으로 절대 될 수 없다는 뼈아픈 진실. 강의에 세계에도 그런 게 있을지 모르겠다. 사실 있는 것 같다.

타고난 표현력, 유머, 친화력, 스토리텔링 등. 지식은 공부하고 외울 수 있지만 그걸 어떻게 전달하는 건 다른 영역이니까.


그럼에도 범재는 계속 노력하는 수밖에 없다. 영서는 무대를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고 정년이를 성장의 동반자로 바라보며 본인의 한계를 뛰어넘고자 한다.


그런데 정년이는 도대체 뭘 하는 건가! 타고난 천재. 조급함에 삼켜져 그 좋은 목소리를 떡목으로 만든다.

천재잖아! 시간이 흐르고 경험이 쌓이면 원숙해질 것을 자신의 장점을 다 잃어버리다니.

남들이 모두 부러워하는 재능이 있는데 그게 꽃피는 순간을 기다리지 못하고 제 손으로 꺾어버리는 정년이.


정년이의 조급함이 너무 나 같아서 꼴 보기가 싫었다. '다른 사람의 경험치를 어떻게 한 번에 따라잡아

어떻게 한 번에 득음을 하냐고' 이거 완전 네 얘기 아니냐.

정년이처럼 타고난 천재도 아닌데 차근차근 단계를 밟아가도 모자랄 판에 왜 혼자 조급해져서 지쳐버리나.

씨앗도 틀 때까지 시간이 필요하다. 물과 햇빛을 주며 기다려야 한다. 나는 너무 조급해서 물을 왕창 주고

햇볕에 계속 내놓는 주인 같다. 빨리 열매 맺으라고 독촉하고 영양제를 꽂고 결국 씨앗조차 트지 못하게 하는 주인.


주변에서 너무 애쓰지 마라 내려놓아라 얘기를 한다. 머리로는 받아들이는데 몸의 긴장이 잘 풀리지 않는다.

그럼에도 다시 한번 마음에 장면을 새겨 넣는다. 영서가 인정받으려 애쓰며 연기할 때 어떤 느낌인지 정년이가 조급함에 못 이겨 어떤 결과를 냈는지. 정년이처럼 무아지경으로 무대에서 즐기고 영서처럼 단계 단계 노력해 성장하는 거다.


다른 사람과 비교하지 마. 허영서는 허영서만의 연기가 있고 윤정년은 윤정년만의 연기가 있어.

너는 너만의 무대에서 너만의 강의를 해. 그게 네가 꽃피울 수 있는 길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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