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울은 아니지만

선생님께: 안녕하세요 선생님

by JINX

또 몰려와버렸어요. 모든 것을 손에서 떨쳐버리고 싶다는 감상이요. 감상이라고 하니 우습지요? 그런데요. 그 말이 아니면 가볍게 받아들이실 게 뻔해서 굳이 조금은 가식적이지만 화려한 어휘를 골랐어요. 결국은 느낌일 뿐이어서요. 잠시 잊고 살았는데, 벗어날 수 없다는 듯 다시 돌아와 버렸어요.


이 글을 쓰는 이유는 ‘감상 때문에 일어나는 멀미를 가라앉히기 위해’, 그리고 ‘왜 이렇게 힘이 드는지 알고 싶어서’ 예요. 글을 쓰는 건 참 힘들어요. 어떤 글을 써도 다 진부해 보이고, 써놓고 나면 내 감상을 옮기는 손가락의 번역기가 영 마땅찮다는 걸 깨닫거든요. 왜 모든 말이 뻔해 보일까요. 신선함이라는 게 없어요. 다 어디에선가 본 내용, 읽은 문구, 들은 말. 어쩌면 그게 제 권태의 이유일지도 모르죠. 세상이 무료하다고 말하면 너무 거창할까요?


거두절미하고 다시 그 감상으로 돌아갈게요. 감상은 몸에서도 느껴져요. 심장이 무겁거든요. 근데 그 무거움의 중력이 바닥이 아닌 앞으로 작용하고 있어요. 마치 앞으로 뛰쳐나가고 싶어 하는 것처럼요. 그럴 때면 이상하게 제 가슴팍이 나일론 스타킹 천처럼 느껴져요. 두꺼운 근육질의 심장 덩어리가 마구 튀어나오려고 천을 마구 들이박는 거죠. 천에 얼굴을 들이대면 으레 그렇듯 굴곡이니, 핏줄이니 죄다 보이고요. 조금 더 고어하게 생각하면 온통 피범벅이겠네요. 팔은 힘이 다 빠져 의지 없는 나뭇가지처럼 푹 처져있고요. 힘을 줄 생각도 잘 안 들어요. 거추장스럽게만 느껴져요. 다리는 그냥 답답해요. 그래서 마구 꼬아놨어요. 양다리가 서로를 꽉 조이게요. 피도 안 통할만큼 꽉 조여서 답답함이 통증에 가려지도록 말이에요.


너무 답답할 때면 다리가 아니라 제 목을 조르는 생각을 해요. 한동안 숨도 못 쉬고 꺽꺽대다가 마침내 숨을 쉬고 나면 숨 쉬는 것이 얼마나 시원한지를 되새기고 덜 답답해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요.


선생님, 답답함의 이유가 뭘까요? 저는 왜 이렇게 숨이 막힐까요? 제 생각엔 전 행복해야 하는 사람이거든요. 아니 어쩌면 이미 좀 행복하기도 한 것 같아요. 종종 웃고, 밥도 잘 먹고, 점심에는 걷고, 다른 사람들과 대화도 원만하게 해요. 그런데도 늘 답답함은 가시지 않아요. 자꾸만 무력해져서 아무것도 하기 싫어져요. 심장은 계속 쿵쿵 뛰고요, 명치 부근이 꽉 막힌 느낌이 들어요. 그래요. 이게 바로 그 "감상"이에요. 방금 또 몰려와버린 바로 그거요.


무언가 토해내야 할까요? 제 가슴팍에 담긴 답답함의 실체를 보려면 말이에요. 화장실 변기에 모든 걸 뱉어내면, 그래서 그 굳어버린 석고 덩어리 같은 걸 마주하면 조금은 시원할까요? 지금은 그 덩어리 때문에 숨을 반만 쉬고 있어요. 숨을 들이쉬면 그 덩어리에 턱 걸려서 맥없이 뱉게 돼요. 그래서 숨은 쉬고 있으니 만족해야 할까요?


아니면 뚫어내야 할까요? 명치 부근쯤을요. 중세시대 창을 깨끗하게 소독해서 날카로운 날 위에 누우면, 그래서 몸 가운데에 구멍이 생기면, 그 사이로 숨이 쉬어질까요? 탁 걸리는 것 하나 없이 시원하게요.


선생님, 선생님은 어디에 계세요? 선생님이 필요해요. 한 번도 만난 적은 없지만, 계시다는 것도 사실 잘 모르겠지만, 그래도 분명 있을 선생님, 잘 지내고는 계신가요?


전 잘 지낸다고 말하긴 어렵지만 그래도 쓰다 보니 좀 나아진 것 같아요.


저도 언젠간 시원하게 숨을 쉬고 이 감상을 떨쳐버릴 수 있겠죠?


답장은 안 주셔도 괜찮아요. 저 혼자 쓰는 편지로도 충분해요. 항상 건강하시고, 위험한 일에는 휘말리지 마셔요. 그럼 이만 마칠게요.


추신: 선생님, 답장 안 주셔도 괜찮다는 말은 취소할게요. 정말 보고 싶거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