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은 스케치.
일은 잘 풀리지 않았고, 원치 않던 연락처를 받았다. 힘겹게 다시 찾은 번호는 어찌된 일인지 작동하지 않았고, 화에 젖어 주저 앉기를 반복했다. 피곤하다. 눈을 감아도 잠을 잘 수 없는 세상인데. 잠이 쏟아져도 온전히 받을 수 없는 세상인데. 눈이 아파서 밖을 봤다. 하얀 배경. 오늘 하늘은 밝은 잿빛. 그 아래 이질적인 초록빛을 본다. 집안에 갇힌 화분 세 개.
그거 아니, 너희는 흔들리기만 할 뿐인데. 난 힘이 나. 너희는 갇혀있는데. 나도 갇혀있어서.
존재만으로도 기분 좋은 대상이 필요하다. 이미 있다해도 더 많이 필요하다. 기분 좋을 이유 속에 잠식되어 파묻히고 싶다. 애써 좋아지려 노력하지 않아도 좋고 싶다.
행복은 거하다. 행 복. 차라리 순우리말이었으면 좋았을텐데. 한자를 온전히 이해하는 것은 아직도 어려워서. 아둔한 우리를 위해 행복은 사소한 별칭을 수반한다. 녹차맛 아이스크림. 금색 머리카락. 동그란 눈. 갈색 눈동자. 초코송이. 웃는 얼굴. 연어. 따뜻한 칼국수. 파란색. 청바지. 이소라. 음악. 그림. 글. 목소리. 빨간색. 이불. 강아지. 초록색 시계.
사랑하는 얼굴들.
본명은 참 거한데, 예명은 참 가볍다. 너무 가벼워서 훨훨 날아 사라진다. 그래서인지 가끔은 존재를 아는데도 우울하다.
이유는 나여야 하는데. 행복이 나의 존재로 충분해야 하는데. 참 삶은 힘들다. 나는 오늘도 커다란 우울 속에서 작은 기쁨을 기다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