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술집 알바
이 매거진은 내가 그동안 해왔던 일들을 순서대로 쭉 적어나간 이야기들로 채우고 싶었다.
하지만 며칠 전 겪은 일을 당장 공개된 곳에, 아직 분노와 슬픔이 채 가라앉지 않은 상태에서 기록해보고 싶은 마음에 오늘의 이야기를 먼저 끼워 넣으려 한다.
나는 서른셋이고, 몇 군데의 직장을 전전하다 모두 관두고 다시 알바의 세계로 돌아온 늦깎이 알바생이다.
얼마 전 동네 작은술집에 면접을 보러 갔고 일단 다음 날 테스트 삼아 일을 하루 해보기로 했다.
(면접 볼 당시에 일하는 요일이 공고내용과 좀 달라져야 할 것 같다고 말씀하시는데 괜찮다고 맞추겠다고 했다.)
홀 담당으로 일을 시작했고 가끔 주방보조도 할 수 있다고 했다.
하지만 막상 일을 시작해보니 내가 직접 불판 앞에 서서 음식 상태를 계속 체크해야 했고 밑재료 준비도 어느정도 해놓아야 했다.
거기에 설거지는 기본 옵션이고 홀 신경 쓰는건 말해 입아팠다.
하지만 식당 타이쿤 게임을 한다 생각하면 또 할 만하다고 느껴졌고, 이전 알바하던 곳에서처럼 주문만 받으며 주방직원들의 신경질을 받아내는 것보다는 낫다 싶기도 했다.
또 손님 한 분이 “새로 오신 분 일 잘한다고 좀 전해주세요.” 라고 하셨다는 말도 들으니 자신감도 좀 생기고 조금은 행복해지기도 했다.
퇴근시간이 다가올 즈음 사장님은 업무시간도 조정이 좀 필요할 것 같다고 하셨다.
주말포함 6일 일하기로 했는데 주말엔 다른 알바를 하기 때문에 갑작스러운 시간조정 얘기는 당황스러웠다.
그래도 여차저차 얘기를 잘 맞춰서 시간조정하고 다음 주 화요일부터 정식출근 하기로 하고 퇴근을 했다.
다음 날 주말 아르바이트를 마치고 막 퇴근하는 길에 술집알바 사장님께 전화가 왔다.
그 날은 비가 하루종일 내렸고, 비오는 날엔 더 바쁜 가게라고 했기 때문에 일하러 올 수 있겠냐는 전화인 줄 알고 받았다.
“저 지은씨 물어볼 게 있는데, 어제 4번 테이블에 메뉴 하나가 서비스 처리 돼 있었다고 들었어요.”
“아 네 저도 그거 왜 그렇게 돼 있는지 모르겠더라구요. 메뉴는 다 똑같이 찍었는데.. 같이 일하신 분이(사장님 사촌동생) 발견하셔서 계산하기 전에 바꿨습니다.”
“네… 저 근데 4번 테이블이 어제 지은씨 일 잘한다고 칭찬해 준 테이블이잖아요.”
“네 사장님.”
“혹시 그 분들이 지은씨 지인분이거나.. 부모님은 아니었는지.. 그래서 지은씨가 임의로 서비스 처리를 해 준 건지.. 아니 이게 참 상황이 되게 딱 맞아 떨어지니까.. 그 분들이 지은씨 칭찬도 하고.. 제가 3개월쯤 운영하면서 이렇게 손님이 칭찬해 준 적이 없기도 하고..”
사장님은 조금은 망설이는 듯 하며 말씀하셨지만 어쨌든 하고 싶은 말은 다 하셨고 그 말을 들은 나는 머릿속이 멍해지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헛웃음이 대화의 공백을 메웠고 그런 일은 없다고 말하고 곧바로 끊을 수도 있었을 것 같다. 하지만 그 상황이 너무 불편하고 어이없으면서도 전화를 끊을 수가 없었다.
“그러니까 사장님 말씀은.. 처음 일하러 가는 곳에 제가 지인을 부르고.. 제 마음대로 음식 서비스 처리를 했다구요? 사장님 저 그 포스기 처음 만져봐요. 그 가게에서 제가 제일 그 포스기를 몰라요.”
“아니 그건 아는데.. 상황이 너무 딱 맞아 떨어지니까.. 지은씨가 제 입장이라고 생각을 해보세요. 그럼 지은씨도 이렇게 생각할 수 밖에 없을 거예요.. 나도 아니겠거니 생각하면서도 확인을 해야 마음이 편할 것 같아서..”
“사장님 차라리 일을 못한다고 하시지, 아니겠거니 생각하셨으면 그런 말씀을 하지 마시지.”
“나도 가족들이랑만 일해봤고 남이랑은 처음 해보다 보니까..”
“사장님 그 4번 테이블이요. 어제 막걸리 유통기한 지난게 나갔었어요. 손님들이 먼저 말씀해주셔서 몇 번이나 죄송하다고 하고 바꿔드렸고요. 사장님 어제 굉장히 바쁘셨잖아요.”
“네…”
“그래서 일부러 말씀 안 드렸어요 그 분들 기분도 풀리신 것 같고 추가주문도 하고 그러시길래요. 어제 같이 일한 사촌분이 막걸리 얘긴 안하시던가요? 유통기한 지난게 있었다는건 그 분께 말씀드렸었는데요.”
“아뇨. 그런 얘긴 처음 듣는데.. 그런 일이 있었군요..”
애초에 유통기한 관리를 제대로 해놓으셨으면 어땠을지, 사장님은 대체 알바생을 뭐라고 생각하시는건지, 게다가 어제 배달주문 안 들어온다고 그것도 날 의심하고, (“지은씨가 배민 주문 껐어요?” -> 알고보니 사장님이 주문을 꺼놨었다.) 업무 첫 날부터 그런 시스템을 마음대로 만지는 사람이 어디 있냐고 묻고 싶었어도 꾹 참는게 알바생 입장인데 사장님은 본인 입장만 생각해보라고 하고 내 입장은 전혀 생각하질 않으셨다.
“사장님 저도 남의 돈 버는거 쉽게 생각하는 사람 아니예요. 출근은 못 하겠습니다.”
사장님은 몇 번이나 죄송하다고 말씀하셨고 그대로 출근하면 어떻겠냐고 하셨지만, 나는 앞으로도 사장님의 가족들이 잘 알지도 못하는 상황을 사장님께 전달하고 함께 이상한 시나리오를 짜고, 무조건적으로 내가 의심받는 상상이 들어 도저히 일을 하기가 어려웠다.
이미 오늘 겪은 일도 두고두고 잊지 못할 일이 될 것 같았다.
하필이면 비도 내려서 슬픈 기분이 배가 되는 날이었다. 길에서 소리 죽여 울다가 편의점으로 향했다.
소주와 컵라면을 사서 (이 와중에도 가격표를 한참 들여다보고 고민해야 하는 내가 싫은 날이었다.) 집에 돌아왔다.
벌컥벌컥 최대한 빨리 취하고 싶어 급하게 소주를 마신 뒤 잠에 빠졌다.
내가 대체 무슨 일을 할 수 있을까?
아무리 힘든 일이어도 감당하겠다는 마음으로 일에 임했었다.
힘드냐고 물으셔도 재미있다고 대답하며 웃었다.
이런 마음가짐으로 안되면 나는 대체 어딜 가야 하는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