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니는 뭐 하고 싶은데요? 오늘도 새벽의 공기는 잔잔하고 우리는 말 없이 있기엔 많이 어색한 사이이다. 인수인계 해주는 직원은 그 공기를 가르고 불쑥 질문해왔다. 나는 몇 초간 망설이다가 글을 쓰고 싶다고 대답했다. 그리고 사실 어제 얘기를 들으면서 그 쪽이 멋지다고 생각했다고, 나는 이런 일을 하고 있어요. 당당하게 얘기하는 모습이 멋졌다고도 말했다. 나는 어디가서 글쓰고 싶다는 말 잘 못하거든요. 얘기해봤자 다들 안좋은 말만 하니까. 망하면 쪽팔리잖아요.
안 좋은 말… 이거 해서 밥 못 벌어먹는다. 이런 말이요? 저도 맨날 들어요. 근데 뭐, 내가 하고 싶은데 뭐 어떡해요. 언니 주변 말에 휘둘리지 말아요.
뻔해보이는 말이었지만 그래도 그 직원의 진심이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그리고 그 뒤로 그 직원은 본인이 점을 보러 갔던 얘기, 원하면 본인소개로 연결해서 더 싸게 볼 수도 있다는 얘기, 본인이 읽는 책을 추천해주고 싶다는 얘기도 해주었다. 그리고 자신의 연기지도 선생님에게 들었던 얘기들 중 감명 깊었던 부분들도 여럿 들려주었다. 거기에 더해 카페 일도 더 열심히, 본인이 일을 하며 터득한 노하우들도 최대한 알려주려고 노력하는 모습이 보였다.
소설 ‘복자에게’에서 영초롱은 이런 생각을 한다. [누군가가 누군가를 좋아하는 과정에는 상대에 대한 은근한 우월뿐 아니라 일종의 선망이 진득하게 감겨야 한다는 것.] 그 직원이 나를 좋아하지는 않았을 테고 선망도 없었겠지만 은근한 우월은 생기지 않았을까 싶었다. 그래서 내게 더 살가워지고 하나라도 더 챙겨주려고 하지 않았을까. 생각해보면 그동안 나는 인간관계에서 본능적으로 그런 걸 이용해오기도 했던 것 같다. 늘 나를 낮추고 내가 당신보다 약하고 못났어요 라는 걸 먼저 드러내며 상대가 나에게 적대감을 갖지 않기를 바랐다. 하지만 내가 끊임없이 나를 낮추는 말과 행동을 하면 결국 상대방도 함께 나를 대놓고 하대하게 되곤 했다. 이번도 예외는 아니어서 그 직원은 내가 어떤 행동을 했을 때 무조건 타박부터 하기 시작했다. 언니, 이거 왜 A로 했어요? B로 해야 하는 거예요. 나는 내 나름대로 C라는 결과까지 생각하고 움직인거였어도 이제 그 직원의 눈에 나는 나만의 방식이 있는 사람으로 비춰지지 않는 듯 했다. 욱하는 감정이 올라와도 지금은 이 직원이 그만두기 전에 최대한 배우는게 먼저라는 생각에 아무 말 없이 내 행동을 정정하고 주문처리에 집중하려 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