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며칠 간은 하루하루 색다른 느낌이었다면 익숙해지고 난 뒤엔 매일매일 챗바퀴 굴러가는 일상이 된다. 처음엔 보이지 않던 단점들이 보이고 추가로 더해지는 일들도 생긴다. 인수인계 받았던 내용을 가공하여 내 스타일에 맞게 바꾸어 일을 한다. 오전 타임 직원이 새로 지은 밥 상태가 조금 별로인 것 같다고 전달해주고 간 날엔 여러가지 양념을 더해 맛을 본 뒤 어떤 메뉴에 나가도 될지 스스로 결정하고 진행한다. 이 곳의 머신으로 우유스팀을 했을 땐 유난히 거품이 거칠고 흔히 말하는 게거품 상태가 되는 일이 잦다. 하트도 잘 안 그려진다. 그저 내 실력 탓일까? 고민하다가 이렇게 고민을 할만큼 스팀의 상태를 볼 줄 알게 되었다는 것에 기뻐지기도 한다.
이 곳에서 가장 좋았던 건 테이블과 의자가 마련되어 있어 할 일이 없을 땐 자유롭게 책을 봐도 되고 글을 써도 된다는 것이었다. 그래도 일터이고 자잘한 일들은 계속 생겨서 자유로운 시간은 생각보다 많지 않았지만 나는 근래에 이 곳에서 글을 가장 많이 썼다. 아 가장 좋았던 게 한 가지 더 있다. 내가 어떤 스타일로 일하는 걸 좋아하는지 보다 확실히 깨달았다는 점이다. 그동안 왜 그렇게 사람들과 부딪혔는지 왜 그렇게 힘들어했는지 조금이나마 퍼즐조각이 맞춰지는 듯한, 흐릿한 안개 속 이정표를 발견한 듯한 느낌도 들었다.
이 전에 물건 하나를 놓고 갔다는 연락에 기사님이 제어 없이 신경질을 부리고 간 뒤 일주일 정도 계속해서 배차도 늦고, 다른 기사님들이 “다 나온거 맞아요?” 나를 못 믿는 듯한 말도 계속해서 하신다. 그러다 또 30분 넘게 배차가 되지 않는 주문건의 고객이 연락을 해 온 날이 있었다. “그래서 언제 오는 건데요?” 당장 정확한 시간을 말할 수 없어 난처한 상황에 마침 담당 기사님이 도착했다.
“기사님 가시는데 얼마나 걸릴까요?”
“글쎄요. 잘 모르겠는데.”
“고객한테 연락이 와서 안내를 해야 해서요.”
“30분 밖에 안 지났는데 연락이 와요?”
고객한테 연락이 왔다는 말을 안 믿는 건가? 배차에만 30분이 넘게 걸린 것이고, 이전에 내가 메뉴를 준비하는 시간도 있었다. 거기에 기사님이 음식을 들고 가는 시간도 있는데 기사님은 단순하게 한 가지 시간만 가지고 얘길 하셨고 나는 이 날 한계를 느꼈다. 기사님들의 이런 태도는 계속해서 변하지 않을 것 같았다. 그 때 그 신경질을 부렸던 기사님이 나에 대해 뭐라고 얘기한걸까? 다른 기사님들은 내 입장이 조금이라도 궁금하긴 했을까? 고객에게 거듭 죄송합니다를 연발하고 전화를 끊었다. 정말 통화한 게 맞다는 걸 기사님에게 보여주고 싶어 일부러 더 크게 말했다.
다음 날 사장님께 그간의 사정을 얘기하고 그만둬야겠다고 말씀드렸다. 새로운 사람을 구하고 인수인계까지 하는데에 앞으로 2주 정도 기다리는 것으로 얘기를 마무리하고 일어섰다. 이 곳에서 일할 때의 장점들이 하나 둘씩 떠올라 아쉬운 마음도 들었지만 무섭다는 생각이 들 때는 어쩔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며칠 뒤 사장님께 전화가 왔다. 현재 평일 저녁 파트타임도 사람을 구하고 있는데 혹시 시간대를 옮길 생각은 없느냐는 것이었다. 나도 수입을 생각하면 풀타임 근무지를 찾아봐야 하는데 이 공간이 익숙해진 것과 근무시간 혼자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는 점 등이 끌려 시간대를 옮기기로 했다. 그리고 나서 회식이 잡혔다. 나는 회식에 간 것도, 평일 저녁파트로 옮기기로 한 것도 모두 후회하게 되었다.
해외여행을 한 번도 안 가봤다는 내 말에 엄청나게 큰 목소리로
“33살에 해외를 한 번도 안 가봤어요???”
건너편에 앉은 다른 직원이 “아니 근데 해외는 관심 없으면 안 갈 수도 있는거고…” 나를 좀 거들어준다.
제주도에서 1년 정도 살다 왔다는 내 말에
“아니 근데 나는 그런거 좀 허황되다고 생각해. 우리 카페에 오는 손님 중에 하나가 갑자기 나보고 이런거 차리는데 얼마나 드느냐고 하는거야. 그러더니 자기 제주도 가서 이런거 차릴거래.”
작가가 꿈이라는 내 말에 (근데 난 이 얘기를 한 적이 없었다. 어떻게 알고 있는건지 사장님에게 묻자 사장님은 좀 당황스러운 듯 하고 ‘여긴 비밀이 없어요 하하하’ 다른 직원이 얼버무려준다.)
“우리 엄마도 작가 타이틀을 달고 있긴 한데…”
사실 나는 이런 식으로 나에게 무례하게 구는 것에 대해 대응을 잘 못한다. 생각이 정지되는 느낌에 멍해지고 만다. 1절을 했을 때 제대로 쳐냈으면 그 뒷 말들은 듣지 않아도 됐을텐데.
“그건 그렇고 새로 온 사람 인수인계 해준건 어땠어요?”
“잘 하고 싶어하시는 것 같아요. 레시피 열심히 읽고 주문건에 바로 적용도 하시고요.”
“아… 사실 나는 면접 볼 때 여기 있는 사람들 다 얘기 길게 안했어요. 다들 면접 볼 때 그랬지? 근데 그 사람은 정말 얘기를 길게 했어요. 어쨌든 지은씨가 못하겠다고 하시니까 사람을 뽑긴 뽑아야 해서 일하자고 했는데… 하.. 정말 괜찮을 것 같아요?”
“그 분은 이 전 가게에서 일이 너무 없어서 힘들었다고 하시더라고요. 그런 면에서 보면 여긴 주문이 없어도 할 일은 계속 있는 편이니까 잘 맞지 않으실까.. 그리고 사실 하루밖에 안 봐서…”
“솔직히 하루 보면 다 알아요.”
내 말은 완전히 깔아뭉개졌다. 내 의견을 물은 것은 사실은 본인의 일방적인 불만을 표출할 멍석이 필요했기 때문이었구나. 주변의 모든 소리들이 제거되고 내 시선은 갈 곳을 잃었다. 단편적인 모습으로 평가되었을 때의 내 경험들이 떠오르고, 사람들에게 인사도 제대로 건네보기 전에 부정적인 평가부터 받고 있는 그 사람에게 내 마음이 순식간에 기운다. 지금 생각해보면 나는 그냥 그 때 자리를 박차고 나왔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싶다. 술 마시면 본심이 나온다는게 이런 건가?
현장에서 곧바로 나의 불편함을 드러내지 않으면, 나중에서 그랬던 감정을 드러내면 대부분 내가 이상해지고 만다는 걸 안다. 그게 모두가 편하게 받아들일 만한 상황정리 방법이라는 걸 안다. 이상한 사람 취급을 받더라도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하고 나는 며칠이 지난 뒤 회식자리에서의 내 감정을 밝혔다.
회식에 같이 있었던 사장의 친구는 출근한 나를 붙잡고 "우리 회식 때 무슨 일 있었어?" 라고 묻는다. 내 전임자가 일을 너무 안해서 싫다고 했던 그 사장의 친구.
나는 인수인계까지만 마치고 이 곳을 떠나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