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의 직장생활들은 더 이상 되새김질할 필요가 없어

by 김지은이

주간지에서 코로나 시대의 대학생들에 대한 얘기를 보았다. 등록금은 변함없이 내고 있는데 이전처럼 학교 시설을 제대로 쓸 수 없어 어려움을 겪는다는 내용이었다. 실제 대학생들의 사진도 몇 장 실렸는데 각자의 과제를 좁은 자취방에서 완료하려 애쓰는 모습들이었다. 벽에 붙은 여러 장의 그림들과 그 벽에 바짝 붙인 작은 책상에 구부정하게 앉은 자세로 그림 작업에 몰두하는 학생. 책상과 바로 맞닿은 침대를 의자 삼아 앉아 재봉틀을 돌리는 학생. 주변의 모든 가구들과 공간은 허름한데 작업을 위한 컴퓨터만큼은 최신형으로 구비해두고 그 앞에 앉아 작업하는 학생.


퇴사한 뒤 도피성으로 떠났던 제주에서 만난 사람들과 둘러앉아 얘기를 나눌 때 자격지심과 부러움과 부끄러움 등을 느꼈던 기억이 있다. 은행에서 일하다 그만둔 사람, 승무원으로 일했던 사람, 임용고시 준비를 하다 다시 진로 고민에 빠진 사람, 육아에만 전념하다 자녀들이 성인이 된 뒤 본인의 삶을 고민해보게 된 사람. 그러다 나에게 마이크가 넘어오면 나는 쭈뼛쭈뼛 “저는 그냥.. 그냥 사무직으로 일했어요. 되게 특징 없는…”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얼버무렸다. 내가 회사를 다니며 했던 일은 사무보조나 CS 업무였는데 어떤 사장님은 인수인계 기간은 3일이면 충분하다고 여기기도 했다. 내가 1년이 넘는 시간 동안 아무리 열심히 일했다고 해도 결국 내 자리는 며칠이면 충분히 대체 가능한, 하지만 새로 면접 보고 새 사람에 익숙해지는 게 귀찮으니 그저 내가 계속해주는 게 좋을 뿐인 그런 자리였다.


나 같은 사람도 힘들다고 해도 되는 건가?


그때 나를 많이 괴롭혔던 질문이었다. 나는 무엇 때문에 힘들었다고 명확히 말하기가 어려웠다. 그냥 매일 아침 눈을 뜨는게 힘들었고 숨이 계속해서 이어지는게 힘들었다. 하지만 이런 말은 듣는 사람을 당황하게 만들 뿐이다. 뭐라도 해보고 힘들다고 해야 할텐데 대체 나는 그동안 뭘하고 살았을까. 어쨌든 밥벌이는 해오면서 살았고 나쁜 일을 해서 돈을 번 것도 아니고 부당한 이득을 취한 적도 없는데 나는 내가 부끄러웠다.


제주도에 가기 전 그래도 생활터를 옮긴다는 생각에 뭐라도 준비해보자 싶어 바리스타 시험을 알아보았다. 같이 수업을 듣는 사람들과의 첫만남, 수업, 실습의 과정을 거쳐 시험 당일. 나는 너무 떨려 심장이 밖으로 튀어나올 것만 같았다. 계속해서 심호흡을 해도 심장이 나대는 걸 멈추지 않았다. 시험실 앞 길다란 복도를 왕복해서 걸으며 시연영상을.돌려보고 또 돌려봤다. 펜을 들고 앉은 심사위원들 앞에서 딱딱하게 굳은 자세로 시험을 봤다. 합격하고, 자격증을 발급 받았다.

최근 들어 이 때의 기억을 떠올리다 보면 내가 대학에 갔다면 이렇게 긴장되는 순간을 얼마나 더 많이 마주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과제발표는 한 학기에 몇 번이나 있지? 요즘은 온라인으로 모인다고 해도 내게 마이크가 주어지고 다들 숨을 죽인 그 공기가 긴장되는 건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과제를 할 때마다 얼마나 많은 고민을 하고 점수를 받을 때마다는 또 얼마나 긴장이 될까. 다음 학기 학비 걱정은 얼마나 큰 짐으로 다가올까.


대학을 간 사람은 어떤 시련들을 거쳐왔을지, 이겨내며 성장했을지 어렴풋이 짐작 할 수 있겠지만 나같은 사람은 그저 게으르고 의욕 없는 사람으로 비춰진대도 할 말은 없겠다 싶기도 하다. 스물네 살 때였던가 같은 날짜에 같은 회사에 입사한 동갑내기가 있었다. 나는 늘 써먹던 “알려만 주시면 열심히 하겠습니다! 성실하게 일하겠습니다!” 라는 말만 들이밀었고, 동갑내기 그 친구는 대학 졸업자에 포트폴리오까지 준비해 면접을 봤다. 그 친구와 나까지 뽑아주신게 감지덕지였다. 하지만 그 때는 서러웠다. 자연스레 내가 그 친구의 조수 포지션이 되는 것이, 회의시간 때 그 친구의 의견을 듣고는 나는 곧바로 건너 뛰어 버리던 것이, 다이어리에 열심히 적어간 내 생각을 속으로 되뇌이다가 그대로 삼켜 버려야 했던 경험이.


“몇 학번이세요?”

“전공이 어떻게 되세요?”


나를 파악하기 위한 질문으로 제발 듣고 싶지 않은 질문들이었다. 언제쯤 초연해질 수 있을까 싶었다. 몇 년 전엔 북페스티벌에서 누군가 인터뷰 요청을 해 온 일이 있었다. 인터뷰들을 묶어 다양한 젊은이들의 생각을 다룬 책으로 만들 예정이라고 했다. 그 많은 사람들 틈에서 나를 발견해 준 것이 기뻐 덜컥 인터뷰에 응했다. 하지만 그들과 마주 앉아서는 겁이 좀 났다. 이 사람들이 원하는 젊은이의 모습이 있을텐데, 내게 그런 모습이 있나? 없을 것 같았다. 지레짐작으로 초조해진 나는 내가 대학을 나오지 않음으로써 겪었던 서러움들에 대해서만 줄줄이 읊어댔고 듣던 인터뷰어는 “그래도 대학을 다닌 사람은 그 나름의 고민이 있을텐데…” 아마도 참다가 내뱉은 한 마디 였을 것이다. 분위기는 점점 싸해지고 시작보다 훨씬 어색한 끝으로 그 날은 그저 흘러간 한 장면으로만 남아있다.


최근엔 계속해서 카페 면접을 보러 다녔다. 원데이클래스로 라떼아트도 다시 배웠다. 면접을 볼 때면 “카페에서 일해 본 경험 있고, 자격증도 있고, 라떼아트도 가능합니다.” 말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러면 긴 말은 필요 없어진다. 면접관에게서 아주 약간의 신뢰의 표정을 본 듯이 느껴질 때도 있다. 궁금한 게 있느냐는 질문에 업무환경에 대한 질문도 할 줄 알게 되었다. 면접관도 나를 평가하고, 나도 내가 일할지도 모를 공간을 평가하고, 그렇게 서로 대화하듯 면접에 임하는 경험이 쌓여간다.


이 매거진 초반에 내가 경험했던 직장생활들을 차례대로 작성해보겠다고 했었던 건 그것들이 모두 다른 경험인 줄 알았기 때문이었다. 장소와 사람들이 달랐고 내 나이도 다르긴 했다. 하지만 나는 계속 똑같은 페이지를 넘기고 있을 뿐이었다.


나는 인정해야 한다. 일반적이지 않더라도 나같은 사람도 있는건데, 왜 나는 안 알아봐줘, 왜 내 고통은 몰라줘, 나도 겉으로 드러나지 않더라도 열심히 살았단 말이야. 징징거리는 어린아이와 다를 바 없었다. 나야말로 다른 사람들과 나를 구분지어 놓고 내 고통밖에 볼 줄 몰랐다. 이제는 힘들다고 눕는 대신에 울면서도 공부해보는 사람이 되고 싶다. 그렇게 내가 할 일을 울음이 나더라도 해내고 세상에 나가서는 초연한 모습으로 우뚝 서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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