옷 쇼핑몰 출하 일을 했다.
두툼한 택배송장 뭉치가 테이블에 놓이면 작업자들이 차례로 나누어 가져간다.
구역별로 철제선반들이 늘어서 있고 포장된 옷더미가 쌓여있다.
송장에서 물건 위치를 확인하고 옷들을 찾아나선다.
더 이상 찾을 송장이 없을 땐 어질러진 구역들을 정리하거나 지시에 따라 택배포장 일을 한다.
보통 한 번 포장을 시작하면 찾아온 물량이 다 끝날 때까지 제자리에 서 있는데 점점 팔과 눈동자만 살아있는 돌이 되어간다.
하루 9시간 중 쉬는 시간 10분과 식사시간 1시간을 제외하곤 계속 걸어다니거나 계속 서서 작업한다. 머리를 쓸 일이 아니니 몸이라도 쉬지 않고 써야 한다.
줄어들지 않는 송장뭉치나 줄지어 늘어선 택배포장 대기 물건들보다도 힘든 것은 아무리 찾아도 나오지 않는 옷이다. 분명 전산엔 재고가 남아 있다고 하고 관리자는 꼭 찾아야 한다고 말한다. 대부분 민무늬에 아주 얇은 기본 티셔츠여서 찾는데 품이 더 많이 드는 종류이다. 봤던 곳을 또 보고, 아마도 몇 백개의 상품번호를 눈으로 훑고 또 훑다보면 어질어질해지는데 이렇게 뒤지고서도 못 찾아내면 “옷 찾는 척 하면서 논다.” 는 눈총을 받는다.
이전에 다니던 회사에서는 혼자 잘 보이려고 오바해서 일한다는 욕을 먹기도 했는데, 면접에서 광탈하고 나오던 삼순이 언니의 말을 빌리자면 “어디선 일을 안 한다고 하고, 어디선 너무 많이 한다고 하고, 먹고 살기 힘들다 김지은.”
무지 긴팔 티셔츠 화이트. 얼핏 보기에 비슷한 옷들이 여러 종류인데 분명 상품 번호는 다르다고 한다. 그 다른 하나를 꼭 찾기 위해 뒤지다가 발견하게 되면 내가 진짜로 찾은 건가 번호를 3~4번쯤 체크하고 관리자에게 가져간다. 발견의 기쁨은 분명 있지만 찰나이고 못 찾는 옷은 또 생긴다. 혹시 연구 같은 걸 할 때도 이런 기분을 느낄까? 언제 나타날지 모를 발견을 위해 뒤지고 또 뒤지고. 겨우 옷 찾는 걸로 비교할 일은 아니지만 그런 시간을 인내한다는 건 참 대단한 일이구나.
그렇게 보면 삶을 놓지 않고 살아간다는 것도 참 대단하다. 언제 발견하게 될지 모를 기쁨을 기다리며 무미건조하거나 그저 반복되거나 때론 슬픈 시간들을 인내하고 있으니까. 그렇게 기다리다가 기쁨이 찾아와도 파티는 순식간에 끝나고 그 뒤엔 허무함이 기다리고 있을 때도 있다. 그 때는 앞으로 또 좋은 것을 발견하게 되리라는 희망을 부여잡고 다시 걷는다.
면접관이 말했었다. 여긴 뒷말이 많이 나오는 곳이라고. 뒷말의 당사자가 되고 난 뒤 퇴사의사를 밝혔다. 뒷말의 생성구조는 희한해서 내가 눈에 띄지 않으려 애를 쓰면 그게 원인이 되기도 한다.
아침마다 출근하는 척 집을 나와 도서관에서 시간을 보낸다. 어제는 면접을 봤는데 그 자리에선 나의 모든 점이 결점이 되는 것 같았다. 나이가 많고, 자신감이 없어 보이고, 1년 정도의 공백기가 있고… 내가 대답을 망설이거나 조금 길게 답변한다 싶으면 가차없이 말이 잘렸다. 최저임금 수준의 급여에 연차가 없는 것 등을 설명할 땐 내가 알아들을까 무서운가? 싶게 본인 말의 속도를 높였다.
그리고 연락은 없다. 나는 떨어졌나보다.
면접 대기 때 다른 면접자와 만났었는데 나보다 더 나이가 많아 보였고 경력이 없다고 했다. 면접관의 요구서류였던 이력서도 챙기지 않았다고 했다. 그 사람이 붙었을까? 붙었다면 비결이 뭘까 궁금하다. 그래도 이것도 지나갔으니 이젠 또 다른 게 오겠지. 그건 좋은거일 수도 있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