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 전 학교 축제 때였다. 코스튬을 입고 공연을 했던 나는 공연이 끝난 뒤에도 그 옷을 벗고 싶지가 않았다. 나는 실제로 그 직업을 가진 사람이 아닌, 잠시 꾸며진 사람임에도 불구하고 그 껍데기를 조금이라도 더 붙잡고 있고 싶었고 그 모습은 조롱거리가 되었다.
쓸데없는 바람이 든 마음이 여전히 남아 있었기 때문일까. 나는 한동안 알바를 찾을 때 한 번쯤은 들어본 업체이거나, 공고 제목에 미사여구가 많이 붙은 공고 위주로 살펴보곤 했었다. 어쩌면 현란한 말 뒤에 멋진 사람들과 신나는 일들이 있을 것이라는 기대를 가졌을지도 모르겠다.
그 곳은 대형마트를 비롯한 각종 유명 브랜드 상점들이 즐비한 대형건물에 입점한 카페였다. 개업축하 화분들이 줄지어 장식된 오픈 초기의 매장이었다. 양복 차림의 본사 직원들이 수시로 들러 조정할 내용은 없을지 살펴보고 커피를 한 잔씩 마시다 가곤 했다. 때로는 회식을 하고 얼큰하게 취한 얼굴로 “파이팅!” 장난스레 웃으며 떠들썩하게 지나가기도 했다.
미리 언질을 받았던 곰돌이를 닮은 호탕한 이사님이 방문했던 날이었다. 이사님은 뭔가 작업을 하는 듯 하다가 앉아있던 나(알바생)와 다른 직원을 손짓으로 불렀다. 직원이 재빠르게 달려가자 고개를 젓더니 손가락으로 나를 가리켰다. 내가 다가가니 이사님은 말씀하셨다.
“OOO 알아?”
“네? 아니요 모르겠습니다.”
“요 근처에 있는 식당인데, 위치를 알려줄테니까 가서 휴대폰 좀 찾아와.”
“네?”
“내가 밥을 먹고 휴대폰을 두고 왔거든.”
이사님과 같이 들른 일행이 자신이 위치를 아니 다녀오겠다고 하자 이사님은 만류하며 나를 보내려 했다. 나도 얼결에 “제가 다녀오겠습니다.” 말은 했지만 마음은 점점 찜찜해지고 있던 차에 결국 이사님의 일행이 다녀오는 것으로 일단락 되었다.
뒤에서 앉아있던 같이 일하는 직원에게 다가가 내가 방금 겪은 상황을 얘기했다. 나에겐 너무 황당한 일이었는데 그 직원은 듣는 둥 마는 둥 웃기만 할 뿐 아무 대답을 하지 않았다.
또 다른 그 곳은 공유주방에 입점한 음식점이었다. 매일 들르는 사장님은 직접 준비한 재료들과 음식을 가져다 주신다고 했다. 항상 후드집업 차림에 하루에 3시간 정도 자면서 새로 오픈한 지점의 판매율을 높이기 위해 현장에서 같이 고민을 하곤 한다.
나의 이력에 대해 듣기 전에 우선 내가 일하게 될지도 모를 가게에 대한 설명부터 해주고 면접 일정을 잡았다.
우연히 듣게 된 나의 학력 컴플렉스에 대해서는 본인의 대학시절 얘기를 풀어주며 시험점수와 무관한 예술성을 지닌 학생들에 대한 얘기로 위로를 건네주셨다. 그리곤 “그래 그런 얘기는 이제 그만하고, 이제부터 너는 어떻게 살거니?”
여기는 고깃집이었다. 시끌벅적한 가게에서는 항상 서로 소리를 지르며 의사소통을 했다. 주방에서 분주히 움직이는 이모님들은 특히 신경이 곤두서 있는 상태로 일을 하시곤 했는데 어느 날은 급하게 걸음을 옮기다가 넘어지실 뻔 하신 적이 있다. 손에 펄펄 끓는 뚝배기를 든 상태였다. 이모님도 놀라고, 밖에 서 있던 나도 화들짝 놀라 바쁜 와중에 잠시 얼음 상태가 됐다. 이모님은 중심을 잡고 나자 뚝배기부터 살피셨다. 음식이 망가지진 않았을지 염려가 되셨던 것 같다.
“이모님 저 오늘 밥 먹고 가도 돼요?”
항상 저녁을 안 먹고 가던 내가 어느 마음이 많이 약해진 날 이모님에게 응석 부리듯 여쭤봤다.
“그럼, 그럼, 가만 있자 그럼 뭐를 해줘야 하나… 뭐 먹고 싶어?”
“저 된장찌개요!”
이모님은 된장찌개에 고기까지 볶아 주셨고 나는 밥을 두 그릇 비웠다.
어디에서 누구를 만날지, 무슨 일이 생길지는 미리 알 길이 없다. 그저 그 속에 들어가보는 수 밖에는. 그래서 나는 매번 들어가 볼 수 밖에 없었고 ‘이번에도 아니네….’ 후다닥 도망쳐 나오곤 했다.
나는 여전히 미리 알 수 있는 것이 별로 없다. 하지만 전혀 없는 것은 아니어서 내가 앞으로 추구해야 할 방향이 어느 쪽인지는 조금씩 선명해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