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라밸을 갖추는 것은 나를 위한 것만은 아니다

by 김지은이

돈은 항상 모자랐다.

아무리 허리띠를 바짝 졸라매도 당장의 수입으로 버틸 수 없는 지경이 되면 나는 내 몸을 하나 둘 쪼개는 기분으로 무리하게 일을 더 구했다.


회사에 다니며 야간으로 쿠팡 알바를 겸하던 때에 나는 픽업 카트를 밀고 걸어 다니면서도 졸았다. 깊은 새벽 퇴근하고 나면 곧바로 잠에 빠져들기 바빠 제대로 씻지도 못하던 날들이 부지기수였는데 4일쯤 씻지 못했던 어느 날 아침엔 온 몸이 근질거리고 퀴퀴한 냄새가 나는 느낌이 견디기 어려웠다. 그래서 점심시간에 대중 목욕탕에 들러 씻고 머리를 채 말리지 못한 채 회사에 복귀하기도 했다.


그게 벌써 3년쯤 된 일인데 나는 아직도 그 단계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경제적 자유라는 말이 익숙해져가고 있는 요즘에도 나는 시급을 받으며 근근히 살아가고 있는데 해가 지날수록 이런 내 스스로에게 비참함을 느낀다. 왜 나이를 먹으면 돈이 최고라고 하는지 굳이 이렇게 자존심 상하게 체감하고 싶진 않은데 어쩔 수 없이 이게 나의 현실이다.


최근에는 아르바이트를 3개 하며 야간반으로 간호조무사 수업을 듣고 있다. 나는 요즘 아이러니를 자주 느낀다. 아르바이트 장소에 가면 "나이도 있으신데 너무 무리하면 큰일나요." "가장 연장자부터 드세요." 라는 소리를 듣는데 병원으로 실습을 나가면 "애기야 이리 와 봐." "아이고 보송보송하다." 이런 소리를 듣는다. 실습을 하다 보면 내가 정말 이 일을 업으로 삼을 수 있을까 싶지만 나이의 많고 적음도 분명 상대적인거구나 느낄 수 있어 감사하기도 한 경험을 하고 있다.


아무튼 나는 누군가 열심히 살고 있다고 얘기해주는 생활을 하며 사실 점점 지쳐가고 있다. 그리고 그걸 숨기지 못하는 상태에 이르렀다. 요즘 특히 힘겨운 아르바이트는 주말 이자카야 일인데, 취객 응대에 시끄러운 분위기, 잠깐 서빙해주고 나면 계속 서서 멍때리며 타인의 잔치 속 멈춘 듯한 시계를 바라보는 일을 대여섯시간쯤 한다.


그 곳에서 일하는 모두가 힘든 것을 알고 있다. 하지만 다들 어른스럽게 힘듦을 유머로 승화시키며 일하고 있다. 그 속에서 축 쳐진 나는 안 좋은 의미로 눈에 띄는 존재가 되어가고 있다. 나의 속사정을 구구절절 뱉어내고 이해받고 싶은 마음이 일다가도 이 무슨 부질없는 짓이냐 싶다. 우리는 노동력과 돈만 교환하면 되는 사이인데, 부디 그렇게까지 눈치없는 사람이 되지는 말자.


워라밸이라는 개념을 처음 접했을 때 그건 온전히 나만을 위한 개념인 줄 알았다. 하지만 나의 상태를 최상으로 유지하는 것은 같이 일하게 될 동료들을 위한 것이기도 하다. 사람은 기본적으로 이타심이 있어 곁에 있는 누군가가 기운없어 보이면 거기에 신경을 쓰게 되고 그건 본인의 에너지를 써야 하는 일이 된다. 또 부정적인 기운은 옮는다고도 하지 않나. 병원에 있으면 건강한 사람도 아픈 기분이 든다고 하는데 비슷한 맥락으로 쳐진 사람 곁에 있으면 같이 쳐진 기분이 들 것이다.


알지만, 하지만 당장 워라밸을 갖출 수 없는 나는 당장 무엇부터 해야 할까? 컨디션 관리가 중요한 것을 알지만 계속해서 내 한 몸을 혹사해야 하는 뫼비우스의 띠에 갇힌 나는 어디에서 이 띠를 끊어낼 수 있을까? 답을 찾고자 생각을 하지만 결국 질문으로 끝나고 마는 이 고리는 또 어떻게 끊을 수 있담?

수포자였던 나는 수학문제가 가장 큰 난제인 줄 알았는데 아무래도 매일 마주하는 내 인생이 최대의 난제인 것 같다. 내 인생의 정답과 해설서를 갖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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