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유경_남해의 봄날
엄마를 데리러 가는 버스 안에서 열심히 읽었다. 아흔 살에도 근로소득을 입금 받으며 정정하게 생활하시는 봉여사님. 우리 엄마도 이렇게 본인의 삶을 일궈나갈 줄 안다면 얼마나 좋을까? 말썽쟁이 우리 엄마. 처음엔 우리가 같이 살게 되기만 하면 그게 해피엔딩이 될 줄 알았다. 같이 살기 시작하니 엄마가 가진 인생에 대한 고민들이 내 피부에도 와닿고 예상치 못한 스트레스가 되기도 했다.
“넌 나이 먹으면 어짤래” 부쩍 자주 거울을 들여다보던 엄마가 어느 날 물었다. 난 늙음에 대해 많이 생각하지 않고 살았다. 내 인생은 최대한 짧았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다른 사람들이 노후대비 보험얘기 등을 할 때에도 난 크게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다. 그런 내 곁에 어느새 백발이 성성한 엄마가 바짝 다가 앉은 뒤론 늙음에 대한 생각도 자연스러운 것 중 하나가 되었다.
그 생각의 시작은 좀 더 엄마에 대해 이해해보고 싶다는 마음에서였고 불가능할 것 같았던 엄마와의 재회가 현실이 되었으니 다른 좋은 상황에 대해서도 희망을 가져봐도 될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희망을 가지고서야 노년까지 못 가볼 건 또 뭐야. 그러다보니 나의 늙음에 대해서도 생각해보게 된다.
“나이 먹으면 모든게 파이야. 기능도 더 떨어지고 몬생겨지고 더위도 더 타고… 넌 나이 먹으면 어짤래”
내겐 엄마의 고왔던 시절 사진 한 장이 있다. 한참의 세월동안 떨어져 지내다 다시 만난 엄마는 그야말로 순식간에 늙어버린 사람 같았다. 엄마가 자꾸 거울 속 자신을 비춰보는 건 스스로도 그렇게 느끼기 때문인걸까?
봉여사님은 삶을 일구어 나가는 감각을 계속해서 유지해 왔지만 그렇지 못했던 사람이 나이가 들 경우엔 새로이 뭔가를 시작해 볼 방법이 존재할까?
엄마의 단골 멘트 중 하나는 “난 그런거 못해.” 이다. 봉여사님이 처음엔 글짓기 같은거 못한다고 하시다가 나중엔 이야기를 창작해내시던 것처럼 우리 엄마에게도 부드러운 푸쉬가 계속해서 들어간다면 그런게 가능해질까?
봉여사님에겐 같이 요가수업을 듣던 80대 노인도 ‘이제 겨우 팔십 줄에 들어섰으면서 움직이지 않으려 하는’ 사람이 되기도 했다. 그런 봉여사님이 우리 엄마에게도 한마디 해주시면 좋겠다.
“아직 팔팔할 때고만 어째 저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