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만의 아이패드 드로잉

달콩(서은숙)_혜지원

by 김지은이

그림을 따라 그리다 보면 프로크리에이트의 기능을 자연스럽게 하나씩 배우게 되는 구성이어서 좋았다. 이론 공부 중에 빨리 실제로 해보고 싶어 조급해지는 나같은 사람에게 딱이었다. 또 그림을 배운 시간은 충동적으로, 다소 무리해서 구매했던 아이패드를 값지게 사용해 본 시간이어서 좋았다. 그림들을 그리는 동안은 아이패드가 있어 다행이라고 생각했으니까. 점점 화면 큰 유튜브 시청용 도구가 되어가고 있었는데 이런 경험을 해 본 건 정말 다행이 아닐 수 없다.



프로크리에이트는 설치한지 한참 지났다. 그동안 그림을 시도해보지 않은 것은 아니다. 내가 그림으로 생각을 표현하기 위해 해 본 것들은 브러쉬 종류 바꾸기, 불투명도와 선의 굵기 조절해보기, 애플펜슬의 각도 바꿔보기, 손에 주는 힘을 조절해보기 정도였는데 이 정도로는 내 머릿속의 상상들이 전혀 구현되지 않아 금방 흥미를 잃었다.


책에서는 이런 게 있는 줄도 몰랐던 다양한 기능들과 그 기능들의 배합을 통한 새로운 표현 방법등을 찬찬히 알려주고, 그걸 내 속도대로 따라가다 보면 정말로 그림이 한 장씩 완성됐다. 갤러리에 하나씩 작품이 늘어나는 기분이란 아주 짜릿했다. 내가 창작한 작품들이 하나씩 늘어나는 걸 보게 된다면 그건 어떤 기분일까?



그림을 그리다가 울컥 눈물이 났던 부분이 있다. 까만 도화지를 지우개로 지워가면 알록달록한 색들이 나타나며 그림이 그려지는 방식이었는데, 새까만 속에 나타나는 다채로운 색들이 참 예뻤다. 까만 속에 있어서 더 빛나 보였다.


그러니까 내가 울컥한 건 이 순간을 나에게 대입했기 때문이다. 나 자신은 이미 나에게 있는 도구이지 않나? 나를 더 잘 사용할 수 있게 되면, 있는 줄도 몰랐던 나의 기능들을 알게 되면 나도 다채로운 색을 드러낼 수 있을까 그런 생각을 했던 것이다. 그림을 그리는 건 이렇게 책으로 배우게 되었는데, 나의 삶을 그리는 건 뭘로 배울 수 있을까? 여태까지 까맣게 덧칠하는 것밖에 배우지 못한 느낌이 드는 건 너무 자학하는 걸까?


책으로 만났지만 스승의 중요성을 크게 느낀 시간이었다. 너무 당연한 걸 깨닫기 위해 종종 아주 먼 길을 돌아오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