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펜의 시간

김유원_한겨레출판

by 김지은이

언젠가 친구와 여의도 공원에서 따릉이를 타고 놀았던 한낮이었다.


우리는 미래에 대한 불안감을 크게 느끼고 있었고, 커피 한 잔을 어떻게 하면 더 싸게 마실까 고민했지만 한가한 평일 한낮의 공기를 자전거로 가르던 그 순간만큼은 자유롭고 평화로운 기분을 느꼈다. 연신 “너~무~좋~다~” 를 외쳤다.


한 바퀴 더? 콜! 을 외치고 페달을 밟고 있던 중 마치 귓속말처럼 나직하고 가까운 목소리가 들렸다. “잡았다.”


그 목소리를 남기고 한 여자아이가 나를 앞질러 나갔다. 아무리 많이 봐도 중학생도 되지 않았을 것 같았다. 나는 조금 멍해지는 기분을 느끼며 속력을 더 높이지 못하고 그 아이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혁오는 일반적인 시선으로 보기엔 의뭉스러운 플레이를 하는 선수로 그려진다. 하지만 사실은 패자를 만들고 싶지 않아 선택한 길이었다.


천부적 재능을 가지고 시기질투를 받는 생이 더 괴로울까, 자신의 한계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1등의 뒤통수만 바라보는 생이 더 괴로울까.


어느 쪽이든 경기장 안으로 들여보내져 관람되기는 매한가지이고 그런 경쟁구도 속에서는 어느 쪽도 온전히 마음이 편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어릴 적 내가 앉아있던 교실은 경쟁의 장이었고 귀여운 포도 스티커조차 경쟁을 부추겼다. 하나라도 더 모아 한 명이라도 더 제치기 위해 집착하는 순간 나는 얼마나 괴로워졌었나? 그런 감정을 미처 인지하기도 어려웠을만큼 어렸던 나였다.


나를 “잡았다”고 굳이 내게 선언하며 유유히 앞질러 가던 그 아이와 내 사이엔 한 20년 정도는 간극이 있을텐데 아직도 교실의 풍경은 그대로인걸까? 아주 똑같지는 않겠지?


아, 그 아이는 어쩌면 잘 자라고 있는 것일까? 나는 경쟁에서 도태되어 아직도 어릴 때와 변함없는 고민을 하고 있으니 말이다. 하지만 외국의 어느 교실에서처럼 시험결과를 알려줄 때 점수나 등급을 매겨 줄세우는 방식이 아닌, 어느 부분을 보완하면 좋을지 알려주는 방식으로 교육을 받았으면 지금의 나는 어떤 모습일까?


“김아무개, 4점.”

수학시험 점수를 선생님이 일일히 불러줄 때, 높은 점수에는 환호가, 낮은 점수에는 장난섞인 야유가 쏟아지던 그 교실에서, 터무니 없이 낮은 한자릿수 점수에 모두 침묵하던, 고개를 들 수 없어 그저 땅 속으로 꺼져버리고 싶던 내 모습도 문득 떠오른다.


경쟁, 지겨운 경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