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도망일지

내가 고정해둔 나의 위치

by 김지은이

제주 한달살기가 한창 유행이었다. 숙소의 선택폭이 아주 넓었다. 세련된 인테리어나 숙소에서 함께 지내는 반려묘 혹은 방 창문으로 감상할 수 있는 오션뷰 등 숙소마다 강조하는 테마가 다양했다. 어디를 가도 여기보다는 좋을 것 같은 행복한 고민에 빠져 밤이 늦도록 모니터를 쳐다봤다.


많고 많은 후보지 중 선택한 그 곳은 며칠 간 봤던 곳 중 가장 촌스러웠다. 뽀얗게 보정을 거친 사진들 속에는 통일성 없는 디자인의 물건들로 채워진 거실과 주방, 게스트룸이 있었다. 구성을 생각하고 가구들을 구매한 흔적은 전혀 없었다. 그냥 여기저기서 하나 둘 그러모은 물건들로만 채워진 집 같았다. 나는 집을 꾸미고 살지 않았기에 한시적으로 지낼 곳이라도 인테리어가 우선순위였다. 그래서 단박에 그 곳에 이끌리진 않았는데 호스트가 숙소 홍보용으로 운영하는 블로그를 들락거리며 발간된 글을 하나 둘 읽다가 서서히 마음이 바뀌었다. 이야기를 많이 들려주는 공간이었고 차츰 호스트에게 일방적인 친밀감을 느꼈다. 좀 더 정확하게는 내가 듣고 싶었던 말들을 매 순간 해주는 공간이었다. 괜찮다고, 쉬었다 가도 된다고, 여기로 와서 쉬라고, 나는 당신을 환영할 것이라고 했다. 나는 어느새 그 글을 보게 된 모두를 위한 말을 나만을 위한 것으로 여기고 있었다.


마음이 동한 나는 당연히 그 곳을 첫 번째 숙소로 정하고 싶었지만 입주날짜를 맞추지 못해 임시방편으로 다른 숙소에서 한동안 지내기로 했다. 그냥 가장 거리가 가까운 곳 중 하나를 큰 고민 없이 고른 것이었는데, 그렇게 도착한 첫 숙소에서 예상치 못한 환대를 받고는 좀 얼떨떨해졌다. 여기에서 좀 더 지내볼까 고민스러울 정도였다.


호스트의 딸이 직접 꾸몄다는 집안은 단정한 모양새를 갖추고 있었다. 거실의 벽 한 면을 채운 통창 너머로는 밭과 야트막한 집들이 보였다. 창문을 열어두면 반투명한 시스루 커튼이 살랑일 때가 있었는데 다들 외출한 어느 한낮 조용한 거실에 앉아 바라보고 있으면 모든 걱정을 잠시 잊게 해주는 풍경이었다. 언젠가 내 집을 갖게 된다면 이런 모양이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내가 지내기에 만족스러운 것은 물론이고 누군가에게 보여주고 싶은 집이 될 것이었다.


내 인생을 통틀어 너무나 수치스러웠던 순간이 있다. 초등학생 때였다. 당시 전교회장인 그 애는 키 크고 잘생기고 활발한, 남녀 모두의 로망같은 아이였다. 게다가 집이 부자였다. 생일 때는 부모님께 카드를 받아 피자집으로 친구들을 데리고 간다고 했다.


그 애가 아마도 부녀회장이었을 자신의 엄마와 함께 우리 집에 찾아온 적이 있었다. 가난한 아이들을 돕는 프로그램을 진행한다고 했던가. 그래서 직접 만나보러 왔다고 했던가. 그 애는 전교회장이니 교내 다른 아이들의 집안사정까지 두루 알고 있어야 했던걸까? 그래서 엄마를 따라온 것이었을까? 번듯한 그들 모자 앞에서 나는 죄인처럼 고개를 들지 못했다.


어른들은 속도 없이 감사하다고 했지만 나는 그 상황이 죽기보다 싫었다. 다음 날 학교를 가느니 차라리 먼지가 되어 사라지고 싶었다. 그들은 돌아가는 길에 어떤 대화를 했을까? 나도 여기를 떠나고 싶었다. 이 곳은 임시거처이고 사실은 돌아갈 번듯한 장소가 있다는 상상은 언제나 달콤했다.


함께 지냈던 게스트 J가 있다. 그 게스트는 청소를 잘 안했다. 해 본 적이 없다고 했던가? 씻고 나서, 음식을 하고 나서, 제가 쓰는 방도 당연한 듯 적당히 어질러두고 지낸다. 아빠가 사주셨다는 자차를 끌고 온 그녀는 매일 청소를 해주는 호텔같은 공간이 익숙한 사람인지도 몰랐다. 하긴 제주도에 오기 전 이 숙소가 괜찮은지 가족들이 와서 먼저 살펴봤다고 하니 적잖이 곱게 자란 사람인가보다 그런 보호 속에 사는 모습이 부럽기도 했다.


아무튼 호스트는 그 모습을 보고 내게 뒷담 아닌 뒷담을 한다. 그럼 나는 더 열심히 청소를 한다. 씻고 나서 머리카락을 그러모아 치우고 분리수거를 열심히 하고, 음식물 쓰레기를 나서서 내다 버린다. “언니 그거 오늘은 제가 버리려고 했는데 벌써 버리셨네요. 고마워요.” 자연스러운 인사치레가 돌아온다. 공용공간인 거실은 눈치껏 돌아가며 청소해야 하지만 그 역시 내가 나서서 막대걸레로 훔치고 있으면 외출에서 돌아온 호스트가 감동받은 표정을 짓는다.


나는 어느새 돈을 지불하고 청소하러 온 사람이 된다. 정당한 대가를 치르고 손님이 되는 것에는 분명 마음을 안정시켜주는 힘이 있다. 나도 다른 사람들과 동등하다는 느낌, 떳떳할 수 있는 것이 그렇게 좋을 수 없다. 하지만 내 속에는 아직도 위축된 어린아이가 떠나지 못하고 웅크리고 있어 나는 종종 당당하지 못하다. 신세를 지러 온 사람인 양 자세를 낮추곤 한다. 뒤늦게 후회하며 다시는 반복하지 않도록 자기암시를 해보지만 소용없는 일이다.


J는 하루 일과를 마치고 들어와 젖은 머리를 수건으로 틀어올리고 쇼파에 앉는다. 그리곤 노트북으로 쇼핑을 한다. 장스탠드의 은은한 불빛을 받으며 느긋하게 앉아있는 J의 흐트러진 머리칼도 분위기 있어 보인다. 나는 그 뒤에서 테이블을 닦고 있다. 뒷담의 대상이 되는 J와 칭찬을 듣는 나. 어느 쪽이 더 나은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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