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를 만족시키고 싶어. 그런데 그게 가능해?
첫 번 째 숙소의 호스트 A는 24시간 웃고 있을 것 같은 사람이었다. 웃을 때 눈가에 잔주름이 새겨지는 모습이 사랑스러웠다. 항상 만면에 미소를 띄며 “지은씨~” 나를 부르곤 했다.
그 웃음이 너무 반갑고 좋았다가 차츰 부담스러워지기 시작한 것은 내가 어떤 사람일까 하는 기대감을 느꼈기 때문이었다. 아마도 그런 느낌은 내 자격지심에서 비롯된 것이었겠지만.
A는 내 방에 세워둔 책들을 보며 감탄을 금치 못했다. 책 이렇게 많이 보는 사람이 오랜만이라고, 무슨 책을 읽는지 궁금하다고 했다. 그냥 얼버무리고 넘어가고 싶었다. 취미가 독서라고 하면 ”오~“ 하는 반응이 돌아오는 것이 싫었다. 때때로 내가 젠체 하느라 독서라는 단어를 입에 올린 사람이 되는 것 같을 때도 있었다.
책도 그저 취향 중 하나라고 받아들이는 사람을 만나는 게 생각보다 어려웠던 것은 내가 그동안 지내온 환경 탓이었을 것이다. 대학을 포기한 뒤 내가 할 수 있었던 노동의 종류는 공장, 호프집, 콜센터, 단순사무직 같은 일 뿐이었다. 일을 하면서 공부를 포기하지 말고 내 능력을 더 높여간다는 일은 생각처럼 잘 되지 않았고 나는 어느 순간부터 한달 벌어 한달 먹고 사는 패턴에 고착돼 있었다. 제자리걸음만 하는 스스로에게 환멸을 느끼는 날이 늘어갔다.
A의 딸은 대학을 졸업하고 대기업에서 일하고 있다고 했다. 자신의 딸을 너무나 자랑스러워하며 그 대기업이 어디인지, 딸이 어떤 프로젝트를 진행했는지, 그 회사 복지에 대한 자랑까지 나왔을 때 나는 A가 나에 대해 더 이상 궁금해하지 않기를 바랐다. 자연스레 본인의 딸과 비교할 것 같은 지레짐작 때문이었다. 초라해지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내 입은 마음과 반대로 움직였다. “지은씨는 여기 오기 전에 무슨 일 했어요?” 우선 저는 고졸이고요. 라는 말부터 나왔다. 아마도 너무 본인 딸 자랑만 늘어놓았나 겸연쩍은 마음에 내 자랑도 하라고 멍석을 깔아준 질문이었을텐데. 내보일 것이 너무 없던 나는 차라리 빨리 상대방이 내게서 기대감을 거두기를 바랐다.
내 대답에 잠시 침묵이 감돌았다. 대학을 가지 않았다는 말에 그렇구나. 그럴 수도 있지. 그저 단순한 반응을 본 적이 별로 없었다. 본인이 큰 말실수를 한 듯 미안해하는 반응은 종종 봤어도. 그리고 나는 그런 반복된 반응을 학습해 다른 반응의 가능성을 모르는 사람이 되었다.
“전공이 뭐예요?” 언제쯤 초연해질까 싶은 질문이다. 사실은 A의 기대를 넘치게 만족시키고 싶었다. 나도 자랑스러운 딸이 되고 싶었다. 하지만 육지에서 못했던 것을 단순히 여기로 몸만 옮겨온다고 할 수 있을까. 어림도 없는 소리였다.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름다운 바다를 차비조차 쓰지 않고 마음껏 보러가는 것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