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규직은 아니어도 일은 돌아간다-파견직으로 본 세상

by 리나

모든 일에는 체계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나는 인수인계를 무엇보다 중요하게 생각한다.


최근 공공기관에서 단기 아르바이트를 했다. 공공기관 소속이 아닌 아웃소싱 업체와 계약을 맺고 공공기관에 파견된 형태였다. 구직하는 중 그냥 놀고 있을 순 없겠단 사실에 시작한 일이다.

알바사이트에 올라온 공고문 속 업무는 이랬다.

'00 정책사업 신청지원 및 민원인 상담 안내 사무보조'

눈으로 보기엔 단순했다. 하지만 막상 주어진 일은 공고와 달랐고 누구도 업무를 알려주지 않았다.

그저 "눈치 껏 배우라"는 분위기가 전부였다. 나는 직원에게 매뉴얼을 요청해 해당 사업을 익혔다. 해당 매뉴얼 또한 어렵게 받았다.


하지만, 공고문에 없던 일. 직원들조차 정확히 모르는 업무를 처리해야만 했다.

먼저 와서 일하던 알바생도"공고와 다른일도 한다. 공고는 형식적이다"는 유사한 말을 했다.

그것이 관행처럼 이어온듯 하다. 그럼에도 일을 계속했다. 크게 어렵진 않았으니까. 하지만 시간이 지날 수록 이해되지 않은 순간들이 늘어갔다. 그러던 어느날, 불편함은 분노로 변했다.


내가 일하고 있는 공공기관에서는 총 7명이 근무 중이다. 정규직은 4명이고 이중 계약직(파견직)은 3명이다.

명절 이후 복귀날. 출근한 정직원은 단 1명이었다. 이 한명 또한 전문분야를 일하는 사람으로 계약직 3명만 실제 업무에 투입될 수 밖에 없었다.


기관 사업을 세세하게 알고 있지 않을 뿐더러 알수도 없었고, 열람도 제한된 상황이다. 직원들이 해야할 민원과 업무처리를 계약직이 대신 한다는게 말이 되는가.

명절 이후 직원들이 대거 쉴 거란 생각도 못했다. 쉰다는 일말의 이야기도 없었으니까. 부재시 인수인계를 받은 것도 아니다. 파견의 설움이 이런건가. 소속감의 상실을 이때 처음 느꼈다. 그리고 유사한 일들은 반복됐다.


도무지 화를 참을 수 없는 순간이 있었다. 대출을 받은 민원인이 업무처리 여부에 대한 문의였다. 역시 담당자는 일말의 언급없이 출장을 떠났다. 민원처리도 안된 상황에 인수인계도 없이 출장을 떠난거다.

이 직원의 업무를 보조하는 계약직 직원 또한 숙지가 되지 않은 상황이었다. 전화를 받은 나는 민원인에게 담당자의 부재를 알렸지만, 해당 민원인은 여러번의 전화로 화가 많이 난 상황이었다. 빠른 처리여부를 약속한 뒤, 민원인을 진정시켰다. 그후 상급자인 과장에게 업무처리 대응을 요청했다.

하지만 형식적인 답변과 나에게 떠넘겼다. 출장나가는 직원도 이를 해결해야 할 직속간부도 '무책임' 그자체였다.


민원인이 들어왔을 떄 정직원의 태도는 나몰라라 하기 바빳다.

차석의 위치에 있는 직원은 더 심했다. 알바생에게 떠넘기기 바빳다.



정규직과 계약직 그리고 계약직 중 파견직. 직업과 체계의 의미를 다시금 되새겨봤다.


14년간 기자로 살며 나는 계약직의 억울함을 호소하는 사람들을 자주 봤다.

불합리한 대우 묻히는 아우성.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안타까움을 세상에 알렸던 내가,

이제는 그들의 자리에 서있다.


기자로서 이들을 만날 때 난 얼마나 그들의 이야기에 공감했고 귀 기울였는지. 나를 만난 그들의 억울함은 나를 통해 얼마나 해소되었을까.

아마 기사 한줄로 그들의 불합리함은 해소되지 않았을 것이다.

불안함과 분노 그리고 체념을 반복하며 자리를 지켜내고자 했을 것이라고.

파견으로 일하며 느낀 이 부조리함은 자격지심일까. 아니면 구조자체의 문제일까.

중요한 건 어떤자리에서든 사람이 존중받는 체계가 존재하느냐인 것이다.


계약직이든 정규직이든 모든 일에는 체계가 필요하다. 그 체계는 조직의 효율을 높이지만, 결국 사람을 향할 때 의미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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