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격적으로 아이 준비에 들어갔다.
무작정 자연임신만 기다리다, 이대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병원을 찾기 시작한 건 10월 무렵이었다.
난임병원을 다니면서 알게 된 사실이 있다.
생각보다 병원을 너무 자주 가야 한다는 것.
일을 하며 난임센터를 다녔던 여성들이 얼마나 대단한지,
그제야 실감하게 됐다.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생리 시작 여부에 따라 사이클이 돌아가고,
한 달에 세 번, 많게는 네 번까지 병원에 가야 했다.
시간을 내는 것 자체가 직장인에게는 큰 부담이었다.
난임 검사를 했다.
난소 나이는 서른일곱. 내 실제 나이와 같았다.
의사 선생님은 “나쁘지도, 아주 좋지도 않다”고 했다.
감사해야 하는 걸까.
그러면서도 안심할 수는 없고,
조금 서두르는 게 좋겠다는 말을 덧붙였다.
난소조영술로 나팔관 기능 검사를 했다.
오른쪽은 아주 좋았다.
문제는 왼쪽이었다. 막혀 있었고, 결국 뚫리지 않았다.
조금 우울해졌다.
난소에 혹도 발견됐지만,
다행히 크게 걱정할 정도는 아니라고 했다.
‘조금만 더 일찍 병원을 찾을 걸…’
그동안은 임신은 잘 됐었기에 크게 걱정하지 않았다.
어쩌면 병원을 찾는 일이 두려웠던 걸지도 모르겠다.
처음에는 다시 자연임신을 시도했다.
배란일을 예측해 숙제를 내줬다.
증상 놀이가 시작됐고,
내심기대했지만 임신은 되지 않았다.
이번에는 배란유도제를 먹고
난포를 키우는 주사, 터지게 하는 주사를 맞았다.
과연 네 번째 아이는 찾아올까.
그간 임신이 되더라도 늘 유지에 실패했다.
아이를 갖고,
건강하게 낳을 수 있다는 건
정말 큰 축복이라는 걸 새삼 느꼈다.
모든 것에는 때가 있다고 한다.
나는 그 많은 때를 놓쳐온 것 같다.
귀찮아서,
게을러서,
두려워서.
이유는 늘 그럴듯했다.
감사하며 산다는 것.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한다는 것.
부지런히 움직인다는 것.
말보다 행동이 먼저여야 한다는 것.
여러모로 다시
되새기고, 성찰하게 된다.
나는
과연 나 자신에게
얼마나 최선을 다해왔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