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회 가장 각까운 사람에게 가장 늦게 말하게 되는 이야기
5일 차. 부모님께 언제 말할 것인가
어제 술을 마신 영향으로 잠을 오래 잤습니다. 적응해서 잔 잠이 아니라, 몸이 꺼져버린 것에 가까운 잠이었습니다. 숙취로 몸이 무거웠고, 눈을 뜨자마자 다시 눕고 싶지도 않았습니다. 머리가 지끈거렸습니다.
부모님께 말씀드려야 한다는 생각이 계속 맴돌았습니다. 언제 말해야 할까. 아니, 말할 수 있을까. 같이 살고 있으면서도, 가장 어려운 이야기는 아직 꺼내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마음이 복잡해 할머님 산소에 갔습니다. 부모님께 말하지 못하는 이야기를 먼저 꺼낼 곳이 필요했습니다. 사실 할머님을 뵈러 간 것이 아니라, 저 자신을 달래러 간 것이었습니다.
산소 앞에 서서 조용히 말했습니다.
“회사에서 나오게 됐어요.”
대답은 없었지만, 이상하게도 조금 숨이 트였습니다. 부모님보다 먼저 이 이야기를 할 수 있다는 사실이, 나를 잠시나마 버티게 해 주었습니다.
차에 타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해임 사유를 다시 떠올렸습니다.
‘성과가 기준이었을까.’
‘사장과의 거리였을까.’
‘아니면, 정치였을까.’
문득 승승장구하는 사람이 떠올랐습니다. 업무에서 두드러진 성과를 낸 적은 없었고, 책임이 필요한 순간에는 늘 한 발 물러나 있었습니다. 그는 일을 설명하기보다 분위기를 먼저 읽었고, 판단을 요구하기보다 사장의 마음을 편안하게 만들어주는 사람이었습니다. 의전에는 유난히 능숙했고, 사장이 무엇을 듣고 싶어 하는지 정확히 알고 있었습니다.
그를 보며 처음으로 생각했습니다. 이 회사에서는 일을 잘하는 방식보다, 사장을 편하게 만드는 방식이 더 중요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집에 가까워질수록 마음이 무거워졌습니다. 부모님이 저를 걱정할 얼굴이 떠올랐습니다. 그 얼굴을 마주해야 한다는 생각에, 오늘도 이 이야기를 꺼내지 못할 것 같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