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환이 Dec 07. 2024

청중의 실패

우리는 실패할 준비가 되어 있다


프롬 소프트웨어는

<다크소울> 시리즈와 <엘든링>으로 대표되는

극악의 난이도를 추구하기로 유명한 게임 제작사이다. 

프롬 소프트웨어의 사장이자 디렉터인 미야자키 히데타카가 

'뉴요커'지와 인터뷰를 진행했을 때 인터뷰어였던

영국의 작가 사이먼 파킨은 이런 말을 덧붙였다. 


"소설의 성취는 부주의한 독자에 의해 가려지곤 하고, 

게으른 관객은 한 영화의 테마나 플롯을 왜곡할 수 있다. 

그러나 오직 비디오 게임만이, 청중의 실패를 처벌한다."


쉽게 말해 게임이라는 미디어는. 

특히 프롬 소프트웨어의 게임들은

부주의하거나 게으른 플레이어들을 용납하지 않으며, 

그것은 게임 안에서의 끝없는 죽음이라는 가혹한 처벌로 나타난다. 

그러나 기이하게도, 

프롬 소프트웨어의 게임들은

단기적 도파민을 안겨주는 컨텐츠가 넘쳐나는 오늘날에도

수많은 매니아들을 양산하며 상업적인 성공을 이뤄냈다. 

숱한 업계인들이 말하는 트렌드와는 정반대로 갈 뿐 아니라, 

정반대의 결과를 보여준 것이다. 


영화 <대부>의 제작기를 다룬 드라마 <디 오퍼>에서, 

제작자인 로버트 에반스는 이렇게 말했다. 

"관객이 원하는 걸 보여주는 게 전부가 아니에요. 관객이 봐야 하는 걸 보여줘야죠."

상업적 성공을 지향해야 한다는 압박이 날로 거세지는 오늘이기에, 

관객들이 '봐야 하는 것'을 가리키려는 노력과 

자신만의 서사를 추구하는 뚝심, 거기서 비롯된 성공은 더욱 감동적이다. 

'남들의 실패'에 훈수를 얹기란 쉽고, 또 비겁한 일이다. 

그럼에도 외치고 싶은 훈수란

오늘날 실패하거나 잊혀진 수많은 작품들이 

'상업적으로 성공하려는 노력'을 저버렸기에  실패한 것처럼 보이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오히려 '상업적으로 성공하려는 노력만으로' 채워졌기에 실패하는 것은 아닐지. 

관객들의 일차적 요구에 부응하고 있는 수많은 컨텐츠들이 범람하면서

문화의 질이 얼마나 떨어지고 말았는지, 단 10년 전을 누렸던 사람조차도 체감하고 있지 않은가. 

그리고 분명 수많은 관객과 시청자들이 그러한 현상을 비판하고 있지 않은가. 


창작자가 수용자를 불신하고, 수용자가 창작자를 외면하는 지금의 악순환 속에서도 

가장 인터랙티브한 미디어인 비디오 게임은 눈부시게 발전하고 있지 않은가. 

수용자는 언제나 이야기라는 세상에 참여하고, 

캐릭터들을 진정으로 사랑하고, 

비탄에 빠지거나 기쁨을 즐길 각오가 되어 있다. 

그것이 잘 만들어진 좋은 이야기라면 언제나. 

그러므로 오늘날 최일선 창작자들에게 필요한 것은

청중이 원하는 것을 안겨주려는 타협이 아니라 

청중이 실패조차 각오하고 덤벼들, 

진정 탁월한 이야기를 창조하려는 고민과 열의인지도 모른다. 






참고 : 유튜브 채널 <이준호의 루돌로지>, 

"당신의 플레이는 틀렸다"는 사람들, 인정협회의 정체와 의미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