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정신병원에 살고 있다
도시공원설계자인
프레드릭 로 옴스테드는 뉴욕의 센트럴 파크를 설계한 인물입니다.
그가 이미 대도시였던 뉴욕 한복판에
무려 백만평 규모의 공원을 조성하겠다고 밝히자
사람들은 난색을 표했습니다.
그때 옴스테드는 말했다고 합니다.
"지금 백만평의 공원을 만들지 않는다면, 미래엔 백만평의 정신병원을 지어야 할 것이다."
이 말은 저에게 참 인상적으로 기억되고 있습니다.
초등학생이 교사를 무자비하게 폭행하고,
학부모의 갑질로 학교에서 교사가 목숨을 끊고,
그 안쓰런 죽음에 대한 애도조차 비난받는 오늘입니다.
동시에 제가 사는 곳과 지척인 신림역에서는 묻지마 칼부림이 일어났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 순간에도 유튜버들은
누군가의 불행을 팔고, 비난과 증오를 흩뿌리며 주머니를 채우고 있습니다.
현기증이 날 정도로 쏟아지는 비극적인 뉴스들을 보면서,
자꾸만 옴스테드의 말을 떠올리게 됩니다.
어쩌면 우리가 사는 도시는
백만평의 쉼터는 커녕,
백만평의 정신병원마저도 갖지 못한게 아닐까, 하고 말입니다.
최근에 '이준호의 루돌로지*'라는 게임 유튜브를 보았습니다.
게임이라는 미디어에 비평적으로 접근하는 그 채널에서는,
<재벌집 막내아들> 속에 도입된 게임적 사고에 대해서 논하고 있었습니다.
언론지인 르 몽드 디플로마티크 한국판은
한국의 회귀, 빙의, 환생물 유행에 대해 언급하며
다음과 같이 적었다고 합니다.
"오늘날의 20대 독자들에게 가장 친숙한 게임 서사에서 그들은 언제든 '리셋'할 수 있는 환생이나 회귀에 매력을 느꼈을지도 모르겠다.
게임 서사에서 플레이어가 캐릭터를 죽게 했다면 그는 손쉽게 다시 리셋할 수 있다.
원한다면 처음부터 시작할 수도 있고 혹은 그가 선택한 지점에서 출발할 수도 있다."
르 몽드는 <재벌집 막내아들>로 대표되는 회귀물이
게임적 사고방식의 연장선이라고 말한 것입니다.
하지만 '이준호의 루돌로지'는
그러한 인식이 게임과 그것을 즐기는 게이머 세대에 대한 오해라고 말합니다.
게임에 익숙한 사람은
르 몽드의 칼럼에서 말하는 것처럼
'그저 끊임없이 다시 하는 것'에 익숙한 게 아니라
실패해도 다시 도전할 수 있는 자유,
그리고 룰에 의해 노력과 헌신이 정직하게 보상받는
정직한 세계에 익숙한 것이라고 말입니다.
그리고 <재벌집 막내아들>에서 진도준이 된 윤현우의 승승장구는
마치 꿈같은 행운처럼 보이지만
한편으론 '재벌집 막내아들'이 아니라 '국밥집 첫째아들'로서
매 순간 성실하게 살아온 그가
회귀라는 기적의 힘을 빌어
마땅한 보상을 수확하는 과정처럼 보인다고 말입니다.
저는 이 채널의 의견에 동의하는 쪽입니다.
결국 드라마 <재벌집 막내아들>에서 회귀라는 판타지는
우리 모두가 꿈꾸지만 현실에서는 결코 마주한 적 없는,
정당하고 합리적인 현실(이어야 마땅한 것)로 받아들여지는 것입니다.
그러니 드라마 <재벌집 막내아들>의 결말에
시청자들이 분노한 것은 어찌보면 당연한 일입니다.
그건 단순히 서사의 개연성을 벗어났다는 문제가 아닐 것입니다.
픽션인 드라마조차 그런 '정당한 판타지'를 끝끝내 거부하고
'무너진 현실' 속에서 끝나버렸으니,
시청자들은 기어코 바뀔 수 없는 '병든 현실'의 굳건함을 다시 한번 느꼈을 것입니다.
저는 드라마판 <재벌집 막내아들>을 쓴 김태희 작가께서
이러한 좌절을 안겨줄 목적으로 결말을 썼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저는 이야기란 작가의 의도에서 시작되지만
현실의 징후를 반영하면서 끝난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드라마판 <재벌집 막내아들>에서의 허망하게 바스러진 판타지는,
그러한 '정당한 현실'이 도래할리 없다는 시대의 깊은 좌절에서
무의식적으로, 또 필연적으로 비롯되었다고 생각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더 쓴맛이 느껴지는지도 모를 일입니다.
망상된 희망조차 쉬이 허용하지 않는 현실.
픽션의 판타지로도 넘어서지 못한 벽.
우리가 게임에 빠져들고, 소설과 영화, 드라마를 미친 듯이 탐독하거나,
혹은 그러한 것을 쓰고 만들기 위해 애쓰는 것은
잃어버린 그 '정당한 현실'을 되찾고자 하는
안쓰런 몸부림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현실을 설계해야 할 책임이 위정자들에게 있다면,
현실에 대한 소망으로 삶의 행동을 선택하는 것은 우리의 책임일 것이며,
나아가 창작자의 책임이란,
우리가 어디로 나아가야 할지
그 별처럼 많은 가능성들을 그려내는 것은 아닐런지요.
이 세상을 거대한 정신병원으로 만들지 않기 위해서 말입니다.
'이준호의 루돌로지'는 이융희 교수가 쓴 칼럼의 일부분으로 영상을 끝맺고 있었습니다.
"작금 사회의 가장 큰 불행은 우리가 직면한 어려움들 중
어떤 것도 깔끔한 엔딩이 없다는 점이다.
<재벌집 막내아들>의 엔딩은 환상이라는 도구를 택해놓고도
환상이라는 기능은 전혀 이해하지 못한 방식이라 아쉬움이 클 수밖에 없다.
2023년 새로 다가오는 해에선
좋은 완결이라는 판타지를 마주할 수 있을까.
부디 그 어떤 판타지보다도,
환상적인 완결을 소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