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야진 작은집 청소를 하고 돌아왔다. 방명록에 어제 묵은 손님의 따님이 적어놓은 글을 보며 웃는다. 초등학교 3학년인데 지브리 팬이라서 더 좋았다는. 특히 어린이 손님이 이렇게 귀엽고 순수히게 남긴 방명록은 더 기쁘다. 단순히 펜션을 운영하는 것이 아니다. 또 하나 내 브랜드를 만들어 가는 과정에서 희열을 느낀다. 하루 2시간 넘는 청소와 관리는 힘들지만, 그만큼 손님들께 쾌적한 순간을 전해 드릴 수 있기에, 그것이 내가 만들고 싶은 ’아야진 작은집‘ 이기에, 허투로 할 수 없다.
청소하고 돌아와서 승리와 봄 브루스를 데리고 해풍 바다로 향한다. 가볍게 책도 읽고 사색도 하고 커피도 한잔 하러 간다. 캠핑은 승리 전문이니 나는 그냥 따를 뿐.
그렇지만 지난번 대진 해변에서 캠크닉 할 때,
드립백 커피 한잔 내려서 책을 읽던 그 순간,
바다로 부터 불어오는 바람과, 바다로 내려오는 햇살 아래, 그 행복한 기분을 잊을 수 없다. 그렇다. 나는 책을 읽으러 캠핑을 가는 것이다.
도서관에서 빌린 헤르만 헤세의 나무들을 챙긴다. 헤세의 문장은 부럽고 질투가 난다. 그렇지만 또 이런 글을 읽을 수 있음에 감사하다. 물을 한 병 챙긴다. 드립백과 혹시 몰라 손님들께 드리고 남은 스타벅스 스틱도 하나 챙긴다. 그런데 승리가 오늘은 카페에서 사 먹고 싶다고 한다. 나는 모래위에 물을 끓여서 내려 먹고 싶지만, 캠핑은 승리가 더 잘 아니까. 그냥 따를 뿐.
그런데 바보같이 맥주를 챙기지 않았다. 이렇게 따뜻한 햇살 아래 맥주 한캔은 또 하나의 행복인데, 물론 그것은 카페에서 커피 두잔을 사는 것 보다, 돈도 절약 된다는 계산도 있었다. 정기적인 월급이 없는 슬픔이여! 하지만 그건 내가 내 삶을, 꿈을 만들어 가는 과정에서 감내해야 할 것 뿐이다. 내게 단 하나의 사치는 맛있는 커피 한잔 이니까.
넉넉할 때는 와인 한잔의 여유가 있었지만, 지금은 커피 한잔의 여유도 감사할 뿐이다. 예전에는 솔직히 이런 내 모습이 싫었던 적도 많다. 흔한 말로 찌질해 보였다. 서글펐다. 와달라는 회사로 가면 남들 부럽지 않게 살 수 있는데, 나는 왜 매일 나를
자괴하고, 후회하며, 그러면서도 이 길을 가는 것일까. 가끔은 앞이 보이질 않는데.
답은 이미 나와 있다. 그게 나 니까. 내 꿈은 항상 내것을 만드는 것이었다. 하지만 용기도 경험도 없었다. 물론 대기업을 다녔다고, 스타트업을 다녔다고, 10년 회사 경험을 했다고, 생기는 것은 아니었다.
조금 더 높은 자리에,
조금 더 많은 연봉을,
조금 더 커리어를 쌓고,
나중에 내 일을 해야지.
제일기획을 떠나 스타트업에서 도전을 할 때 부터 항상 생각한 것이다. 결론은 나중은 없더라. 오직 지금 이 순간 뿐이다. 지금 이 순간 안하면 나중에도 못한다. 아니 영원히 못한다.
그리고 그 매번 지금 이 순간을 간신히 턱걸이해서 넘듯이 넘지만, 조금 씩, 0.1배정도 큰 도미노를 넘어 트리고 있다고 확신하며, 지금 이 순간을 넘어간다.
커피 한잔 사는것도 아끼면서 이제는 스스로 당당해진다. 내가 선택한 길이니까. 그리고 분명히 내 길에 대한 확신이 생기고 있다. 그래서 나는 어느 순간에도 당당하다.
아니,
당당해지고 싶다.
그렇게 나아가고 싶다.
아니,
나아가야 한다.
나아가야 산다.
#나혼자브랜드만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