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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블록군 Aug 12. 2019

12년만에 여행을 끝내러 갑니다.

어느새 12년이 흘렀다. 2007년 6월, 그때도 지금처럼 뜨거웠다. 하필 그런 무더위에 난 도보여행을 했다. 


아래 지도의 좌하단에 보이는 빨간선 (목포 - 담양) 은 바로 그 전 해인 2006년 여름에 걸었던 길이다. 제주도에서 태풍이 온다는 소식에 급하게 배를 타고 목포로 넘어왔다. 일주일중 절반이상은 폭우속을 걸었던 기억이 생생하다. 일주일 후 담양에 도착했는데, 일이 생겨서 급하게 올라와야 했다. 


그래서 원래 계획은 담양에서 시작해 고성의 통일전망대까지 가는 것이었다. '국토대장정'하면 대부분 떠올리는 코스다. 하지만 워낙 즉흥적인 성격인 나는 담양까지 버스를 타고 가는것이 너무 귀찮았다. 강원도를 가로 질러서 7번국도를 타고 내려가는길도 매력적이겠다는 생각이 갑자기 떠올랐다. 원주와 동해에 사시는 이모와 외삼촌의 집에서 자면 돈도 절약 할 수 있겠다는 현실적인 이유도 있었다. 하지만 가장 큰 이유는 그냥 버스를 오래 타고 내려가는게 너무 귀찮았던 것이다. 그리고 이 모든건 여행 당일 지하철을 타고 강남터미널로 가는길에 정해졌다.


여행 첫날 자정, 양평역 여행안내소에서 얻은 지도. 내 여행의 타임라인.


그렇게 우리나라를 'ㄱ' 자 모양으로 지나는 여행(이라고 쓰고 행군이라고 읽는다)을 시작했다. 다양한 만남과 예상치 못한 경험, 말도 안되게 아름다운 풍경은 큰 수확이었다. 물론 힘들었다. 사실 덕소역에서 첫걸음을 땐 순간 '내가 이 짓을 왜하고 있지?' 하는 후회가 물 밀듯이 찾아왔다. 그래도 계속 걷다보니 후회보다는 기대가 더 커졌던것 같다. 


6월 말쯤에 영덕에 도착했다. 그런데 그날 몸 상태가 너무 안 좋았다. 무식하게 땡볕에 마치 고난의 행군을 하듯 걷다보니 지친것도 있겠지만, 그런 상태를 더 넘었다. 국도를 걷다가 비틀거리며 가드레일을 붙잡고 걸을 정도 였다. 그동안 걸으면서 몇번의 위기가 있었지만 대부분 자고 일어나면 나아졌기 때문에 그날도 일단은 빨리 짐을 풀고 푹 쉴 생각이었다. 찜질방에가서 몸을 풀었다. 하지만 다음날도 마찬가지 였다. 집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했다. 한번도 그런 기분이 든적이 없었기 때문에 더 이상했다. 


일주일정도만 더 가면 부산 이었다. 당연히 몇일 더 휴식을 취한후에 떠날 생각이었다. 그런데 이상하게 올라가고 싶었다. 어떤 이유가 있는 것도 아니었다. 올라가야만 할 것 같은 기분이었다. 어쩌면 그동안 너무 지쳐버렸을지도 모르겠지만. 무엇에 이끌리듯 터미널에가서 동서울행 버스표를 끊었다. 날씨는 약간 흐렸다. 버스가 대전쯤 지날때부터 비가 거세게 내리기 시작했다. 기분이 더 이상해졌다. 비는 말 그대로 폭우로 변했다.  


지금도 난 연락이 잘 안되는 편인데, 그때는 더했다. 특히 삼척의 바닷가에서 쉬다가 핸드폰을 잃어버렸다. 그 이후로는 집에 연락도 안했다. 할려면 방법을 찾을 수 있겠지만 별 생각이 없었다. 동서울 터미널에 도착했다. 공중전화를 찾아서 어머니께 전화를 걸었다. 어머니께선 전화를 받자마자 목소리를 높였다. 예상치 못한 소식이 들렸다. "아들, 증조할머니께서 돌아가셨다. 내일이 발인인데 니가 안와서 다들 난리야..." 


증조할머니는 내가 어릴때 나를 맡아 키워주셨다. 그만큼 나에 대한 애정이 깊으셨다. 할머니 손을 잡고 시골길을 돌아다니던 기억이 선명하다. 이번 여행을 시작하기 전에 시골에 내려가서 인사를 드릴때는 이미 많이 기력이 없으셨다. 나를 바라보고만 계셨었다. 말도 제대로 하지 못하셨다. 하지만 그게 내가 본 마지막 할머니의 얼굴이 될거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 


비는 더 쏟아졌다. 고속터미널로 이동해서 서산행 버스를 탔다. 자정이 가까워서 장례식장에 도착했다. 관속에 할머니가 누워계셨다. 그 모습을 보는데 눈물은 하나도 나오지 않았다. 현실감이 없었다. 어둠을 지나 아침이 다가오자 난 할머니의 영정을 들었다. 다들 말하셨다. 할머니가 널 부른거라고. 




그리고 그 이후 12년동안 매년, 이건 끝을 봐야지를 되새김질 했다. 하지만 하지 않았다. 복합적인 이유가 있겠지만, 사서 고생을 또 할 필요가 있을까? 그거 해봤자 뭐하나? 라는 생각이 가장 컸던것 같다. 그냥 휴가땐 편하게 쉬는게 최곤데, 정말 말 그대로 사서 고생을 왜 해? 라는 생각의 연속. 하지만 계속해서 제대로 끝을 맺지 못한 아쉬움이 한편에 계속 자리잡고 있었다. 끝장을 보고 싶었다. 



이런 생각속 작은 불꽃에 기름을 부은건 이 책 이었다. 워낙 유명한 책이라 알고 있었지만 읽어본적은 없었다. 그런데 중고 책방에 갔다가 어떤 특별한 생각도 없이 구입했다. 그리고 이분의 '미친 여행(이라고 쓰고 고난의 행군이라 읽는다)'에 푹 빠졌다. 책을 덮자, 내 못 끝낸 도보여행을 끝내야 한다는 외침이 깊숙히서 들렸다. 이분의 여행과 비교하면 나는 그냥 여름 휴양지에서 쉬는 정도 아닌가.

 

10월 추석 연휴를 활용해 끝낼 계획을 세웠다. 1주일정도면 영덕에서 해운대까지 돌파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었다. 2주의 휴가를 사용해 1주는 아내가 원하는 상해, 나머지 1주는 내가 원하는 도보여행 끝내기 (물론 나혼자)의 계획이었다. 그렇게 먼저 상해로 향했다. 그리고 그곳에서 아내는 공황장애라는 갑작스런 적을 만났다. 결국 급히 서울로 돌아왔다. 나머지 9일은 집에서 그녀석을 상대하며 보냈다. 그때의 이야기 초반은 여기에서 만날 수 있다. 10편은 쓰기로 했는데 곧 이후 이야기도 시작하겠다. 


https://brunch.co.kr/@tinythought/11


이런 이유로 작년의 계획은 실행하지 못했다. 그러다 한달전 쯤, 8월15일 광복절 주가 눈에 들어왔다. 4일만 휴가를 쓰면 9일의 시간을 확보할 수 있었다. 게다가 한 여름이었다. 할거면 시원해진다음에 하라는 아내의 말은 귀등으로 들었다. 12년전도 여름의 뙤약볕이었으니까, 그때만큼은 아니더라도 여름이 지나기전에 끝내고 싶었다. 별다른 계획과 준비는 없었다. 그때처럼 무전여행의 성격도 아니라, 짐은 최대한 가볍게 가져갈 생각이었다. 


그러다 최근 나의 부족함으로 예상하지 못한 어려운 일들이 생겼다. 주말내내 정신을 내려놓고 나를 자책하며 보냈다. 어느정도 잘 꾸려가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모두 나의 착각이자 부족함이었다. 나의 솔직한 마음을 말하고 내가 할 수 있는 모든걸 하는게 먼저였다. 그리고 모든걸 되돌릴 순 없지만 내 마음을 솔직하게 전했다. 그리고 다행히 잘 정리가 됐다. 일정을 3일 버렸지만, 오늘의 대화가 그 3일은 만회할 정도로 소중했다. 이 힘으로 더 힘차게 걸을 수 있을것 같다. 


난 내일 아침 서울역에서 KTX를 타고 포항역으로, 포항역에서 동해선 기차를 타고 영덕역으로 갈 것이다. 그리고 그 길을 거꾸로 걸어서 다시 포항역근처에 내일 자정안에 도착할 것이다. 그 아름다운 동해안 7번 국도를 따라 바다를 왼쪽으로 보며 거꾸로 걸을 것이다. 다음맵으로 거리를 재보니 약 40km정도, 대략 10시간정도를 걸으면 된다. 첫날이라 특히 어려움이 예상된다. 원래 계획보다 줄어 6일정도 밖에 없지만 끝까지 가봐야지. 마음은 훨씬 가벼워졌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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