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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블록군 Nov 09. 2019

1년만에 동네 목욕탕에 가다

정겨운 그 곳,

"오빠~ 목욕탕 가자" 


토요일 아침 9시가 됐을까? 난 이미 봄이 산책을 시키고 와서 2층 거실에서 폼블럭으로 몸을 풀고 있었다. 우리 둘다 어제 401호 형님과 치맥을 거하게 했다. 아내는 새벽1시가 넘어서, 나는 영화를 보고 3시가 넘어서 잤다.


생각해보니 목욕탕에 가본게 언제인지 기억도 나지 않는다. 그렇게 생각도 없고, 또 동네 목욕탕은 한번 가봤던 기억을 떠올리면, 가격은 생각보다 비싸고, 시설은 그냥 어렸을때 기억 그대로 있는 동네 목욕탕 정도라 내키지 않았다. 차라리 갈거면 장승배기 역 근처에 있는 '장성 사우나' 를 가는게 나을텐데, 그곳까지 가기는 귀찮고, 게다가 난 어제 치맥을 하고 반신욕까지 이미 했다. 어제라고 하지만 시간으로 보면 6시간전. 


내가 계속 귀찮은 티를 내니 아내가 살짝 삐친것 같다. 침실로 내려가서 아내 옆에 누워서 살짝 애교를 부린다.

"고럼 고럼~ 우리 여보가 목욕탕 가고 싶다는데 가야지~~" 

"됐어, 안가~" 

몇번을 반복하다, 마지못한척 아내는 목욕탕 준비물을 챙긴다.  난 뭐 칫솔하나면 끝. 


그렇게 정말 오랜만에, 그것도 동네 목욕탕을 찾았다. 

목욕비는 성인은 6500원 이었다. 내 박제된 기억에 이런 동네 목욕탕은 4000원정도 였다. 

이후로는 대부분 찜질방이 있는 대형 사우나를 다녔으니까, 또 사우나의 목욕비도 7000원 수준인데, 시설에 비하면 너무 비싼거 아닌가. 라는 생각을 하며 계산을 했다. 


주인 아주머니는 나에겐 영수증과 입욕증이라고 적힌 작은 종이를 주신다. 신기하게 아내에게는 입욕증과 함께 수건을 같이 준다. 여탕에서 목욕을 하고 수건을 챙겨가는 경우가 많아서 그렇다고 한다. 


여탕은 2층, 남탕은 3층에 위치한다. 아내는 나보다 훨씬 오래 목욕탕을 즐길것이다. 난 길어봐야 4,50분 내외일테니, 끝나고 옆에 있는 카페에서 만나기로 약속을 했다. 남탕이라고 쓰인 출입문을 열고 들어간다. 신발장이 보인다. 눈앞에 바로 보이는 34번에 신발을 넣는다. 안에는 목욕탕 거실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평상이 있다. 평상위에 입욕증을 넣는 작은 나무함이 있다. 내 번호는 67번인데, 내가 벌써 오늘 67번째 손님인건가? 급 궁금해진다. 


신발장 키로 34번 옷장을 열고, 옷과 짐을 넣는다. 칫솔만 챙겨서 목욕탕안으로 들어간다. 목욕탕엔 5명이 각자의 시간을 보내고 있다. 온탕에는 세분이 계시다. 할아버지 한분은 열심히 서서 하는 샤워기 앞에서 비누칠을 하고 계신다. 50대로 보이는 아저씨 한분은 앉아서 하는 샤워기에서 열심히 때를 밀고 계신다. 오랜만에 왔지만 자연스럽게 서서하는 샤워기 앞에 자리를 잡는다. 뜨거운 물이 분무기처럼 뿜어 나온다. 아 좋다. 양치질을 하고 비누칠을 하고 몸을 씼는것으로 1차는 마무리. 그리고 바로 열탕으로 가서 발목만 담가본다. 열탕이라고 말하기 보단 온탕과 열탕 중간쯤 되는 온도라 들어갈만 하다. 들어가서 반신욕을 시작한다. 


정면으로 보이는 벽에 '우리 목욕탕의 물은 지하 200M 암반에서 끌어 올리는 약수' 라는 내용이 자랑스럽게 적혀있다. 진짜일까? 라고 살짝 의심을 해본다. 생각해보니 이곳에서 오래 사신분들은 다 이 동네를 '약수터' 라고 하신다. 버스 정류장 이름도 바로 앞에 있는 아파트 이름도 '약수 맨션' 이다. 지금은 어디에 약수터가 있는지 찾을수 없는게 아쉽다. 그래도 믿음이 간다. 다시 물을 보니 그렇게 맑을수 없다. 


반신욕을 할때는 배꼽 아래만 물에 잠기게 하는게 포인트다. 손을 꺼내서 합장 자세로 눈을 감고 가만히 있어본다. 1분만 이렇게 있는것도 쉽지 않다. 명상하듯 가만히 있는 연습을 한다. 눈을 감고 호흡에만 집중한다. 역시 쉽지 않다. 조용하다. 물트는 소리, 샤워기 소리, 이태리타월로 열심히 때를 미는 소리만 들린다. 장성사우나보다 시설은 아쉽지만 이런 조용함이 그 시설을 보충하고도 남는다. 대형 사우나는 아무래도 시끌벅적한 소리로 목욕탕 안이 가득찬다. 정신이 없어서 나도 모르게 급해진다. 그런데 이 작은 동네 목욕탕은 가만히 있으니 시간도 그대로 멈춘 기분이다. 그 순간이 좋다. 


어느정도 익숙해지자 머리부터 상체에 땀방울이 한송이 한송이 솟는다. 솟아오른 땀이 흐르기 시작한다. 알콜도 함께 빠져나가는 기분이다. 그래서 그런지 한결 머리가 맑아진다. 그대로 일어나 바로 옆에 있는 냉탕으로 옮긴다. 냉탕도 미치도록 차가운 정도는 아니다. 하지만 그래도 오래 있기는 쉽지 않을정도의 온도다. 잠수를 한후 목만 내놓고 앉아본다. 언제 몸이 뜨거웠는지 덜덜 떨리기 시작한다. 냉수욕을 즐기지만 역시 초반은 쉽지 않다. 약간 익숙해지니 버틸만하다. 풍경이 다채롭다.


40대로 보이는 아저씨가 목욕탕 의자에 앉아있고, 그 뒤에 백발의 할아버지가 등을 밀어주고 있다. 조용하다 보니 대화가 살짝살짝 들린다. "아빠 내가 나가면서 때밀이 계산할거니까 때 밀고 와요" 할아버지가 안보이게 어색한 웃음을 짓는다. 70대 노인과 40대 중년의 부자인데, 순간적으로 30대 아빠와 10대 아들로 보인다. 그 모습을 보다보니 난 언제 아버지와 목욕탕을 함께 왔는지 기억이 나질 않는다. 10살 무렵까지는 아버지 손에 이끌려서 목욕탕을 자주 찾았던것 같다. 하지만 중학생이 된 이후로는 한번도 없다. 언젠가 들었던 것 같다. 어머니께서 말씀하시기를 "니 아빠 소원이 너랑 목욕탕 가서 서로 등밀어 주는거야" 라고. 그 이후에 시골에 내려가면 목욕탕을 가야겠다 다짐을 했다. 하지만 매번 흐지부지됐다. 다툰적도 많고, 아버지의 모습을 이해를 못한적도 많다. 그래서 말한번 꺼내는것도 어려워졌다. 그런 생각이 떠올라서 그럴까. 중년 아들의 등을 정성스럽게 밀어주는 할아버지의 모습을 나도 모르게 계속 지켜본다. 냉탕의 차가움도 잠시 잊었다. 


눈을 감고 점점 차가워지는 몸의 온도를 느껴본다. 다시 주위가 조용해진다. 내가 나가자 열탕에 들어오신 아저씨가 일어나서 세신대로 간다. 때밀이 아저씨가 오셨다. 나는 목욕탕에서 세신을 해본적이 한번도 없다. 별로 하고 싶지도 않다. 그래서 매번 저렇게 세신하는 풍경을 보면 신기하다. 세신사는 손님이 눕자 수건으로 얼굴을 덮는다. 당연히 중요한 부위를 덮을줄 알았는데, 얼굴-정확하게는 코윗부분과 눈-을 덮는게 신기하다. 물론 그 장면을 관찰하듯 보는 내가 더 신기하다. 그리고 머리 마사지부터 시작한다. 


몸이 춥다. 다시 일어나서 열탕으로 들어가 반신욕을 한다. 이렇게 1세트가 끝났다. 이렇게 5세트를 하고 찬물로 씼으면 목욕은 끝이다. 덜덜 떨리는 몸을 끌고 뜨거운 물로 다시 하체만 담는다. 눈을 감고 호흡에 다시 집중한다. 여러가지 잡생각, 잔상이 머리를 채우다, 맑아지기를 반복한다. 몇분이 지났을까 차가웠던 상체에 다시 땀방울이 뜨겁게 솟는다. 200M 암반석에서 분출하는 암반수처럼 솟는다. 용암처럼 흐른다. 그 순간의 기분이 그렇게 좋을 수 없다. 오늘 아내말대로 목욕탕에 오기를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역시 아내말 들어서 손해보는것 없다. 


5세트 까지는 하지 못했다. 은근히 이 냉온탕 반복 패턴이 체력소모가 심하다. 오늘은 3세트만 하고 끝냈다. 마지막으로 냉수욕후에 냉샤워를 하고 밖으로 나왔다. 남탕에서만 보는 특유의 스킨을 손에 부워 볼에 친다. 나홀로 집에 케빈처럼 말이다. 그 쌔한 화학약품 냄새가 코끝을 톡톡 건드린다. 옷을 입고 짐을 챙겨서 나온다. 1년만의 목욕이 끝났다. 목욕탕에 올때는 추웠던 날씨가 그렇게 시원할 수 없다. 


이제 카페에 가서 아아한잔 하면서 아내를 기다려야지. 한 두시간은 더 기다려야 하겠지만. 그리고 오늘은 오랜만에 부모님께 전화좀 드려야겠다. 이렇게 썼으니 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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