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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블록군 Jan 20. 2020

[결정적 문장] #01
스티브 잡스 Steve Job

월터 아이작슨 저 / 안진환 옮김 / 민음사 펴냄

워낙 유명한 책인데 스티브 잡스에 대해서는 너무 많이 알려져 있기 때문에 뻔한 내용이겠지 라는 생각으로 외면 했었다. 사실대로 말하자면 그것보다 책의 두께가 상당한게 가장 큰 이유였다. 그러다 알라딘 중고서점에 들렀다가 약간 작은 사이즈로 나와있는걸 보고 그냥 구입했다. 책이 예뻤다. 가볍게 몇 페이지만 읽어볼 생각으로 펼쳤다. 끝까지 읽었다. 새벽을 지나 아침이 오고 있었다. 


읽고 나니 월터 아이작슨이 왜 현존하는 최고의 전기 작가중에 한명인지 알 것 같았다. 그 까다로운 스티브잡스가 자신의 전기를 부탁했을정도이니 말할것도 없을테지만. 책을 읽으며 입양됐다는 사실이 그에게 미쳤을 정신적인 혼란에 공감이 가기도 하고, 때론 사람들을 말도 안되게 막 대하는 모습에 마치 내가 그 사람이 된 양 어이가 없고 화가나기도 했다. 하지만 대부분은 그의 브랜드에 대한 소명과 열정, 생각하는 가치에 대해선 절대 타협하지 않는 자세등에 대한 놀라움이었다. 그리고 마지막 죽음을 맞는 그의 모습에서는 눈물이 흘렀다. 결국 그도 사람이었다.

초반의 나와 같은 생각으로 아직 읽지 않았다면 꼭 한번 읽어보기를 권한다. 이 책에서 내 마음대로 선정한 결정적 문장은 아래와 같다. 


#결정적 문장 03

"내 목소리를 사용할 경우, 사람들이 그게 내 목소리인 걸 알고나면 결국 나에 대한 광고라고 느낄 겁니다. 그래선 안 됩니다. 이건 애플의 광고니까요." (P. 614)

잡스가 다시 애플로 돌아온후, 제작한 전설적인 광고에 대한 내용이다. 그때 잡스는 리 클라우 (광고 에이전시 TBWA 대표)와 함께 애플의 가치를 다시 제고할 브랜딩 광고를 제작하고 있었다. 에이전시에서 내놓은 카피는 'Think different' 그리고 그에 맞는 영상으로 세상을 바꾼 미친 사람들을 보여주는 것이었다. 대부분은 잡스가 존경해 온 영웅이었다. 기꺼이 모험을 감수하고 실패에 굴하지 않으며 남과 다른 방식으로 새로운 것을 시도한 창의적인 인물들. 이 인물들의 흑백 사진이 흐르며 나레이션이 흐른다. '미친자들을 위해 축배를..' 로 시작하는 이제는 애플의 1984 광고와 함께 전설이 된 그 광고다. 이때 클라우는 잡스가 직접 녹음하면 좋을것 같다는 아이디어를 냈다. 이 내용은 잡스와 연관된 스토리로 재미있게 읽었던 '미치도록 심플' (저자 Ken Segall은 TBWA 소속으로 이때 애플의 광고제작에 참여한다.)에서도 읽었던 기억이 난다. 잡스는 녹음을 하기는 했지만, 마지막에 자신의 목소리가 나가는 것은 아니라고 판단했다. 그러면서 위와 같이 말한다. 이 별 말이 아닐 수도 있는 잡스의 말이 나에겐 큰 울림이었다. 우리나라의 대부분의 창업가(특히 재벌)는 회사가 자기것이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자신이 만들었으니 당연하지 않은가? 라고 생각한다. 잡스의 애플에 대한 애정은 그보다 크면 컸을것이다. 물론 마케팅적인 이유에서도 잡스의 목소리를 사용하는게 좋았을것 같다. 하지만 잡스의 말대로 장기적으로 보면 오히려 그건 혼란을 키울수 있었다. 그는 애플이란 브랜드를 더 사랑한것이다. 난 이 한 문장이 창업가가 꼭 들어야 할 말이 아닐까 싶다. 


#결정적 문장 02

내 열정의 대상은 사람들이 동기에 충만해 위대한 제품을 만드는 영속적인 회사를 구축하는 것이었다. 그 밖의 다른 것은 모두 2순위였다. 물론 이윤을 내는 것도 좋았다. 그래야 위대한 제품을 만들 수 있었으니까. 하지만 이윤이 아니라 제품이 최고의 동기부여였다. 스컬리는 이러한 우선순위를 뒤집어 돈 버는 것을 목표로 삼았다. 미세한 차이지만 그것이 결국에는 어떤 사람들을 고용하는가, 누구를 승진시키는가, 미팅에서 무엇을 논의하는가 등등 모든 것을 결정한다.. (P. 1043)

잡스가 삶을 되돌아 보며 남긴 글의 첫 문장이다. '제품이 최고의 동기부여였다.' 이 한마디가 잡스의 가치를 그대로 보여준다. 스컬리는 인격적,사회적인 관점에서 보자면 잡스보다 더 좋은 사람이었을것 같다. 펩시의 CEO로 펩시의 가치를 키웠으니 경영능력은 얼마나 뛰어났을까. 하지만 역설적으로 이런 그의 능력이 애플같이 제품에 모든것을 걸어야 하는 브랜드와는 맞지 않았을 것 같다. '해군이 되기보단 해적이 되라'는 잡스의 말을 빌리자면 스컬리는 해군에 어울리는 사람이지 않을까. 무엇보다 잡스처럼 말하기는 쉽지만 제품이란 가치가 최고다라는 철학을 어떤 상황에서도 포기하지 않을 수 있을까. 아니 꼭 이런 철학이 아니라도 자신이 생각한 철학을 이렇게 죽는 날까지 밀고 갈 수 있을까. 많은 생각을 심어준 문장이다. 


#결정적 문장 01

우선 아래 문장은 길다. 끊을 수가 없었다. 

잡스는 여동생 모나 심프슨에게 전화를 걸어 팰러앨토로 급히 와 달라고 말했다. 그녀는 추도사에서 이 순간을 이렇게 회상했다. "오빠의 억양에는 다정하고 간절한 애정이 담겨 있었지만 이미 여행 가방을 차에 다 실어 놓은 것 같았고, 이미 자신의 여정에 오른 것 같았습니다. 우리를 두고 떠나는 것에 대해 미안해하고, 진정으로 깊이 애석해했지만 말입니다." 잡스는 동생에게 작별 인사를 건네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녀는 택시에 올라 공항으로 향하고 있으니 곧 그곳에 도착할 거라고 말했다. "지금 작별 인사를 하는 건 혹시 네가 제때에 도착하지 못할까 봐 걱정돼서야" 잡스는 그렇게 답했다. 잡스의 딸 리사는 뉴욕에서 비행기를 타고 날아왔다. 지난 몇 년간 평탄치 않은 관계였찌만 리사는 언제나 좋은 딸이 되기 위해 노력했고, 실제로 그녀는 좋은 딸이었다. 잡스의 또 다른 여동생 패티도 그곳에 도착했다. 

그렇게 임종을 지키기 위해 깊은 애정으로 가득 찬 가족들이 스티브 잡스를 에워쌌다. 스스로도 종종 인정했듯이 잡스는 늘 가정적인 사람이었다고 할 수 는 없었다. 그러나 어떤 판단이든 결과를 고려해야 한다. 그는 기업의 리더로서 직원들에게 요구가 많았고 때로 신경질적이기도 했지만 그를 진심으로 따르며 그에게 광적으로 충성하는 팀을 구축했다. 마찬가지로 가장으로서 퉁명스럽고 때로 다른것에 마음을 빼앗겨 다정하게 대하지 못했지만 그는 잘 키운 네 명의 자녀를 두었고 그들 모두가 임종의 순간에 사랑으로 그를 에워쌌다. 그 화요일 오후, 잡스는 내내 자녀들의 눈을 놓치지 않으려고 애썼다. 그러던 어느 순간, 그는 패티와 자녀들을 오랫동안 응시하다가 다시 로렌에게 눈길을 돌린 후 마침애 그들을 지나쳐 먼 곳을 응시했다. "오 와우. 오 와우. 오 와우."

이 세 마디 감탄사를 마지막으로 내뱉고 그는 오후 2시경 무의식 속으로 침잠했다. 숨이 점차 거칠어졌다. "그 순간조차 오빠는 근엄하면서도 잘생긴 용모를 뽐냈습니다. 절대론자이면서도 낭만적인 인물의 용모를요. 오빠의 숨소리가 고된 여정을, 어떤 가파른 고지를 향한 행로를 나타내는 것 같았습니다." 모나 심프슨의 회상이다.그녀와 로렌은 밤새 잡스의 곁을 지켰다. 다음 날, 그러니까 2011년 10월 5일, 스티브 잡스는 숨을 거두었다. 가족들이 둘러서서 보듬고 쓰다듬는 가운데.  
(P. 1053-1054)

잡스가 삶의 최고의 발명품이라고 말한 '죽음'으로 들어간다. 아무리 최고의 발명품이라지만 누구도 경험하고 싶지 않은. 이 장을 읽다가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났다. 어렵게 찾은 친 동생(모나 심프슨은 그의 친부-친모의 딸)에게 전화를 걸어서 "지금 작별 인사를 하는 건 혹시 네가 제때에 도착하지 못할까 봐 걱정돼서야" 라고 말하는 잡스의 어투가 익히 알고 있는 모습이 아니라 더 슬펐다. 그도 그냥 사람이라는 생각에 더 슬펐다. 아이작슨이 담담하게 적어간 잡스의 마지막 순간이, 그가 마지막 힘을 내  "오 와우. 오 와우. 오 와우." 라고 말을 하고 떠난 순간이, 그 여운이 생각 보다 길었다. 



역사에 만약은 없다고 하지만 그가 제때 치료를 받았더라면, 그래서 더 오래 살 수 있었더라면, 또 어떤 변화를, 지금의 애플과는 어떻게 다른 브랜드와 제품을 만들었을까? 내 머리로는 상상이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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