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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블록군 Jan 04. 2020

10. 공황 이후 100일간 아내의 일기

아내는 일기를 쓴다. 짧게 길게, 물론 중간에 많이 빼먹기도 한다. 그중에서 공황과 함께 느꼈던 내용을 간단하게 정리해본다. 공황이 온 이후 약 100일간의 일기다. 


2018. 10. 1 

상태 : 경미한 발작 

비행기를 타는데 피가 올라갔다 내려갔다. 가슴이 심하게 뛰고 비행기에 내려서도 무서웠다. 


2018. 10. 2 

상태 : 최악의 발작

호텔로 이동하기 위해 지하철을 탔다. 순간 숨이 막힐 정도로 심장이 뛰고, 손발이 떨리고 미칠것 같았다. 얼른 내려서 밖으로 나오니 괜찮아졌다. 호텔에 도착해 엘레베이터를 타면서 극심한 공포를 느꼈다. 또 그날 호텔에서 잠들지 못하고 지하철때와 같은 증상을 경험했다. 


2018. 10. 3

상태 : 경미한 발작 

오후까지 경미하게 가슴이 두근거렸지만 괜찮았다. 날씨도 화창하고 따뜻해서 좋았다. 밤 10시쯤 잠들었는데 새벽에 깨어 잠을 이루지 못했다. 비슷한 발작이 다시 올것 같은 두려움이 커졌다. 


2018. 10. 4 

상태 : 최악의 발작 

공항으로 가는 택시안에서도 미칠것 같은 경험을 했다. 공항안에서도 나갈 수 없다는 두려움에 빠졌다. 수면제를 먹었지만 소용 없었다. 비행기를 타러갔는데 작은 비행기였다. 눈물이 심하게 나면서 도저히 못탈것 같았다. 큰 비행기로 바꿨는데 뒷자리에 앉았다가 시야가 막혀있는 앞자리로 옮겼다. 두시간 내내 최악의 공황을 경험했다. 집에가는 아빠차 안에서도 가슴이 조여오는 기분을 느꼈다. 


2018. 10. 5 

상태 : 경미한 증세 

자고 일어나서 비가 내리는 모습을 보고 가슴이 두근거렸다. 무작정 오빠와 밖으로 나갔다. 병원까지 걸어가서 병원에서 2시간 가량 기다리는데 미치는것 같았다. 병원에서 처방해준 약을 먹었다. 


<약을 먹은 후의 느낌> 

- 머리가 멍함 

- 가끔 체한것 같은 느낌 

- 머리가 맑아짐

- 잘 깜빡함 

- 하품이 많이남

- 식욕이 없음

- 쉽게 더웠다 추웠다 함 


2018. 10. 6 

상태 : 발작 

새벽에 공황이 왔다. 이번엔 몸살 감기처럼 온몸이 춥고 사지가 덜덜 떨렸다. 숨은 막히지 않아서 그래도 조금 괜찮았다. 약을 먹고도 미약하게 드문드문 가슴이 두근거리고 속이 미식거렸다. 머리가 멍하다 맑아졌다. 어지러웠다. 


2018. 10. 7 

밥을 먹는데 불안 증세가 왔다. 가슴이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증상은 많이 나아졌다. 


2018. 10. 8 

하품이 많이 나온다. 밖으로 나가 시장에 다녀왔는데 가슴이 두근거렸다. 저녁을 먹고 신서유기를 보고 있는데 경미한 발작증세가 왔다. 그래도 책을 읽으며 공황장애에 대해서 공부를 하니 불안함이 점점 사라졌다. 


2018. 10. 9

비가 온다는 예보를 보고 불안해졌다. 왜 불안한지 모르겠지만 지난주에 집으로 돌아온 다음날의 기억때문인것 같다. 졸려서 낮잠을 잤다. 식욕이 없고 계속 체한 느낌이다. 


2018. 10. 10

지난주에 동네 병원에서 받은 약을 줄이고 싶다. 마침 내일이 중대병원 예약일이니 가서 물어봐야겠다. 


2018. 10. 11

약에 대한 충분한 설명을 듣고 새로운 약으로 바꿨다. 약이 잘 맞는지 가슴 두근거림이 사라졌다. 


2018. 10. 12 

증상 없음


2018. 10. 13 

증상 없음


2018. 10. 14 

입맛이 돌아왔다. 오랜만에 샤브샤브를 먹었다. 행복하다. 


2019. 1. 9 

아침에 일어나서 청소를 하고 강아지 산책후에 병원에 다녀왔다. 상담은 짧게 끝냈다. 약도 반알로 줄이기로 했다. 얼른 약을 끝내고 싶다. 


2019. 1. 10

빨리 약을 끊고 싶은 마음에 당장 약을 반알로 줄였다. 처음에는 괜찮은 듯했다. 하지만 불안하고 초조하고 가슴이 뛰는 기분이 시작됐다. 결국 4시에 약 한알을 먹었다. 당분간은 아침엔 한알, 저녁엔 반알을 먹어야 겠다. 


2019. 1. 11

무의식적으로 일어나지도 않을 무언가를 재앙화하고 있다. 수업시간에 배운것처럼 반듯하게 교정할 필요가 있다. 


2019. 1. 12

미세먼지가 너무 심해서 주말이지만 집에 있었다. 하루종일 아무것도 하기싫은 무기력감으로 둘러쌓였다. 이완훈련을 하고 낮잠을 잤는데 6시까지 자버렸다. 


2019. 1. 14

선생님께서 약을 줄일때 어떤날엔 약을 먹지않고 지나가 보라고 하셨다. 그래서 오전에는 약을 먹지 않았다. 하루종일 두통에 시달렸다. 미세먼지의 영향인지 약의 금단증상인지는 잘 모르겠다. 그래도 별다른 공황증상은 없었다. 다행이다. 샤워를 하면서 문득 어두운 마음이 들길래 행복했던 기억을 떠올렸다. 지나간 과거에서 행복한 기억이 많다는건 정말 감사할 일이다. 


2019. 1. 23 

점점 그 느낌이 다시금 살아나고 있다. 일상의 행복, 잔잔한 기쁨, 여유, 감사 그리고 매사에 느꼈던 따뜻함. 하루를 가득 채워나가고 있다. 10월말에 공황장애 약을 시작했을땐, 스스로 위험하다고 느낄 정도로 우울하고 불안했을때가 있었다. 그래도 꿋꿋하게 걷다보면 지금의 찬란한 기분을 다시 느낄 수 있다는 사실이 안도감을 준다. 인생은 길고 별일이 다 있지만 결국 또 좋아진다. 


2019. 1. 26

이제 그만 동네를 벗어나고 싶다. 사실 마음만 먹으면 혼자 버스타고 어디든 갈 수 있다. 그런데 뭔가에 갇힌 기분이다. 나를 구속하는 것은 아무것도 없는데, 비행기를 못 탄다는 심리적 압박이 크다. 올해는 국내 여행을 재밌게 해야지!! 


2019. 2. 3 

오늘 비가 왔다. 작년 10월 그날, 비소리에 안절부절 못하고 가슴이 뛰고 미칠것 같던 일이 꿈만 같다 (마치 지나간 악몽같은) 오늘은 원래 내가 그랬듯 비를 온전히 즐겼다. 그래도 이렇게 상태가 좋아진걸 느끼니 기분이 좋다.


2019. 2. 20

병원에 다녀왔다. 약물치료는 3월까지만 하면 끝인줄 알았는데 올해 말까지는 해야 한다고 한다. 여러가지 생각들로 마음이 복잡하다. 나를 어렴풋하게 기억한다. 아침에 일어났을때 그 기쁜 느낌, 하루를 시작하며 소소한 행복을 즐기는 감정. 길게 늘어진 햇살을 보며 벅찬 감동 그리고 감사. 나는 평범한 일상을 반짝반짝하게 즐기는 사람이었다. 그런데 아무런 기대감이 없고 무기력하고 멍하고 낮잠만 자게 되는 요즘의 나. 이게 변한 나일까. 약 때문일까? 술을 먹고 깜빡잊고 약을 먹지 않았다. 새벽에 심장이 너무 뛰어서 일어났다. 놀랐다. 1년동안 약을 계속 먹고 다음 1년동안은 약을 끊은 후의 부작용을 견디면서 지내야 한다. 왜 공황장애가 생겼는지 이유를 알고 싶다. 그래야 정리가 될 것 같다. 


2019. 2. 27

최근에는 계속 상태가 좋다. 다시 주변이 반짝 반짝 빛난다. 나는 이 느낌을 그리워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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