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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블록군 Jan 27. 2020

[카페 스케치] 에스프레소가 아쉬운 아침 10시 이디야

1월 27일 아침 10시 카페 이디야 

나에겐 상관 없지만 오늘은 설 연휴 마지막날이다. 비 자발적이긴 했지만 연 이틀 새벽 5시에 일어나서 하루를 시작했다. 설 연휴에 시골집에 내려갔다 올라오기 위해서 였다. 덕분에 귀성, 귀경길 모두 오히려 평소보다도 빠르게 내려갔다 올라올 수 있었다. 운전할때 차가 끝없이 이어지는 풍경만큼 힘든것도 없다. 중노동이 따로 없다. 그런데 이른 시간에 이동을 하니 아주 편하게 운전할 수 있었다. 운전할 맛이 난다고나 할까. 물론 익숙하지 않은 새벽 기상에 아점쯤 되니 피로가 쓰나미처럼 몰려왔다. 그래도 낮잠을 30분 자고 찬물로 세수하니 정신이 다시 맑아졌다. 평소에도 낮잠을 자기때문에 나에겐 좋은 경험이었다. 특히 지금의 나에겐 하루 24시간이 너무 소중하다. 그만큼 새벽5시 기상은 이틀이긴 했지만 그 경험의 가치가 굉장히 컸다. 


그래서 오늘도 해보기로 했다. 알람은 그제부터 5시로 맞춰져 있었다. 오늘도 알람은 늦는법 없이 그 시간에 맞춰 울렸다. 나도 이틀뿐이었지만 반사적으로 일어났다. 하지만 그게 끝이었다. 난 알람을 끄고 다시 누웠다. 5분만, 5분만, 하다가 정적이 흐른다. 


다시 눈을 뜨니 8시였다. 정신은 아직 몽롱하다. 일단 냉수를 한잔 들이키고, 화장실에 가서 볼일을 보고 기합을 한번 넣고 바로 찬물로 샤워를 시작했다. 온몸의 세포가 비명을 지른다. 세수를 하나 샤워를 하나 비슷한 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그냥 샤워가 편하다. 짧은 냉샤워를 하고나니 이제야 잠이 깬다. 이렇게 5시 기상은 실패로 돌아갔다. 


그렇다고 하루가 끝난것도 아니다. 이제 시작일뿐이다. 다시 집중도를 높일 필요가 있다. 카모마일 차를 한잔 마셨다. 2층의 작업실로 올라갔다. 어제 정리하던 글을 마져 쓸 계획이다. 그런데 또 이럴때마다 집중이 제대로 안된다. 지난주에 산 스티브잡스 영문판을 뒤적인다. 한글판을 펴서 같이 본다. 분명히 독서는 나쁘지 않지만, 지금 내 목표에는 어긋난다. 역시 아무리 집을 작업실처럼, 카페처럼 꾸며놔도 안된다. 이러단 죽도 밥도 안되겠다 싶다. 바로 옷을 갈아입고, 맥부과 노트,펜만 챙겨서 나섰다. 


아침에 주로 가는 더 카페에 갈 생각이었다. 그런데 사실 더 카페는 커피가 맛이 없다. 미안하지만 사실이다. 그런데 또 내 지정석이라고 할 수 있는 창가쪽 자리는 집중이 또 굉장히 잘 된다. 사장님과도 친해서 원래 난 작은 카페에선 2시간 30분 마다 한잔씩 시키는데 그곳에선 4,5시간도 그냥 있곤 한다. 물론 지금 내 위 상태가 좋지 않아서 커피를 안 마신지 일주일 정도 됐다. 그래서 주로 차를 마시긴 하지만, 오늘은 커피가 끌린다. 


집을 나오자 방향을 놓고 고민했다. 가장 가깝고 무난한 더 카페를 갈까? 아니면 좀 더 걸어서 상도역쪽으로 나가서 브라운 커피나 아예 숭실대까지 가서 스타벅스를 갈까? 어차피 점심때는 들어와야 하니까 상도역까지 나가는건 제외하고 고민했다. 그러다가 상도동 커피를 오랜만에 가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 집에서 거리는 상도동 커피나 더 카페나 비슷하다. 흔한말로 엎어지면 코 닿을 거리랄까. 상도동 커피에 갔다. 그런데 연휴라서 11시에 연다는 안내문이 붙어있었다. 더 올라가서 장승배기로 내려가는 길에 있는 카페를 갈까. 또 고민한다. 행복한 고민인가. 그냥 더 카페로 가자. 다시 걸음을 돌린다. 그런데 마지막에 더 카페로 들어가는 골목길로 향하는 건널목에 위치한 이디야가 눈에 보였다. 이곳도 가끔 아침에 집중할때 찾던 곳이다. 커피 자체는 더 카페보다 낫다. 집중도 괜찮다. 그냥 그렇게 이디야로 들어왔다. 


카페 안에는 14개의 테이블이 있다. 테이블과 의자만 보면 조금 답답하다. 이디야의 특징이기도 하지만 그점이 약간은 아쉽다. 그래도 휴일 아침이라 그런지 손님은 딱 두분만 계셨다. 구석쪽에서 앉아서 중년의 여성 두분은 열심히 성경공부를 하고 계신다. 흡사 수험생과도 같다. 저 모습만 보면 교회를 가볼까. 하는 관심이 들 정도다. 아 그러고 보니 두 교황을 보고 성당을 가볼까. 라고 진지하게 고민했었는데. 역시 난 믿음과는 거리가 멀다. 손님이 별로 없어서 나에게 아주 좋은 상황이었다. 이곳에 오면 항상 잡는 창밖에 넓게 조망되는 자리를 잡았다. 주문하러 계산대로 향했다. 바리스타는 여자분이신데 표정이 어두웠다. 순간 아쉬움이 들었다. 마음속으로 에스프레소는 시키면 안되겠네. 라고 머리가 먼저 말했다. 가끔 올때 (그땐 주말이었던것 같다) 아침에 계신 남자 바리스타분은 그 포스에서 부터 커피를 정말 잘 하겠다는 어떤 믿음이 들었다. 내가 커피를 잘 안다고 할 수는 없지만 에스프레소의 맛도 '어 이게 이디야에서?' 라고 놀랄정도로 좋았다. 그때문에 주말엔 이곳을 찾곤 했다. 다른 메뉴보다도 에스프레소는 특히 바리스타의 실력이 중요한 것 같다. 



레드 카모마일을 주문해야지라고 생각하고 입을 열었다. 그런데 내입에서 나온 말은 '에스프레소 한잔 주세요' .내 생각이 틀릴 수도 있다고 생각했나. 나도 모르겠다. 아직 위 상태가 커피를 마시긴 그랬지만, 그냥 한잔 마시고 싶었을지도. 반신반의 상태로 기다렸다. 노트를 펴서 아침 일기를 쓰면서. 에스프레소가 나왔다. 


컵이 차다. 에스프레소 한입을 마셨다. 커피향은 좋다. 그런데 미지근하다. 아.. 안타깝다. 설상가상으로 위도 역시 잘 받질 않았다. 고개를 들어 바리스타를 봤다. 앉아계셨다. 표정에 아무런 느낌이 없다. 저분도 이 휴일에 이렇게 아침부터 일하려면 힘드시겠지. 그래도 아쉽다. 밝은 표정으로 인사를 하고 즐겁게 커피 한잔을 내리는 모습을 기대했는데, 그런 커피는 이상하게 더 맛있는데, 그런것을 기대했는데. 아쉽다. 


그런 아쉬움은 뒤로했다. 어쨌던 이곳에 온 가장 중요한 목적은 오전에 할 일을 집중해서 끝내는 것이니 말이다. 노트를 펴서 이 순간을 정리하면서 오늘 하루를 시작한다. 얼음물은 한모금 입에 문다. 


얼음이 참 맛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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