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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블록군 Apr 25. 2020

03.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돌아가는 수밖엔.

그리고 그땐 몰랐다. 그 선택이 천운이었던것을.

돌아다닐 준비를 마치고 호텔문을 나섰다.  

우선 근처에 있는 약국에 들렀다.  

장모님께서 보내주신 카톡 내용을 보여주고 약을 받았다. 

성분에 대한 믿음은 둘째로 하고 아내는 일단 약이 있다는 생각에 안정이 된 것 같았다.  

그리고 아내가 준비했던 여행계획에 따라 잠시 멈췄던 일정을 재개했다.  


첫번째 목적지는 헝산루라는 곳이었다.  

아내가 여행 전부터 동방명주 다음으로 꼭 가봐야 할 곳이라고 강조했던 곳이었다.  

그전에 한식이 먹고 싶다는 아내말에 한국인이 하는 한식 체인점을 찾았다. 

헝산루와 멀지 않은곳이었다. 우선 그곳으로 이동하기로 했다.  

지하철을 아직 타는건 위험해서 택시를 탔다.  


정확한 지명은 기억이 나질 않지만, 번화가 중심에 내렸다.  

그날은 국경절 삼일째답게 말 그대로 인산인해였다. 

위치를 잘못 판단해 한식 체인점과 너무 먼곳에 내린 뒤, 나는 나는 별 생각 없이 아내를 데리고 계속 걸었다.  그때부터였을까. 아내의 안색이 좋지 않았다. 

 

그때 아내가 말했다.  

“오빠, 나 여기 빨리 벗어나고 싶다.. 사람이 많으니까 왠지 모르게 너무 불안해..”  


한식집은 접어두고. 급히 택시를 잡아 우선 헝산루로 향했다. 

헝산루는 훨씬 한적한 느낌이었다.  

작은 카페나 느낌있는 작은 레스토랑이 많은 곳이라고 한다.  

카페를 찾아다니는걸 좋아하는 내 취향을 고려해서 아내는 오늘 하루를 온전히 헝산루에서 보내는데 계획했다.  


택시에서 내렸다.  

“휴.. 이제 살것 같아.. 아까는 사람이 많아서 그런지 다시 심장이 미치게 뛰더라구..” 

걱정스럽게 쳐다보는 나를 보며 아내가 먼저 말했다.  

“여기 오니까 진짜 살것 같아.. 오빠 우선 밥 먹으러 가자.. 괜찮아지니까 배고프다.”  


그렇게 밤까지는 아무 문제 없는 즐거운 여행 그대로를 즐겼다.  

맛있는 식사와 달콤한 커피, 느낌있는 카페와 고풍스러운 거리.. 모든게 완벽했다.  

밤이 깊어 호텔에 돌아왔다. 수영장에 가서 가볍게 수영을 하며 머리를 식혔다.  

방으로 돌아오니 아내는 신서유기를 보고 있었다.  

아무런 문제가 없어보였다.  

난 책상에 앉아서 지도와 여행책을 펴고 오늘 여행을 정리하고, 내일을 준비했다.  


11시 반쯤이 지나자 창밖으로 보이던 높은 빌딩의 화려한 불빛이 꺼지기 시작했다.  

난 계속 책상에 앉아서 정리를 하고 있었다. 그런데 아내가 쉽게 잠에 들지 못했다.  

잠에 들려고 10분정도 누워있다가 안되겠다는 듯 몸을 뒤척였다.  

평소 잠에 들때 듣던 오디오북을 들으며 다시 잠에 들려고 시도하다가 또 실패했다. 

이런 상황이 계속 반복됐다. 어느새 새벽 2시가 넘었다.  

옆에 누워서 아내를 다독이다 나도 모르게 잠에 들었다.  


“오빠.. 오빠.. 미안한데 일어나볼래?, 나 몸 상태가 또 안좋아... 너무 힘들어...” 

놀라서 눈을 떴다. 4시 반.  

“뭐야, 계속 못 잔거야? 일단 내려갈까?”  

“응..” 아내는 이미 울고 있었다. 안색이 어떻게 표현하기 힘들정도였다.  


어제보다 상황이 훨씬 심각했다.  

약을 먹었지만 아무 소용이 없었다.  

호텔로 돌아올때만해도 문제가 없어졌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다.  

사실 난 끝까지 그 결정만은 아니길 이기적으로 바랬다.
 

하지만 어쩔수가 없다는 판단이 됐다.  

빨리 귀국하는것밖에 답이 없었다.  


여행사 사이트에 들어가서 일단 돌아가는 일정을 변경했다.  

위약금이 항공권의 절반 금액이었다.  

호텔은 이미 특가로 예약이 된거라 취소가 불가능 했다.  


아내도 그러면서도 너무 미안해 했다.  

“오빠 아침이 되면 같이 내려가 보자. 어제도 그랬으니까. 괜찮을지 몰라”  

“아냐.. 힘들면 그냥 돌아가자. 난 괜찮아..”  

라고 말을 하면서도 난 은근히 어제와 같은 상황이 되길 기대했다.  


아침 7시쯤 해가 떠오르자 우린 로비로 내려갔다. 

어제의 햇살이 밝게 내리던 아침과는 완전 극과극의 날씨였다.  

저기압의 최전선이었다. 로비를 나서자마자 거센 바람이 몰아쳤다. 

날씨 예보는 태풍. 아내는 바로 사색이 됐다.  

“오빠.. 안되겠다.. 너무 불안해.. 미안해. 돌아가자.” 


11시쯤 호텔에서 택시를 타고 공항으로 향했다. 

이제는 택시 안에서도 아내의 상태가 좋지 않았다. 

문제는 내가 할 수 있는게 아무것도 없다는 것이었다.  

아내는 눈을 감고 심호흡을 고르고 있었다.  

공항에 도착하기까지 한시간정도의 시간이 잔잔한 태풍 같았다.  


어쨌든 공항에 도착했다. 공항은 말그대로 인산인해였다. 

항공사에 가서 수속을 한후에 서브웨이에서 샌드위치를 샀다.  

안에서 있을수 없어서 밖으로 나가서 공항으로 들어오는 초입쪽에 자리를 잡았다. 

아내의 얼굴은 정말 말로 표현하기 힘들정도로 안쓰러웠다.
 

밤새 잠도 못잔데다 계속 울어 눈은 퉁퉁 부어있었다.  

연신 굉음을 내며 비행기가 떠오르는 풍경이 예술과도 같았다.  

그 모습을 보며 아내가 말했다.  

“비행기는 저렇게 멋지고 우아한데 난 저게 왜이렇게 무서울까..”  

아내는 계속 울었다.  

그렇다 가장 큰 문제가 남아있었다.  

2시간동안 비행기를 타야한다는 것.  


공항안으로 들어와 일단 약국으로 향했다.  

정말 싫었지만 수면유도제를 구입했다.  

그리고 입국장으로 들어섰다.  


셔틀버스가 도착했다. 순간 의아했다.  

동방항공은 우리나라로 치면 대한한공이나 아시아나 항공쯤이 아닌가.  

올때도 큰 비행기를 타고 왔는데.. 설마..  

마음속에서 표현은 하지 않았지만 긴장감이 흘렀다.  

셔틀버스는 승객을 태우고 화창한 활주로를 천천히 달리기 시작했다.  


어느순간 아내도 뭔가 이상하다는 느낌을 감지했다. 

버스 창밖으로 작은 비행기가 보였다.  

“오빠.. 저건 아니지?…” 내 손을 잡은 아내 손이 덜덜 떨렸다. 

“에이.. 아냐..” 내 목소리도 떨렸다.  

우리 말을 비웃기라도 하듯 버스는 그 비행기 앞에 멈췄다.  


승객들은 버스를 내려서 가벼운 발걸음으로 비행기에 오르기 시작했다. 

아내는 나에게 안겨서 울기 시작했다.  

어떻게 멈출수가 없었다. 어떻게 할수가 없었다. 

모든 승객이 오를때까지 아내는 그렇게 울고 있었다. 

내 심장도 터질듯 미칠듯이 뛰었다.  

“아냐, 여보.. 우리 이거 안탈거야, 걱정하지마.”  

아내를 달래며 말했다.  


곧 승무원이 우리에게 다가왔다.  

승무원에게 상황을 설명했다. 우리만큼 그분들도 당황한듯 했다.  

아내는 자신도 어떻게 할수 없을만큼 계속 울고 있었다. 멈추고 싶어도 멈출수가 없었다.  

결국 직원의 안내를 받아 우리는 다시 공항으로 돌아왔다.  

수번의 검문을 받고 다시 항공사 카운터로 돌아왔다. 
 

일단 짐을 찾은다음에 대한항공이나 아시아나항공 티켓을 구입할 생각이었다.  


우리를 데려온 중국인 직원이 어떤 여자 직원에게 이야기를 건냈다.  

그 여자직원은 한국인이었다. 이렇게 반가울 수 없었다.  

한국인 직원에게 우리 상황을 설명했다.  


들어보니 돌아가는 비행기는 동방항공이 인수한 상하이 항공의 소형 비행기라고 했다.  

다행히 17:30에 출발하는 비행기는 한국에서 탄 비행기와 동급의 비행기로 

괜찮다면 그 비행기를 타는게 어떤지 의사를 물었다.  

기종을 검색해보니 안심이 됐다. 우린 그 비행기를 타기로 했다.  


그땐 이 결정이 얼마나 천운이었는지 알지 못했다.  


공항에서 2시간여를 어떻게 보냈는지 기억이 나질 않는다. 

어쨌던 우린 다시 출국수속을 밟고 비행기에 올랐다.  

사람이 별로 없는 자리로 배정해서 비행기 뒷부분 좌석에 앉았다. 

앞뒤 3-4칸에 1,2명밖에 없었다. 안심이 됐다.  


그런데 아내는 아니었다. 

자리에 앉자마자 아내의 상태가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이미 수면유도제에 우황청심환에 약을 있는데로 먹은상태였다.  

그렇게 하면 안될것 같은데 어떻게 막을수가 없었다.  

차라리 잠이라도 자고 가는게 좋을것 같다는 생각밖에 없었다.  


“오빠, 우리 자리 앞으로 바꿔달라고 하면 안돼? 여기 너무 무서워...”  

“응.. 그럼 잠깐만..”  

승무원에게 부탁해서 맨 앞자리로 자리를 옮겼다.  

5명이 앉는 자리에 한명의 중년 여성분만 계셨다.  


자리를 옮기고 나서 약간 안정을 찾았지만, 비행기가 시동을 걸고 움직이기 시작하자,  

아내의 불안은 점점 급해지는것 같았다.  

“오빠.. 어떡해... 나 미칠것 같아...”  

아내는 내 손을 잡고 덜덜 떨며 눈물을 뚝뚝 흘리기 시작했다. 

손은 얼음같았다. 내 심장도 얼어버리는것 같았다. 

어떻게 내가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었다.  


그 순간 옆의 아주머니께서 말을 걸었다.  

“괜찮아요? 심호흡을 크게 한번 해볼래요?”  

이야기를 나눠보니 그분도 공황장애를 겪고 계셨다.  

그것도 10년째 공황장애와 함께하는 분이셨다.  

말 그대로 천운이었다.  


비행기가 이륙한 직후부터 아내는 사투의 시간을 보냈다. 

어느 순간부턴 승무원 4-5명이 아내 주변에 대기하는 형국이었다.  

나에게도 정말 두려운 시간이었다.  

어떻게 손을 쓸수 있는 방법이 하나도 없었다.  

정말 다행인것은 아주머니가 옆에 계시다는것 이었다.  

오늘로 출국을 변경한 것, 첫번째 작은 비행기를 타지 않은 것, 뒷자리에서 이 자리로 바꾼것, 

모두가 천운이었다. 만약 그중 하나라도 어긋났다면? 

상상만 해도 끔찍했다.  


그만큼 아주머니의 존재는 말로 표현할 수 없을만큼 거대했다.  

아주머니는 마치 어머니처럼 비행시간의 대부분을 내 아내를 품에 앉고 달래주셨다. 

제트기류로 기체가 심하게 흔들릴때는 아내는 숨이 넘어갈것 같았다.  

그 순간에도 아주머니는 아내를 앉고 ‘괜찮아요. 나를 따라서 심호흡을 해볼까?’ 하며 

등을 손으로 마사지 해주면서 안정을 찾아주셨다.  

비행기 안에서의 상황은 비상이었다.  

모든승객과 승무원이 우리만 주시하는 상황이 계속 됐다.  

아내의 울음소리가 정말 안타까웠지만 내가 할 수 있는게 없다는게 더 안타까웠다.  


그리고 기적처럼 비행기는 인천공항에 착륙했다.  

바퀴가 지면에 닫는순간 다리가 풀리는것 같았다.  

나와 아내는 아주머니께 ‘감사합니다’만 수십번을 말씀 드렸다. 

연락처를 받아 내 폰에 저장했다.  

이름은 ‘생명의 은인 아주머니’   


정말 인천공항에 다시 돌아온것이 기적처럼 느껴졌다.
 

아내의 얼굴은 여전히 퉁퉁 부어있었지만 그래도 이제 웃음기가 돌았다. 

입국장으로 들어가는 길의 벤치에 앉아 잠시 쉬다가 다시 걸음을 옮겼다. 

우리 둘다 이제 끝났다. 라는 안도감으로 가득찼다. 


그런데.. 아니었다.  

에스컬레이트를 타고 내려가자 셔틀 트레인이 들어오고 있었다.  

우리가 있는 곳은 탑승동 이었다. 

셔틀 트레인을 타고 여객터미널로 이동해야 했다. 

아내는 절망하고 무너졌다.  

플랫폼에서 어쩔줄 몰라하며 울기 시작했다. 

일단 아내를 진정시켜서 벤치에 앉았다.  

"오빠.. 어떡해.. 어떡해... 다 끝난줄 알았는데.. 나 못타..." 

산을 넘어서 이제 다 도착했다고 생각해 마음이 풀어졌는데, 그 앞에 다시 산하나가 나타난 느낌 이었다.  

그런데 방법이 없었다. 다음에 들어오는 열차에 아내를 안고 올랐다.  

아내는 고개를 들지도 못하고 품에 안겨서 계속 울었다. 

내가 할 수 있는건 토닥이며 "괜찮아.. 괜찮아.. 다 왔어.. 다 왔어..”라고 말하는것뿐이었다. 

모든 사람들이 우리를 주시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그렇게 그렇게 그렇게... 

공항밖으로 나왔다. 정말 나온것이다.  

곧 다가올 태풍의 영향으로 바람이 거세게 불고 있었다.  

만약 원래 예정대로 3일후에 돌아왔다면 하고 생각을 하자 아찔함이 머리를 감쌌다. 

상상도 하기 싫었다. 정말 오늘온것이 다행이라는 생각이 더 강해졌다. 


마지막 문제는 집으로 돌아가는 것이었다. 

현재상태로는 열차도 버스도 택시도 탈 수 없었다.  

장인어른께 전화를 드렸다.  


그리고 나서 공항밖 주차장의 구석에 우리둘다 주저 앉았다. 

그래도 그곳이 세상에서 가장 아늑한 자리처럼 느껴졌다. 

아내의 혈색도 이제는 숨쉬듯 돌아왔다.  

바람때문에 약간 추웠지만, 오히려 상쾌하게 느껴졌다.  


“오빠, 나 배고파.. 우리 밥먹자, 한식 먹고 싶어..”  


아, 정말 이제 끝났구나.  

나도 모르게 안도의 한숨이 나왔다.  


물론 아내의 싸움은 이제부터 시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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