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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블록군 Apr 27. 2020

04. 이제 시작이다.

빗속을 걸어 난생처음 신경정신과를 찾았다.

장인,장모님께서 도착하셨다.  

내색은 안하셨지만 걱정이 가득한 얼굴이었다.   

아내는 일부러 더 밝게 행동했다. 

그동안의 여정을 웃으면서 에피소드처럼 전했다.  


하지만 차를 타고 집으로 가는길은 생각보다 험난했다. 

인천공항에서 상도동으로 가는동안 증상이 세번정도 찾아왔다.  

그때마다 갓길에 차를 세우고 쉬어가기를 반복했다. 

두분의 표정이 점점 어두워지는게 느껴졌다.  


우여곡절끝에 집에 도착했다. 

봄과 브루스 -우리집 멍멍이들- 가 짓는 소리가 들린다. 

봄과 브루스는 연신 꼬리를 선풍기 날개처럼 돌리면서 나와 아내의 반긴다.  

특히 아내에게 브루스는 정말 소중한 존재다. 가끔은 나보다도 (정말이다) 

브루스를 안으면서 아내는 안정을 찾아갔다.  

아내의 힘든 마음을 아는지 부르스는 더 열심히 애교를 부렸다.


그렇게 긴 하루가 끝나갔다.  

그때 난 이런 생각을 했던것 같다. 

이제 끝났다.  


... 


하지만 새벽이 되자 아내는 다시 찾아온 그놈과 만났다.   

밖은 태풍이 곧 올 예정이라 바람이 거세고 빗줄기도 강해지고 있었다.   

그래도 집이라는 안정감 덕분인지 상해처럼 심하지는 않았다.  


…  


그리고, 아침이 왔다.   


멍하게 일어나, 일단 중대병원에 전화를 했다.  

그런데 대학병원에서 진료를 받으려면 동네병원의 소견서가 필요하다고 했다. 

거기다 가장 빠른 예약도 2주후에나 가능하다고 했다.  

근처의 신경정신과를 찾아 전화를 걸었다.  

대부분 2-3주 예약이 가득 차 있었다.  


창밖으로 비가 거세게 내리고 있었다.  

아내의 표정이 급격하게 어두워졌다.  

“오빠, 나 안될것 같아, 빗소리가 강하게 들리니까, 또 증상이 온다… 

일단 밖으로 나가면 안될까?”  


우산만 챙겨서 밖으로 나갔다.  

일단 걸었다.   

언덕길을 오르면서 아내는 안정을 찾아갔다. 


상도역쪽으로 향했다. 근처에 병원이 있기 때문이다.  

병원에 들어갔지만 진료가 어렵다는 답만 받았다. 


나와서 다시 걸었다. 틈틈히 발목까지 잠길 정도로 비는 강해졌다.  

그래도 길을 걸으면서 아내의 상태가 많이 좋아지고 있었다. 

빗속의 데이트라고 생각하며 인위적으로 신나하며 걸었다. 

40분을 걸어서 신대방삼거리역에 도착했다. 


근처에 2곳의 신경정신과가 있었다.  

'봄 정신건강의학과의원’ ‘가족사랑 정신과의원’ 이란 긴 이름의 병원이었다.  

그래도 다행인것은 2시간정도를 대기하면 진료를 받을수 있다는 것이었다. 

보통때 같으면 말도 안될 상황이었지만 진료를 받을 수 있다는게 그렇게 기쁠수 없었다. 

내부 분위기나 위치를 고려해 ‘봄 정신건강의학과의원’을 선택했다.   

사실 우리 강아지 이름인 ‘봄’과 같다는 것도 은연중에 선택의 요인이 됐다. 


대기시간은 두시간을 훌쩍넘어 세시간 가까이 됐다. 

병원에 비치된 잡지책과 만화책을 대부분 읽었다.  

세시간여를 대기한것에 비하면 환자는 그렇게 많지는 않았다. 

특성상 의사와의 상담 시간이 오래 걸리기 때문인것 같았다.  

왜 이렇게 예약하기가 힘든지 이해가 됐다.  


그런데 생각보다 어린 아이들이 눈에 많이 보였다.  

대여섯살로 보이는 꼬마부터 중,고등학생까지 다양했다.  

정신적으로 힘든 아이들이 많다는것이 안타까웠다.  


‘우연한 산보’ 라는 '우연히' 찾은 만화책에 푹 빠져있을때 쯤, 

아내의 이름이 불렸다.  


방안에 아이들을 위한 장난감이 마련되 있었다.  

선생님은 얼굴에 미소가 가득했고, 목소리는 차분하셨다.  

아내는 여행의 첫날부터 오늘까지 겪었던 이야기를 말했고, 

하나하나 들으면서 차분히 답을 해주셨다.  


긴 시간이 지나 정확하게 기억이 나지 않지만  

간단히 요약하면 이런 내용이었던것 같다. 


공황장애로 의심이 된다.     

하지만 심각한 상태는 아니다.  

약물에 대한 걱정은 크게 하지 않아도 된다. 

오히려 중간에 괜찮아진것 같다고 마음대로 약을 줄이면 안된다.  

약물치료를 하고 곧 인지치료를 함께 하면 좋을 것이다.  


진단서와 소견서를 받아 병원을 나섰다.  

어느새 어둠이 내렸고, 빗줄기는 멈춰있었다.   

왔던 길을 되집어 집을 향해 걷기 시작했다. 


아내의 마음이, 표정이,  

한결 밝아보였다.  


이제부터 진짜 시작이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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