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1화. 커튼콜, 그리고 한밤의 도주

by 홀로서기

"스탠바이. 1분 전."


조연출의 무전 소리가 분장실에 울렸다. 심장이 터질 것 같았다. 연극영화과에 입학해 올리는 첫 정기 공연, <청자, 비색의 혼(魂)>. 나는 무대 뒤 어둠 속에 서서 호흡을 골랐다. 5:5의 가르마, 촌스러운 무명옷, 그리고 얼굴에 칠한 흙 분장. 거울 속의 나는 스무 살 이호준이 아니라, 고려 시대의 도공이 되어 있었다.

'와줬을까?' 객석 어딘가에 그녀가 있을 것이다. 서울에서 차를 렌트해 직접 운전해서 내려오겠다고 했다. 조명이 켜지고, 막이 올랐다.

1시간 20분. 어떻게 지나갔는지도 모르겠다. 땀범벅이 되어 마지막 대사를 뱉고 조명이 꺼지자, 객석에서 박수가 터져 나왔다.


"커튼콜! 나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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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서로의 손을 잡고 무대 앞으로 나갔다. 쏟아지는 조명 아래서 눈을 가늘게 뜨고 객석을 살폈다. 그리고 보았다. 정중앙에서 누구보다 환하게 웃으며 박수를 치고 있는 그녀를.

공연이 끝나고 극장 밖으로 나오자, 그녀가 기다리고 있었다. 청바지에 흰 티셔츠, 가벼운 카디건. 여행을 떠나기에 딱 좋은 차림이었다.


"호준아!"

"누나!"


그녀는 다가오자마자 내 볼을 꼬집었다.


"너... 진짜 연극과 학생 맞구나? 무대 위에서 보니까 딴사람 같더라. 멋있었어, 진짜로."


평소엔 아이 취급하던 그녀가 눈을 반짝이며 칭찬하자, 어깨가 으쓱했다.


"자, 이제 가야지? 뒤풀이는?"

"안 가. 동기들한테 욕 좀 먹겠지만, 오늘은 누나랑 갈 거야."


연극쟁이에게 공연 후 뒤풀이는 생명과도 같다. 하지만 그날 나는 과감히 그 '생명'을 버렸다. 내겐 더 소중한 '사랑'이 기다리고 있었으니까. 나는 미리 싸둔 짐을 챙겨 그녀가 렌트해 온 흰색 승용차 조수석에 올라탔다.


"이호준 씨, 안전벨트 매세요. 초보 운전이라 목숨은 보장 못 합니다."

"네네, 기사님. 어디로 모실까요?"

"강원도. 바다 보러 가자!"


부르릉. 엔진 소리와 함께 차가 출발했다. 창문을 내리자 초여름의 밤바람이 시원하게 밀려들어 왔다. 막 딴 면허증을 지갑에 넣은 채, 나는 그녀에게 운전대를 맡기고 조수석에 앉았다. 내비게이션도 없던 1996년의 밤. 우리는 지도책 한 권과 서로에 대한 믿음만 가지고 낯선 도로 위를 달리기 시작했다.

백미러 속으로 멀어지는 학교와 극장. 마치 세상으로부터 도망치는 연인들처럼, 우리의 첫 여행은 한밤의 도주극처럼 시작되었다.


작가후기 입니다.

제가 공연을 만들어 볼까 하고 쓴 내용을 당시에 공연처럼 바꿨는데.....

어울리나요?....ㅎ

지금은 당연한 네비가 당시에는 없었습니다.

실제 지도를 보면서 다녔고요.

참고로 저는 길치라 당시에는 면허를 딸 생각이 없었네요...ㅎㅎ

네비가 생기고 나서 면허를 딴거라.....ㅋㅋㅋㅋㅋ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미지 들은 다 ai로 작업한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