핸드폰이 생긴 뒤, 우리의 연애는 '011'의 요금 고지서만큼이나 가파르게 불타올랐다. 아르바이트비의 절반이 통화료로 나갔지만, 수화기 너머로 들리는 그녀의 목소리는 그만한 가치가 있었다.
"호준아, 밥 먹었어?"
"응, 누나는? 오늘 병원 힘들었지?"
평화롭던 5월의 어느 날이었다. 연습실에서 공연 준비로 땀을 흘리고 있는데, 내 핸드폰이 요란하게 울렸다. 발신자는 그녀가 아니었다. 그녀의 친구, 민선이 누나였다.
"호준아, 나 민선이 누나야. 지금 통화 괜찮니?"
"네, 누나. 무슨 일이세요?"
"저기... 놀라지 말고 들어. 정아 내일 선 본대."
순간 머리를 한 대 얻어맞은 것 같았다. 선? 맞선? 스무 살인 나에게 '결혼'은 먼 우주 이야기였지만, 서른 살인 그녀에게는 코앞에 닥친 현실이었다. 집안 어른들의 성화, "나이 찼으니 시집가라"는 압박. 그녀가 요즘 왜 통화할 때마다 힘이 없어 보였는지 그제야 이해가 갔다.
"정아가 너한테 미안하다고, 헤어져야 하나 고민하면서 매일 울어. 너 어떻게 할래?"
민선이 누나의 질문에 나는 1초도 망설이지 않았다.
"저 지금 서울 갑니다."
연습이고 뭐고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교수님께 배가 아파 조퇴한다고 거짓말을 하고 터미널로 뛰었다. 서울행 심야 우등버스. 창밖은 칠흑 같은 어둠이었다. 불안했다. 내가 가서 뭘 할 수 있을까? 나는 가진 것 없는 대학생이고, 상대는 번듯한 직장을 가진 남자일 텐데. 내가 그녀의 앞길을 막는 건 아닐까? 하지만 머리보다 심장이 먼저 반응했다.
'이대로 뺏길 순 없어.'
새벽 2시, 서울 강남 터미널에 도착했다. 민선이 누나가 알려준 가게로 달려갔다. 문을 열자, 구석진 테이블에 고개를 숙인 채 앉아있는 그녀가 보였다. 테이블 위에는 소주병이 뒹굴고 있었다.
"누나."
내 목소리에 그녀가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퉁퉁 부은 눈, 헝클어진 머리. 나를 보자마자 그녀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호... 호준아? 네가 어떻게..."
"민선이 누나한테 들었어. 바보야? 왜 혼자 끙끙 앓아."
그녀는 말도 잇지 못하고 내 품에 안겨 엉엉 울음을 터트렸다.
"미안해... 진짜 미안해... 엄마가 너무 완강하셔서... 내가 널 만난다고 하면 네가 무시당할까 봐 말도 못 하고..."
그녀의 울음 섞인 고백이 가슴을 후벼 팠다. 그녀는 나를 부끄러워한 게 아니라, 내가 상처받을까 봐 지켜주려 했던 것이다. 나는 우는 그녀의 등을 토닥이며, 스무 살의 객기를 부렸다.
"누나, 선 보러 가."
"뭐?"
"가서 당당하게 말해. 나 연하 남자친구 있다고. 아주 잘생기고, 쌩쌩하고, 나중에 대성할 놈 하나 키우고 있다고."
내 엉뚱한 말에 울던 그녀가 '풉' 하고 웃음을 터트렸다.
"그리고 그 남자한테 전해. 이호준이라는 놈이 눈 시퍼렇게 뜨고 지키고 있으니까, 꿈 깨라고."
그날 새벽, 우리는 첫차 시간이 될 때까지 손을 잡고 서울 밤거리를 걸었다. 다음 날, 그녀는 맞선 자리에 나갔다. 그리고 10분 만에 나왔다. 상대방에게 정중하게 "사랑하는 사람이 있습니다"라고 말하고 나왔다고 했다.
그녀의 집은 한바탕 뒤집어졌지만, 우리는 더 단단해졌다. 서른 살의 현실을 스무 살의 열정으로 정면 돌파한 날. 우리는 그렇게 '진짜 연인'이 되어가고 있었다.
작가후기??
글을 쓰면서 느낍니다.
저는 이렇게 멋지지 않았는데......
뭐 어때요? 제 기억이 그렇다는데......ㅋㅋㅋㅋㅋ
그래도 우겨보렵니다.
그때 나는 멋있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