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3화. 아침 바다, 그리고 회 한 접시에 담긴 진심

by 홀로서기

눈을 떴을 때, 창밖은 온통 파란색이었다. 어젯밤엔 칠흑 같았던 동해 바다가 아침 햇살을 받아 보석처럼 반짝이고 있었다. 옆을 보니 그녀가 세상모르고 잠들어 있었다. 헝클어진 머리카락, 살짝 벌어진 입. 그 무방비한 모습이 사랑스러워 한참을 바라보다가, 조심스럽게 그녀를 깨웠다.


"누나, 해 떴어. 바다 보러 가자."


우리는 대충 고양이 세수만 하고 모래사장으로 나갔다. 아직 차가운 5월의 바닷바람이 머리카락을 헝클어뜨렸지만, 맞잡은 손은 따뜻했다. 우리는 유치한 커플들이 하는 건 다 했다. 모래 위에 이름 쓰기, 나 잡아봐라, 파도 피하기... 스무 살과 서른 살이 아니라, 그냥 철없는 소년 소녀가 되어 꺄르르 웃으며 해변을 뛰어다녔다.


"배고프다. 밥 먹으러 가자!"


강원도까지 왔으니 메뉴는 당연히 회였다. 대포항 근처 횟집에 자리를 잡았다. 싱싱한 모듬회 한 접시에 매운탕, 그리고 빠질 수 없는 낮술(소주) 한 잔. 운전은 돌아갈 때 생각하기로 하고, 우리는 기분 좋게 잔을 부딪쳤다.


"캬, 달다!"


그녀가 상추에 회 두 점을 올리고 마늘까지 얹어 야무지게 쌈을 싸서 내 입에 넣어주었다. 오물오물 씹으며 그녀를 보는데, 문득 궁금해졌다.


"근데 누나."

"응?"

"누나는 내 첫인상 어땠어? 그리고... 언제부터 내가 남자로 보였어?"


내 돌발 질문에 그녀가 젓가락을 멈칫했다. 그녀는 장난기 어린 눈으로 나를 쳐다보며 되물었다.


"너부터 말해. 넌 나 언제부터 좋아했어?"

"나야 뭐... 처음 봤을 때부터 이상형이었지. 근데 결정적인 건, 내가 다쳤을 때 누나가 울었잖아. 그때 알았어. 이 여자는 내가 지켜줘야겠구나."


내 대답에 그녀가 피식 웃더니, 소주 한 잔을 털어 넣고 입을 열었다.


"솔직히 말해줄까? 처음에 넌 그냥... '어린애'였어. 동생 같고, 귀엽고."

"치... 그럴 줄 알았어."

"그런데."


그녀가 내 눈을 똑바로 바라봤다.


"그날 밤, 깡패들한테 쫓길 때 네가 나를 골목 안으로 밀어 넣고 입구에 딱 버티고 섰잖아. 덜덜 떨면서도 '여긴 내가 막을 테니까 도망가'라고 했을 때."


그녀의 목소리가 조금 진지해졌다.


"그때 네 뒷모습이... 진짜 남자더라. 무서웠을 텐데, 도망가지 않고 나를 지키려고 버티는 그 모습에 심장이 쿵 했어.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구나, 이 남자는 진짜구나 싶었지."


그녀의 고백에 얼굴이 확 달아올랐다. 그날의 나는 그저 허세 부리는 꼬맹이인 줄 알았는데, 그녀의 눈에는 남자로 보였다니.


"고마워, 호준아. 나 지켜줘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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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쑥스러움을 감추기 위해 다시 건배했다. 파도 소리는 BGM이 되고, 회 한 점에 소주 한 잔, 그리고 서로를 향한 진심 한 스푼. 그날 속초의 바다는 내 인생에서 가장 아름다운 풍경으로 남았다.

돌아오는 길, 여전히 운전은 서툰 그녀였지만 나는 더 이상 무섭지 않았다. 옆자리에 내가 있으니까. 내가 그녀의 내비게이션이 되고, 보디가드가 되어줄 테니까. 우리의 첫 여행은 그렇게 완벽한 해피엔딩으로 마무리되었다.


작가후기

가물가물한 기억으로 인해

상당히 미화가 된 호준이 입니다.

글쎄요. 뭐 추억인거죠....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