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4화. 사랑의 청구서, 그리고 011의 역습

by 홀로서기

꿈같았던 강원도 여행이 끝나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왔다. 그녀는 서울의 병원으로, 나는 광주의 캠퍼스로. 몸은 멀어졌지만, 우리에겐 '문명의 이기'가 있었다. 바로 그녀가 선물해 준(명의는 그녀지만) 모토로라 핸드폰이었다.


"자기야, 밥 먹었어?"

"응, 누나도 먹었어? 오늘 병원 바빴지?"


수업 시간만 빼고 우리는 수시로 통화했다. 잠들기 전에는 전화기를 붙잡고 한 시간이고 두 시간이고 속삭였다.


"통화료는 내가 낼 거야!"


핸드폰을 개통할 때 내가 큰소리쳤던 그 약속은, 한 달 뒤 내 자취방 우편함에 꽂힌 고지서 한 장으로 인해 산산조각 났다.


[청구 금액: 385,000원]


눈을 비비고 다시 봤다. '0'이 하나 더 붙은 게 아닐까? 1996년, 짜장면 한 그릇이 2,000원 하던 시절이었다. 대학생 한 달 하숙비에 맞먹는 금액이 고지서에 찍혀 있었다. 등줄기에 식은땀이 흘렀다. 어머니(김 여사님)가 아시면 나는 그날로 호적에서 파일지도 모른다.


'막아야 한다. 내 사랑과 내 호적을 위해.'


그날부터 나는 '알바 전선'에 뛰어들었다. 낭만적인 캠퍼스 라이프? 그런 건 사치였다. 수업이 끝나면 학교 앞 호프집 서빙을 했고, 주말에는 인력 사무소에 나가 속칭 '노가다(건설 현장)'를 뛰었다.


"어이, 학생! 벽돌 좀 빨리빨리 날라!"

"네! 갑니다!"


등짐을 지고 계단을 오를 때마다 허리가 끊어질 것 같았다. 시멘트 가루가 땀구멍마다 박히는 기분이었다. 하지만 쉴 때마다 주머니 속 핸드폰을 꺼내 보면, 액정에 뜬 그녀의 번호(또는 음성 메시지 알림) 하나에 피로가 씻은 듯 사라졌다.


[호준아, 많이 힘들지? 밥 꼭 챙겨 먹어. 사랑해.]


그 짧은 문자, 그 목소리 하나를 듣기 위해 나는 기꺼이 내 젊음을 헐값에 팔았다. 밤늦게 자취방에 돌아와 퉁퉁 부은 다리를 두드리면서도, 그녀와 통화만 연결되면 내 목소리는 언제 그랬냐는 듯 밝아졌다.


"응, 누나! 나 하나도 안 힘들어. 운동 삼아 하는 거지 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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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짓말이었다. 죽을 만큼 힘들었다. 하지만 그녀가 선물해 준 이 '비싼 장난감' 덕분에 우리는 300km의 거리를 뛰어넘어 매일 밤 함께 있을 수 있었다.

월급날, 땀 냄새 쩐 돈을 입금하고 고지서를 해결했을 때의 그 짜릿함이란. 친구 녀석들은


"미친놈, 그 돈이면 술이 몇 병이냐"


라고 혀를 찼지만, 나는 웃을 수 있었다. 술은 마시면 오줌으로 나가지만, 그녀와의 통화는 내 가슴에 추억으로 남으니까.

비록 내 통장은 '텅장'이 되었고, 몸은 골병이 들어갔지만, 1996년의 여름은 내 인생에서 가장 치열하고도 비싼 연애의 계절이었다.


작가후기

네 비샀습니다.

핸드폰 무서웠어요.

지금은 누구나 들고다니는 스마트 폰 이지만

당시에는 무겁고 무서운 그런 존재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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