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6년의 연애는 '기다림'이 8할이었다. 지금처럼 카톡으로 "뭐해?"라고 묻고 1이 사라지길 기다리는 초단위의 조급함이 아니었다. 삐삐가 울리면 공중전화로 달려가야 했고, 음성 사서함에 목소리가 남겨져 있길 기도하며 수화기를 들어야 했다.
병원에서 퇴원하고 그녀를 만나기까지 남은 시간은 5일. 그 5일 동안 내 허리춤에 달린 삐삐는 내 신체의 일부나 다름없었다. 015-238-1404. 혹시라도 그녀에게 연락이 올까 봐, 나는 화장실을 갈 때도, 밥을 먹을 때도 삐삐를 손에서 놓지 못했다. 진동이 울릴 때마다 심장이 내려앉았지만, 번호를 확인하고는 실망하기 일쑤였다. 친구 녀석들이거나, 잘못 걸려온 전화들이었으니까.
"연상과 만나려면 많은 걸 배려해야 하고, 상처도 이겨내야 할 거다. 명심해라."
퇴원하던 날 아버지가 툭 던지신 그 말씀이 귓가에 맴돌았다. 열 살 차이. 그녀는 나를 남자로 볼까, 아니면 그저 귀여운 동생으로 볼까. 5일 내내 천국과 지옥을 오가는 망상에 시달렸다.
드디어 D-Day. 실밥을 풀기로 한 날이자, 그녀와 밥을 먹기로 한 날. 나는 평소라면 절대 일어날 수 없는 새벽 5시에 눈을 떴다. 소풍 가는 초등학생도, 첫 휴가 나온 이등병도 나보단 덜 설렜을 것이다. 새벽부터 일어나 부산을 떠는 아들을 보며 아버지는 혀를 차셨다.
"정아라는 아가씨 만난다고 저러는 거지, 뭐."
문제는 '패션'이었다. 나는 옷에 관심 없는 촌놈이었고, 우리 집의 패션 권력자는 어머니, '김 여사님'이셨다. 어머니는 당신 마음에 드는 옷을 입히지 않으면 외출을 허락하지 않으셨다.
"우리 아들 코디는 엄마가 해줘야겠네. 이리 와봐."
그 공포의 '코디 놀이'를 피하기 위해 나는 꾀를 냈다. "저, 약수터 다녀올게요! 북한산 물이 좋다던데!" 도망치듯 약수통을 들고 새벽 산을 올랐다. 1996년의 서울, 북한산의 새벽 공기는 달고 시원했다. 땀을 뻘뻘 흘리며 물을 떠 왔지만, 결국 나는 어머니의 손바닥 안이었다.
"수고했다. 씻고 나와라. 입을 옷 골라 놨으니 그거 입고 가."
어머니가 침대 위에 펼쳐놓은 옷들을 보며 나는 순순히 패배를 인정했다. 어머니의 안목을 믿는 수밖에. 나는 가장 깔끔해 보이는 옷을 골라 입고, 거울을 수십 번 들여다보며 머리를 만졌다. 스무 살, 인생에서 가장 멋지게 보이고 싶은 날이었다.
약속 시간 11시. 병원에 도착해 실밥을 뽑았다. 따끔한 통증보다 더 긴장되는 건, 진료실 문밖에서 기다리고 있을 그녀였다.
"수고하셨습니다. 일상생활 하셔도 됩니다."
의사 선생님의 말이 끝나자마자 나는 밖으로 뛰쳐나갔다. 그리고 병원 로비, 저만치 서 있는 그녀를 발견했다.
"아, 호준 씨! 실밥 다 뽑았어요?"
사복을 입은 그녀는... 눈이 부셨다. 간호사 유니폼을 입었을 때도 예뻤지만, 화사한 사복 차림의 그녀는 내가 감히 쳐다봐도 되나 싶을 만큼 아름다웠다.
"호준 씨? 호준 씨!"
넋을 놓고 쳐다보느라 대답도 못 하는 나를 보며 그녀가 웃었다.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하세요?"
"아... 어... 어머니가 '못난이' 밥 주라고 한 게 생각나서요."
젠장. 이상형 앞에서 한다는 말이 고작 개 밥 주는 핑계라니. 내 입을 꿰매 버리고 싶었다. 하지만 그녀는 그런 내 서툰 거짓말마저 귀엽다는 듯 고개를 끄덕여주었다.
"그럼 우리, 제가 좋아하는 거 먹으러 가요. 바로 저 앞이에요."
그녀가 자연스럽게 내 팔짱을 꼈다. 순간, 머릿속이 하얗게 변했다. 팔에 닿는 그녀의 온기, 은은한 샴푸 향기. 심장 소리가 너무 커서 그녀에게 들릴까 봐 겁이 날 지경이었다.
나는 꼬리를 흔드는 강아지처럼, 아니 영혼이 가출한 바보처럼 그녀가 이끄는 대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녀의 리드에 몸을 맡긴 채.
이것이 나의 첫 데이트였다. 스무 살의 치기와 서른 살의 여유가 만난, 어설프지만 그래서 더 투명했던 그 날의 점심 식사. 나는 아직 몰랐다. 우리가 향하는 곳이 내 지갑 사정으로는 감당하기 힘든 '고급 레스토랑'이라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