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급 레스토랑에서의 식사가 '탐색전'이었다면, 진짜 데이트는 2차부터였다. 우리는 대학로의 시끌벅적한 거리를 지나, 조명이 어둑한 칵테일바(Bar)로 자리를 옮겼다. 당시 90년대 대학생들에게 '준 벅'이나 '피치 크러쉬' 같은 달달한 칵테일은 세련됨의 상징이었다.
"호준아, 너 술 좀 해?"
"그럼요. 저 주량이 소주 세 병은 거뜬해요."
스무 살의 허세가 또 발동했다. 사실 친구들과 깡소주나 마실 줄 알았지, 이런 분위기 있는 술은 쥐약이었다. 하지만 그녀 앞이 아닌가. 나는 짐짓 여유로운 척 독한 '블랙 러시안'을 시켰고, 그녀는 색깔이 예쁜 칵테일을 골랐다.
알코올이 들어가자 10년이라는 나이 차이의 벽은 더 얇아졌다. 그녀는 병원에서의 고충, 결혼하라는 부모님의 압박, 그리고 서른이 주는 무게감에 대해 털어놓았다. 나는 그저 고개를 끄덕이며 그녀의 이야기를 들었다.
"호준아, 너는 좋겠다. 아직 스무 살이라서. 뭐든 다시 시작할 수 있잖아."
취기가 오른 그녀의 눈이 풀려 있었다. 그 눈빛이 묘하게 슬퍼 보여서, 나는 테이블 위로 뻗은 그녀의 손을 조심스럽게 잡았다.
"누나도 어려요. 서른이 뭐 어때서. 내가 빨리 커서 누나 지켜주면 되죠."
"피식, 쪼그만 게 까불기는."
그녀는 내 손을 뿌리치지 않았다. 우리는 그렇게 꽤 많은 잔을 비웠다. 가게를 나섰을 때, 밤공기는 차가웠지만 얼굴은 뜨거웠다. 비틀거리는 그녀를 부축해 택시를 잡았다. 목적지는 그녀의 자취방.
"여기서 세워주세요."
택시에서 내린 곳은 어느 오래된 고층 아파트 단지였다. 시간은 새벽 1시가 넘어가고 있었다. 그녀를 현관 앞까지 바래다주기 위해 아파트 입구로 들어선 순간, 내 눈앞에 절망적인 안내문이 붙어 있었다.
[승강기 점검 중: 00:00 ~ 06:00]
"아... 망했다..."
그녀가 혀 꼬인 소리로 중얼거렸다. 그녀의 집은 8층이었다. 걸어서 올라가기에도 숨이 차는 높이. 게다가 그녀는 하이힐을 신고 있었고, 술기운에 몸을 가누기도 힘든 상태였다.
선택지는 하나였다. 나는 심호흡을 한 번 크게 하고 그녀 앞에 등을 내밀었다.
"누나, 업혀."
"어? 아니야, 걸어갈 수 있어..."
"이 힐 신고 계단 걷다가 발목 나가요. 잔말 말고 업혀요. 나 태권도도 했고, 힘 하나는 장사야."
그녀는 잠시 머뭇거리더니, 이내 "미안해..."라고 속삭이며 내 등에 조심스럽게 업혔다. 묵직함이 느껴졌다. 아니, 사실대로 말하자면 깃털처럼 가볍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 묵직함이 싫지 않았다. 내 등에 닿는 그녀의 체온, 귓가를 간지럽히는 숨소리, 그리고 은은하게 풍기는 샴푸 향기.
'1층... 2층...'
초반엔 기세 좋게 올라갔다. 하지만 4층을 넘어가자 허벅지가 터질 것 같았다. 스무 살의 끓는 피와 근력으로 버티고 있었지만, 술을 마신 상태라 숨이 턱 끝까지 차올랐다.
"호준아... 무겁지? 내려줘..."
"허억, 헉... 아뇨... 하나도... 안 무거워요. 누나 깃털이네."
새빨간 거짓말이었다. 다리가 후들거렸다. 하지만 여기서 내려주면 가오가 안 산다. 남자가 칼을 뽑았으면 무라도 썰어야지. 나는 이를 악물고 계단을 밟았다.
'6층... 7층... 제발...'
마지막 8층에 도착했을 때, 나는 거의 탈진 직전이었다. 현관문 앞에 그녀를 내려주자마자 다리가 풀려 주저앉을 뻔했다.
"호준아, 괜찮아? 땀 봐..."
그녀가 손수건을 꺼내 내 이마의 땀을 닦아주었다. 가로등도 없는 어두운 복도. 센서등이 꺼졌다 켜졌다를 반복했다. 땀을 닦아주는 그녀의 손길이 멈췄고, 우리는 서로의 눈을 바라봤다. 숨소리가 거칠었다. 그것이 계단을 오른 탓인지, 아니면 다른 이유 때문인지는 알 수 없었다.
"고마워. 데려다줘서."
"들어가서... 푹 자요. 내일 전화할게요."
더 있다가는 심장이 터져버릴 것 같아서, 나는 서둘러 인사를 하고 돌아섰다. 터덜터덜 1층으로 내려오는 길. 다리는 후들거리고 온몸은 땀범벅이었지만, 나는 실실 웃고 있었다.
등에 남아있는 그녀의 온기가 좋았다. 8층이 아니라 63빌딩이라도 업고 올라갈 수 있을 것 같은, 그런 말도 안 되는 자신감이 차올랐다. 이것이 '사랑의 무게'라면, 나는 평생이라도 짊어질 준비가 되어 있었다.
물론, 다음 날 허벅지에 알이 배겨 걷지도 못했지만 말이다.
작가 후기 입니다.
흠...일이 빨리 끝나서 한편 더 만들어 봅니다^^
며칠 현생에 바쁠 예정이라.......
최대한 올려볼 생각이지만 못 올릴 것을 대비해.......
제 글 읽어주시는 모든 분들 감사합니다.
이미지는 ai로 작업한 것 입니다.